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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북한 왕조, 마지막 장이 시작되는가?- 조규형(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전 주브라질 대사)

  • 기사입력 : 2013-12-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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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가끔씩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북한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번에 보여준 장성택 처형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국내외 대부분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장성택이 중심적 역할을 해 왔으며, 이는 김정일의 뜻이었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그럼 김정은은 왜 자신의 멘토 역할을 해왔던 고모부를 제거해야 했는가?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작년 8월에 있었던 장성택의 중국 방문에 대비되는 올해 5월 최룡해의 중국 방문이다. 중국의 장성택에 대한 환대는 국가 정상급에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 이후 장성택이 추진해 왔던 나진 선봉 경제특구와 같은 중국과의 경협사업은 그런대로 진전을 보여 왔다. 북한의 자원개발 사업에 중국 기업의 참여도 확대돼 왔다.

    이에 반해 최룡해는 중국 방문 시 환대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으로부터 질타에 가까운 불만 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중국이 자신들의 세계전략 선상에서 테크노크라트 출신의 장성택을 더 선호했을 것으로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음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 당국이 발표한 장성택의 죄목 리스트이다. 작게는 마약, 여자 등 개인의 품행에서부터 크게는 쿠데타 음모까지 나열돼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외국과의 경제 관계 추진에 있어 실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장성택의 몰락에 중국 변수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군부가 핵무기 포기와 대외개방을 종용하는 중국의 후광을 업고 중국의 입장을 지지했을 장성택을 곱게 보았을 리 없다. 그의 처형이 단시일 내 이뤄진 것도 혹 있을지 모를 중국의 개입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이 최룡해 일파의 압박에 마지못해 장성택의 처형에 동의했는지 아니면 장성택과 김정남 그리고 중국이라는 삼각 커넥션의 가능성에 불안감을 느껴 주도적으로 고모부를 제거했는지는 훗날 역사가 밝혀줄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제 김정은이 보고 듣는 것은 전적으로 군부에 의존하게 될 것이니, 김정은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그 누구에 의해 조정되든 북한 내부 정세의 불안전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북한사회 균열도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이 장성택의 죄목을 길게 나열한 것은 김정은을 고모부마저 처형한 패륜아로 만들지 않기 위한 고려이겠으나, 역설적으로 이는 오늘날 부패한 북한 고위층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반사회적 범죄들을 낱낱이 밝힌 결과가 되었다. 허기와 빈곤에 지친 주민들은 이런 범죄들이 장성택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졌을 것으로 보지 않을 것이고, 그가 사라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을 리도 없다.

    앞으로 북한은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더욱 고립되어 갈 것이다. 그 어떤 외국기업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 당국과 경협을 논의하고자 할 것이며, 미국 관광객 체포 여파로 관광산업도 위축될 것이다. 또 북한 내에서도 장성택에게 씌워진 죄명으로 보아 장차 큰 화를 부를 수 있는 외국과의 협력을 적극 추진할 용기를 낼 관리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김정은 체제의 개혁 개방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결국 북한은 소위 사상적 순수성이 강조되고 강경론만이 살아남는 집단사고(Group Thinking)가 지배하는 사회로 될 수밖에 없다. 역사에서 집단사고가 지배하는 국가가 멸망에 이른 예는 얼마나 많은가.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우리에게 중차대한 과제를 준다. 대외도발을 통해 국내문제를 해결하려는 북한 강경론자들의 모험주의에 대비해야 하고, 미국과 중국을 위시한 주변 우방국들에 대한 능동적인 외교의 중요성도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통일을 이론이 아닌 현실적인 국가과제로 인식하고 대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수상은 ‘우리는 통일의 문이 조금 열렸을 때 재빨리 그 안으로 뛰어들어 통일을 실현하였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에게 그럴 용기가 있는가?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은 자문해야 할 물음이다. 북한의 붕괴가 자동적으로 통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전 주브라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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