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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초 안종달 선생 건국포장 수훈

  • 기사입력 : 2018-08-27 16: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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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시(시장 박일호)는 제73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학초(學初) 안종달(安鍾達: 1878. 11. 12 ~ 1929. 3. 2)선생이 건국공로훈장(건국포장)을 수훈했다고 밝혔다.


    포장수여는 국가보훈처에서 전수자 심사단계에 있으며, 파리장서(巴里長書)로 국권침탈에 항거하였던 안종달 선생의 독립유공의 발자취는 오랜기간 동안 진외증손(이기창, 무안면 내진)의 수년간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조국광복을 위한 위업이 밝혀지게 되었다.    


    1878년 아버지 안연원(安演遠)과 어머니 노상이(盧相而)의 2남으로 태어난 선생은 자는 학초(學初)이며, 구한말 홍문관시강(왕과 동궁의 교육담당)을 지내다가 간도로 망명 후 항일운동을 계속한 대눌 노상익(盧相翼)선생과 단장면 자암서당을 근거지로 항일정신으로 선비의 지조를 밝히신 소눌 노상직(盧相稷)선생의 생질로서 자암서당의 연장 제자로 동학, 사제들과 함께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다가 소눌과 함께 옥사를 겪은 후 병사하였다.  


    파리장서사건은 1919년 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 유림대표 137인이 연명으로 일제의 국권침탈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독립국가 조선의 위상을 밝힌 구한말 선비중심의 독립운동으로 이 사건 이후 일제는 서명자를 일제 투옥하고 관련자를 일본 고등경찰요사에 등록하여 그 가족들까지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감시하게 하였다.


    1919년 삼일운동 직후 학초선생의 나이 42세에, 경북 성주에서 심산 김창숙이 밀양으로 당대 유림의 거목이었던 소눌을 찾아 밀양으로 왔을 때 소눌의 제자 13인을 규합하여 단장면 풍뢰정에서 파리장서 서명에 앞장섰다. 선생은 이 일로 밀양헌병대에 이첩되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망국의 선비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도리를 잊지 말자”고 사제들을 지도하는 등 의연함을 보였다고 소눌장서(밀양박물관 소장)에 기록되어 있다.  


    밀양시 관계자는 금번 포장수여에 즈음하여 “선비의 충절과 지조의 고장 밀양에서 높은 기개로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안종달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시민 모두가 계승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말했다. 밀양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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