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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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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부장과면(覆醬裹麵)- 장 단지나 덮고 국수나 싼다. 가치 있는 책을 찢어 아무렇게 없애버린다

  • 기사입력 : 2013-12-2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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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명한 교육자인 아천(我川) 최재호(崔載浩 1917~1988) 선생은 진주 삼현여자중고등학교의 설립자다. 그는 시인, 문필가, 번역가, 언론인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아천 선생은 한적(漢籍)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60년대 후반 부산의 어떤 친척집에 가면서 엿을 한 봉지 사들고 갔는데, 가서 펼쳐보니, 엿을 싼 종이가 바로 아주 귀중한 한적 책장을 찢은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귀중한 정신문화의 유산이 이렇게 없어지는구나!”라고 탄식을 하고는 그 이후로 한적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책이 3314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춘향전(春香傳)’ 등은 유일본으로 그 가치는 값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옛날 힘들여 저술한 귀중한 책들이, 엿 봉지로 쓸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 벽을 바르고, 딱지 만들고, 연 만들고, 표구상에서는 안에 바를 때 꼭 좋은 문종이로 된 책을 찢어 발랐다. 6·25전쟁 중에는 인민군들이 남의 집을 점령하고 지내면서 책을 찢어 군불을 때기도 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경상대학교(慶尙大學校)는 본래 진주농과대학(晋州農科大學)이었다. 농학 분야에서는 상당한 업적을 내었지만, 도서관은 형편없었고, 더구나 한적 등에는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1960년대 중반 어떤 사람이 한적을 기증하겠다고 하니까, 당시 학장이 “지금 사람이 달나라에 가는 시대에 그런 케케묵은 물건이 무슨 소용 있겠느냐?”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6년 김수업 교수가 도서관장을 맡으면서 한적에 관심을 가져 먼저 해인사(海印寺)에 소장돼 있던 문집 책판 1000여 장을 인출(印出)해내고, 약간의 한적을 구입해 처음으로 도서관에 한적을 소장하게 되었다. 1989년 아천 선생의 맏아들인 최문석(崔文錫) 박사가 선대에서 수집했던 책 전부를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경상대에 기증함으로써 한적실의 형태가 갖춰졌다. 그 뒤 유림대표 곽종석(郭鍾錫) 선생의 장서가 경상대에 기증됐다. 몇 차례 기증이 있자, 하순봉(河舜鳳) 전 국회의원 등 기증이 줄을 이었다. 지금은 한적이 5만 책에 이를 정도로 전국적으로도 한적량이 상당히 많은 도서관이 되었다.

    2001년 남명학관(南冥學館)이 준공되자 2층 200평 규모를 전부 한적도서관으로 만들고 문천각(文泉閣)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경상대 도서관에서는 한적 수집뿐만 아니라, 이를 모두 전산화해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열람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른 기관이나 대학에서 미처 전산화하지 않은 한적까지 다 전산화했다. 이 사업에는 문천각에 근무하는 이정희(李政喜) 사서의 노력이 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한적과 귀중한 고문서(古文書)들이 파괴되고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문천각 정도의 규모로는 기증자들의 자료를 다 수용할 수 없어, 학교 당국에서 큰 결단을 해서 전국 대학 최초로 고문헌도서관(古文獻圖書館)을 착공해 2005년 3월 준공될 예정이다.

    일차적으로는 한적이나 고문서를 수집해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연구해 그 내용을 알아내어 오늘날 되살리는 것이다. 앞으로 한적 및 고문서 연구원까지 갖춰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 覆 : 뒤집을 복. 덮을 부. * 醬 : 장 장. * 裹: 쌀 과. * 麵 : 밀가루 면.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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