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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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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부러진 화살’ 박훈 변호사

“법이 삶을 파괴한다면 잘못된 법을 알려야죠”

  • 기사입력 : 2013-12-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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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이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데 법조인이 앞장서야죠.”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한 말이다.

    영화 개봉 전에 만난 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왜 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법이 더 이상 해줄 게 없으니,

    나라도 가서 같이 있어 준다”고 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변호사

    ‘박준’의 실제 모델인

    박훈(47) 변호사.

    운동권 출신 변호사로

    노동사건을 주로 맡아 온 그를

    지난 16일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나

    ‘예사롭지 않은 길’을 들었다.


    ●금속노조 조합원이 된 변호사

    고려대학교 운동권 출신인 그는 졸업할 무렵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를 보면서 진로를 고민하다 취업을 택했다. 가전제품 대리점 영업사원이 된 그는 회사의 ‘밀어내기’ 방침을 따를 수 없었다. 실적이 좋을 리 없었고, 승진도 안 됐다. 31세에 4년의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사법시험에 도전, 2년 만에 40회(1998년) 사시에 합격했다.

    편한 삶을 살 수도 있을 법한데, 당시 금속연맹 법률센터 상근 변호사인 김기덕 변호사를 보면서 자신도 그 길을 택했다. 월급 100만 원의 금속연맹 상근 변호사이자 금속노조 조합원이 됐다.

    “돈을 벌어볼까도 했지만 내가 가진 지식을 누구한테,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고민 끝에 금속노조로 가기로 했습니다. 먹고사는 것은 최소한의 생계비만 있으면 되지 않나요? 집사람한테 얽매였다면 이런 선택 못했겠지요. 하하.”

    ●대우자동차 사태로 전국 인사

    2001년 2월 7일 대우자동차는 부평공장 직원 1750명 정리해고를 통보한다. 경찰이 조합원들의 공장 점거를 우려해 회사 출입을 통제했다. 노동조합 사무실 출입까지 막히자 노조활동 방해금지 가처분을 제기, 한 달 뒤에 조합사무실을 찾으러 갔다. 하지만 공장 1㎞ 앞에서부터 경찰에 막혔다.

    “경찰이 노조 업무를 방해하면 안 되잖아요. 업무를 방해하는 현행범은 누구든지 체포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들에게 경찰 체포를 지시하고 검찰에는 현행범 신병인수하라고 전화했지요.”

    그 순간 경찰 수천 명이 조합원들을 강경 진압했다.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3~4명은 장애등급을 받을 정도로 다쳤다. 웃통을 벗어던진 채 시위대 선봉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던 그는 뉴스에 그대로 전달됐다. 후폭풍이 만만찮았다.

    “변호사라는 사람이, 왜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는 분위기였죠. 품위 유지 위반으로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조사를 나왔어요. 다행히 당시 변재승 변협 회장이 우호적이어서 징계는 면했습니다.”

    강경 진압을 예상 못해 다수 부상자가 발생한 것은 두고두고 그를 괴롭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정부는 노동계로부터 정권퇴진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때 그의 나이 35살. 워낙 큰 파장을 불러와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로 유명세

    “유명세를 좀 탔지요. 사인해달라는 사람도 있고요. 내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나왔으니 큰 행운이지요.”

    그는 “재판은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아니라, 증거관계를 통해 진실을 의제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증거를 대지 못하면 진실은 은폐되거나 밝혀지지 않으니, 억울하게 재판받는 경우도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재판은 치유의 과정인데, 당사자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결국 사법부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지요. 판사를 늘려야 합니다.”

    기억에 남는 소송을 물었다. 대우자동차 사태로 노조활동 방해금지 가처분을 최초로 제기한 사례를 꼽았다. 또 주야 맞교대로 13년을 일하다 숨진 산재사건을 들었다. 주야 맞교대가 야만적 제도라는 문제를 제기해 7년 만에 승소했다. 두 사건 모두 노동관련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쉬움도 많다. 재판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와해될 때도 있었다. 복수노조로 있던 경북 구미 한 사업장에서 단체교섭을 기피해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기각했다. 항소로 이겼지만 노동조합은 갈갈이 찢어졌다.

    ●진보정치, 그리고 SNS

    그는 19대 총선에서 창원을(성산구) 선거구에 무소속 예비후보로 잠시 나선 적이 있다. 진보진영 후보 조율을 위해 나섰지만 결국 무위에 그쳤고 여당 후보가 당선됐다.

    “진보정당이 진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후보로 내야 한다는 게 확고한 신념입니다. 노조활동 경력이 개인 출세의 통로가 돼서는 안 됩니다.”

    그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지난 총선에 시작한 SNS는 그에게 소통의 공간이자 자신을 달래주는 힐링 공간이다. 거침 없는 화법으로 속내를 여과 없이 털어낸다.

    “겉으로 보이는 번지르르한 얘기보다 속에 있는 맘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얘기는 별로 인기도 없고요. 반응이 폭발적으로 오더라고요.”

    ●밀양할머니들과 함께하다

    전국 현안인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에 그가 나타났다. 공사를 재개한 지난 10월에는 농성장에서 반대 주민들과 먹고 잤다.

    “보상으로 물러날 사람들이 아니구나. 실제 목숨 걸고 하는구나. 이러다 떼죽음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이 인간 생명보다 중할 수는 없습니다. 밀양은 법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습니다. 그냥 할머니들 얘기 들어주는 것밖에는….”

    그는 밀양을 통해 인간의 생명과 눈물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으로 정해졌다고 다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법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면 저항해야 합니다. 이게 법률가적인 (나의) 양심입니다. 악법이 밀양 사태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어떻게 법이 잘못됐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법률가의 소임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경쟁과 능력 위주 사회로 바뀌면서 적자생존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됐다고 우려했다.

    “강자가 약자를 보듬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글●이학수 기자·사진●김승권 기자

    박훈 변호사가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박훈 변호사● △1966년 출생 △광주 금호고·고려대 법학과 졸 △제40회 사법시험 합격(연수원 30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전국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소장(2004~2008) △박훈 법률사무소(2008.5~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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