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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산야구 역사 100년의 해 (상) 일본을 이기는 힘

극일에서 시작해 시민 오락으로 확산
창신학교서 나라 찾는 원동력 되고자 1914년 야구·축구부 창단
1920년대 구락부운동장 설립 후 친선경기 등 펼치며 인기 모아

  • 기사입력 : 2013-12-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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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시 체육사’에 실린 1922년 개최된 전조선야구대회에 참가한 마산선수들 모습.
     
    마산고와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 경기 장면./경남신문 DB/


     

    요즘 창원사람 둘만 모이면 ‘NC가 정말 연고지를 옮기느냐’는 이야기다. 이 뜨거운 관심에는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담겨있음은 물론이다. NC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마산구장은 ‘성지’였다. 지난날 마산아재들의 피끓는 청춘이 이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어느덧 마산아재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NC를 응원하는 날이 왔다. 특별히 야구 열기가 뜨거운 서울 대구 광주 부산 그리고 마산 등, 이 도시민들은 어떤 연유로 야구를 ‘사랑’하게 된 걸까? 그 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마산시 체육사’를 집필한 조호연 경남대 역사학과 교수, 지역사를 연구하는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교수, ‘창신 100년사’를 집필한 김재하 창신고 교사, 야구원로 김성길 전 경남야구협회장을 만나 마산야구역사를 들어봤다.


    ◆대한제국 후기 및 일제강점기·1914~1945년

    2014년은 마산에서 야구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된다. 마산 야구 첫걸음은 1914년이라는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 마산 최초의 야구팀에 관한 기록은 창신중·고등학교에서 발간한 ‘창신 90년사’에 수록돼 있다. 1908년 호주출신 선교사 아담슨(A. Adamson)이 창신학교를 설립한 뒤 1914년에 야구부와 축구부를 창단했다는 내용이다. 1911년 교사로 부임한 국학자 안확(1886~1946) 선생도 야구부 창단에 힘을 보탰다. 당시 안확 선생은 “방안에 앉아서 책만 읽다가 나라를 잃어버렸으니…우리는 문(文)도 해야 하지만 무(武)도 닦아야 하겠다. 곧 건강한 신체가 나라를 되찾는 원동력이 되니…” 라고 설파했다. 즉, 마산에서의 야구는 일제를 이기는 힘을 기르기 위한 극일(克日) 수단이었다. 물론 당시 경기 모습은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새끼줄이나 헌옷을 뭉쳐 공을 만들었고 나무막대가 곧 야구방망이였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첫 공식적 기록이 1914년 창신학교 야구팀 창단이라는 것일 뿐, ‘야구’라는 신문물이 언제 마산에 전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조호연 경남대 교수는 “마산은 일본과 인접해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일찍 야구에 눈을 떴을 것으로 보인다”며 “1920년 마산청년회 야구팀이 쟁쟁한 실력을 자랑하던 부산진청년단구락부와 창신학교 운동장에서 시합을 벌여 11-4로 크게 이긴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상당기간에 걸쳐 경기력을 쌓아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창신학교 야구부가 이후 어떻게 운영되고 변모해 갔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김재하 창신고 교사는 “동아일보사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기록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야구부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며 “학교에 남아있던 기록도 6·25전쟁을 겪으며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대구 계성고등학교에서 발간한 ‘계성학교 100년사’에 ‘계성학교 야구부가 인근에 마땅한 상대팀이 없어 마산 창신학교에 가서 친선경기를 가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것은 마산 최초의 대외 스포츠 교류이기도 했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야구는 화끈한 마산시민들의 입맛에 맞는 ‘오락’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러한 열기를 부추겼던 것이 1921년 노비산과 육호광장 중간 2700평 부지에 ‘마산구락부운동장’이 설립된 일이다. 당시 일종의 사회·정치계 사교클럽이었던 ‘마산구락부’가 약 6000원의 공사비를 마련해 운동장 터를 닦았다는 기록이 ‘마산시 체육사’와 ‘한국 야구사’에 나온다. 이곳은 매년 5~6월 시민운동회가 열리고, 1921년 ‘마산야구대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마산의 스포츠 메카로 기능했다. 이때 창신학교 야구부 출신의 김성두를 주축으로 한 ‘구성(九星)야구단’이 조직돼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야구단을 초청해 이곳에서 친선경기를 벌이며 인기를 모았다. 김성길 전 경남야구협회장은 “마산상고 야구부 선배들로부터 이야기가 전해져 왔는데, 야구는 아홉 명이 한다 하여 별 아홉을 의미하는 ‘구성’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들었다”며 “구성야구단은 당시 마산야구계를 주도하는 독보적인 야구단으로, 일본인들이 만든 실업청년회 야구부와 마산구락부운동장에서 붙어 17-16으로 승리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기록은 또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야구 경기가 진주에서 열렸다는 것. 1925년 3월 의신여자중학교의 전신 마산 의신여학교 졸업생 14명이 진주 시원여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야구경기를 벌여 이겼다는 기록이 ‘한국 야구사’에 나온다.

    유장근 경남대 교수는 “이 짧은 기록으로 남은 의신여학교 경기가 바로 국내 최초의 여자야구 경기였다”며 “이는 극일의 수단이던 야구가 다양한 계층의 오락으로 변모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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