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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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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78) 김참 시인이 찾은 김해 생림면 도요마을

한겨울 도요에 있는 네 가지
하늘과 바람과 강, 그리고 詩

  • 기사입력 : 2013-12-3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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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변의 도요마을 들판.
    낙동강변의 도요습지.
    도요습지와 낙동강으로 흘러내리는 산자락.
    김해 생림면 도요마을에선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강 너머로 보이는 곳이 삼랑진이다.
    도요예술촌




    십 년 전에 혼자 운전 연습을 하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도요마을. 그 무렵 나는 차들이 잘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을 다니며 운전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차는 종종 외딴 마을에 멈춰 잠시 쉬어가곤 했다. 도요마을도 그런 마을 가운데 하나다. 생림면에서도 상당히 외딴곳에 도요마을은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잡고 있다.

    산마을도 아닌데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도요에서 끝난다. 도요마을회관 앞 버스 종점은 차도가 끝나는 곳이다. 버스종점엔 감자집하장이 있다. 도요에서는 감자농사를 많이 짓는다. 도요마을뿐만 아니라 생림면 일대에서는 감자농사를 짓는 곳이 많다. 낙동강변의 모래에서 자라기 때문인지 이곳에서 나는 감자는 당도가 높고 맛이 좋다. 올여름 이곳의 강변축제에 놀라왔다가 감자 한 상자를 사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도요마을에서는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고 도요마을로 이어져 있는 굽은 길을 돌아가면 낙동강 푸른 물결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언덕을 넘어 바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고개 하나를 올라가면 순식간에 낙동강이 나타난다.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낙동강을 바라본다. 강 건너 삼랑진이 보인다. 삼랑진의 산과 산 위에 뜬구름도 보인다. 외진 곳이라 지나다니는 차도 드물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버스 종점 옆에 있는 도요예술촌 앞에서 잠시 멈춘다.

    도요예술촌은 시인이자 연극연출가인 이윤택 선생이 만든 예술인마을이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지만 최영철 시인이 출판사도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 이름은 마을의 이름을 따서 도서출판 <도요>로 지었다. 출판사 이름으로 출판사가 있는 마을 이름을 쓰고 있는 곳은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도요>밖에 없다.

    도요, 참 예쁜 이름이다. 최영철 시인은 이곳에서 무크지 <도요문학>을 내기도 한다. 올여름에 나온 무크지엔 내가 쓴 ‘낮잠’이라는 시도 실렸다.



    ‘내가 창문 활짝 열고 낮잠 잘 때 내 귀는 한여름 파초의 잎처럼 커다랗게 자란다. 내가 코 골며 꿈을 꿀 때 내 귀는 고구마 줄기처럼 길게 뻗어나간다. 내 귀는 냇가 돌담 옆에 민들레로 피어나 검은 염소가 풀 뜯는 소리 듣는다. 내가 낮잠 잘 때 내 귀는 쇠비름처럼 번지며 돌담을 따라 걷는 아이의 나지막한 발소리 듣는다.

    키 큰 남자는 그의 녹색 장화를 벗어 내 귀가 해바라기처럼 자라는 화단 너머로 던진다. 옆집 마당에서 안개꽃이 피어나 창백한 낮달로 떠 있는 내 귀를 바라본다. 옆집 아가씨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화단의 통통한 열대식물들을 내려다본다. 내 귀는 그녀의 지붕에 앉은 비둘기가 되어 그녀의 콧노래에 맞춰 고개를 흔든다.

    점점 커지는 내 귀에 흰나비 두 마리가 춤추며 내려와 앉는다. 내 귀가 이탈리아 식당 뜨거운 지붕 위에서 화덕의 피자처럼 빨갛게 익어갈 때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낮잠에서 깨어난다. 대문을 활짝 열고 집 밖으로 나가 느티나무에 뜨거운 귀를 붙인다. 바람이 분다. 내 귀는 느티나무에 가득한 초록 잎들로 돋아난다.’ -졸시 ‘낮잠’



    올여름에 도요예술촌에 와서 사물놀이 공연을 본 기억이 난다. 예술촌 안으로 조금 들어가 보니 그때 들었던 꽹과리 소리와 태평소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무더운 여름에 왔을 때는 그늘을 찾아다니며 겨울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데, 겨울에 와보니 바람이 차다. 예술촌 옆의 좁은 길을 따라가면 강둑이 나온다. 나는 강변에 펼쳐진 넓은 공원으로 가본다. 강변의 풀들도 모두 말라 있고 나무들도 잎을 떨군 지 오래다.

    길 한쪽엔 야영과 취사를 금지하는 표지판이 있다. 쾌적한 생태하천으로 유지관리하기 위해 하천법에 따라 취사와 야영을 금지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도요마을 강변의 넓은 들판은 야영을 하기에 딱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나도 트렁크에 텐트를 싣고 다니지만 야영을 할 만한 곳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넓은 들판의 한 모퉁이에 야영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면, 나는 잠 못 이루는 여름의 많은 밤을 이곳 도요마을 강변에서 보낼지도 모르겠다.

    여름 풍경과 겨울 풍경은 퍽이나 다르다. 초록으로 가득했던 강변은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강으로 내려가는 굽은 길 양쪽으로 감나무를 심어 놓았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갈대와 잡초가 자라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넓은 들판엔 아무도 없다. 빈 나무 의자가 외롭게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어제도 아무도 앉지 않았을 나무의자. 산책을 하다가 잠시 쉬어가라고 길가에 놓아둔 나무의자. 나무의자는 강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의자에 잠시 앉아 강을 바라본다. 강의 빛깔이 짙은 녹색을 띠고 있다. 강 건너 철길을 타고 기차가 간간이 지나간다. 산 위의 하늘이 정말 파랗다. 춥지만 않다면 하늘만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걸어가 본다. 걸어가며 강을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강을 내려다본다. 하늘도 강도 참 파랗다. 하지만 강이 옥색의 하늘빛보다 짙은 색을 띠고 있다. 강은 잔잔하게 흐르지만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쪽으로 잔물결이 생긴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강의 물결이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알려준다. 한참 걷다 보니 문득 길이 끝난다. 나는 키를 넘는 갈대와 잡풀이 뒤엉킨 곳을 헤치고 조금 더 가본다. 쓰러진 나무가 강에 뿌리와 몸을 담그고 있다. 가지가 하늘을 향해 휘어진 것을 보니 봄이 되면 푸른 잎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의 풍경은 더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강 옆에 있는 습지엔 살얼음이 얼어 있다. 가만히 보니 작은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그리고 산짐승들이 다녔을 법한 작은 길들도 눈에 들어온다. 애써 길을 만들며 가려고 해도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상동 쪽을 향해 흐르는 강 옆의 산에는 사람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처녀림이 있을 것 같다. 그곳에는 강으로 흘러내리는 산자락의 경사가 제법 가파르고 강 건너의 산과는 달리 나무들도 푸른빛을 띠고 있다. 예닐곱 개의 산자락 뒤에도 산은 계속 이어지지만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강은 그 산자락을 지나 천천히 흘러간다. 저 깊고 고요한 산 속에서 멧돼지와 고라니 토끼 같은 산짐승들, 비둘기와 꿩 같은 새들이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도요마을을 만들어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글·사진=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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