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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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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돼지 복지, 소크라테스 복지- 김홍섭(소설가)

  • 기사입력 : 2014-01-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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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뉴스를 보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복지폭탄을 맞은 형국이다. 부서마다 돈이 모자란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그야 예견됐던 일이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부자까지 복지 현금 안겨주겠다고 약속할 땐 ‘지나가던 소가 진짜 웃었다’는 웃지 못할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막상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눈치 보며 슬슬 뺄셈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나갈 돈은 천문학적이고 금고는 벌써 바닥이 보인다. 예산당국자들은 아마 전국의 마늘밭이라도 파보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모든 노인들을 대상으로 돈을 주겠다고 여야가 경쟁할 때 다 믿은 국민은 별로 없다. 왕창 퍼준다니까 ‘어 정말?’ 하고 반신반의하다가, 돌아서 자신에게 주어질 사탕이 몇 개인지 손가락 꼽으며 표정관리 하다가, 정말 그리 퍼줘도 나라 살림에 지장이 없는지 은근히 걱정도 했다. 그러다가 표 찍을 무렵쯤에는 ‘안 주기만 해봐라’ 하는 오기도 있었지만, 그건 정치인들의 대책 없는 큰소리에 대한 반작용의 감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입 안에 반쯤 넣어줬던 사탕을 슬슬 빼내고 있으니 모두가 불만이다.

    정말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가정이나 노인, 아동, 장애인들에게 기본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한 복지를 한다면 국민은 이해하고 수용했을 것이다. 잠시 들뜬 사람들도 정치인들이 사탕 준다는 꾐에 속았을 뿐 나라살림을 더 걱정한 건 국민이었다. 결국 정치인보다는 국민의 표준 사고가 정상이었다.

    표 얻겠다고 호언장담 아닌 허언장담 (虛言壯談)을 경쟁적으로 해대다가 기대치 잔뜩 올려놓고 돈이 모자라니 복지 이외의 다른 예산을 깎아먹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중 가장 먼저 낙지다리 자르듯이 잘라가는 게 규모도 제일 초라한 문화예술 관련 예산이다.

    지난 10월 중순 경남예술인총연합회가 주최한 경남문화예술제에서 홍준표 경남지사와 김오영 경남도의회 의장의 축사가 있었다. 특히 홍준표 지사의 뜻임을 밝히면서 김오영 의장이 한 말은 신뢰가 갔다. ‘부족한 복지로 힘들어하는 도민들의 가슴을 문화예술의 힘으로 따뜻이 채우기 위해 예산을 절대 깎지 않겠다’는 말에 뜨거운 박수로 예술인들은 답했다. 그리고 달포 남짓 후 경남문학관 예산의 거의 전부가 날아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의 약속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담당실무자가 칼 한 번 휘두르면 끝이라는 허무한 사실도 알았다. 이후 문학인들이 의회를 항의방문하고 재협의하는 과정에서 예산을 추경에 다시 편성해 주기로 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지켜보고 있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쯤에서 우리는 복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복지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다. 좋은 건강이 배만 부른 것은 아닐 테고, 윤택한 생활이나 안락한 환경이 등만 따습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몸만 살찌우고 영혼은 비워놓는다면 배부른 가축의 삶일 뿐 인간으로서 건강하고 윤택한 삶은 아니다. 몸과 영혼을 함께 채울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복지가 될 것이다.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고 했다. ‘인간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소크라테스가 될 필요는 없지만 배부른 돼지가 될 수는 더더욱 없다. 그 둘 사이에서 몸과 영혼의 균형을 갖춘 건강한 복지는 무엇인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 바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정치인들의 몫이다.

    김홍섭 소설가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간 작가칼럼을 집필할 4명의 필진이 구성됐습니다. 문학분야 각 장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필자들은 다양한 글감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홍섭(소설가) ▲옥영숙(시조시인) ▲차민기(문학평론가)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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