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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79) 박서영 시인이 찾은 거제 외포항

거제 외포항에 가면 OO가 있다

  • 기사입력 : 2014-01-0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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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 외포항 전경.

    외포항 수협 위판장 상자 안에 담긴 생대구.

    한 어민이 생대구를 씻고 있는 모습.

    바닷바람과 햇살 아래 말라가는 대구.



    항구에서는 불어오는 바람도 보인다. 바람이 누군가의 슬픔을 말려 깨끗이 비워내는 게 보인다. 거제 장목면 외포항에 가면 슬픔을 만들어내던 심장도, 내장도 다 드러낸 채 바람을 맞고 있는 생선이 있다. 대구(大口)다. 머리와 입이 크다. 깨끗이 비워냈지만 항구에서 부는 바람이, 비린내가 대구의 속을 건드린다. 야! 그만 좀 잊어버리게 내버려 둬. 대구는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다.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이쯤에서 인생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다. 저렇게 큰 대구로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이 세찬 물살을 지나왔을 것인가. 등에 검은 반점을 키우기까지 말이다. 그리고 키워온 속을 누군가를 위해 다 내주기까지 말이다. 알고 보면 대구라는 물고기는 바다의 황소라고 할 정도로 먹성이 좋다. 바다의 웬만한 물고기를 다 잡아먹을 정도로 끊임 없이 먹는 습성을 가졌다. 폭식의 대가다. 사람의 인생이란 것도 그렇다. 악다구니를 쓰면서 평생을 살 것처럼 싸우지만 죽을 땐 혼자다. 무연고 행려병자의 죽음을 수습하다 보면 한때 유명을 떨치던 이도 있고, 부자 소리를 듣던 사람도 있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말라가고 있는 대구를 보면서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인생에서 뭐가 가장 중요해요?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나는 대답을 못했다. 인생에서 뭐가 가장 중요할까! 중요한 게 많은 것 같긴 하다.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때론 무너져서 아프다. 나는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당신이 깨달으면 안 될까? 인생에 대해 나보다 저 대구어(大口魚)들이 훨씬 많이 깨닫고 죽은 것 같다. 어차피 산 자들은 과정에 있고, 죽음은 그 종착지다. 항구는 항해를 떠나는 자와 기다리는 자의 경계 같은 곳이다. 나는 언제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렸다. 오늘은 이 항구에서 나도 그냥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한다. 기다림의 비린내가 풍긴다.

    한 척의 배가 다가오자 리어카를 끌고 나온 여자가 남자가 건네주는 대구를 나무궤짝에 담는다. 생대구들이 상자에 가득 찬다. 항구에는 항구적인 남자와 항구적인 여자들이 산다. 기다림에 익숙하고 바람이 불어도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 건강하다. 목소리도 크다. 대구처럼 입이 크진 않아도 대구처럼 참 많은 걸 품은 목소리다. 대구는 자신이 품고 있던 모든 것을 사람에게 내 준다. 그래서 겨울에 잡히는 대구를 진객(珍客)이라 부른다. 대구는 산란을 하러 11월에서 2월 사이 진해만과 외포항 사이의 바다를 찾아온다. 그래서 이 시기에 거제도는 대구어로 지천이다.

    외포항에서 15분 정도 나가면 바다목장이 있다. 거제도에서 가덕도에 이르는 대구어 어장은 역사가 오래되었다. 1510년 삼포왜란 전에도 대구어장에 왜구가 불법으로 들어와 연안 어부들과 마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때 무분별한 어획으로 인하여 멸종위기에 처했다가 인공수정란을 방류한 덕에 대구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대구는 회귀성 물고기다. 떼를 지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을 낳는다. 물고기 몸에는 나침반이 있는 것일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나침반은 뭐였더라. 심장인가, 머리인가. 엎드려 누우면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잠이 오지 않는다. 늘 불규칙한 심장박동! 그럼, 그렇지. 나는 또 쓸데없는 생각으로 항구에 부는 바람 속을 어슬렁댄다.

    어판장을 지나 방파제까지 걸어가 보았다. 방파제가 대구 덕장이다. 한쪽엔 대구가, 한쪽엔 물메기가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다. 떠오르다, 파닥거리다, 흩날리다, 피어나다, 쏟아지다, 속삭이다. 바닷바람이 이런 말을 슬쩍 내게 던져주고 갔다. 바다에서 생각한 단어에는 아직 소금기가 묻어 있다. 바람이 날려 보낸 소금기지만 짜고 독하다. 갈매기도 물고 가기 뭣한지, 그냥 공중에서 빙빙 돌기만 한다. 슬픔의 날개가 또 어딘가에 돋아나는 것 같아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런 시선, 이런 눈빛, 이런 심장을 가진 덕에 인생이 좀 어려웠지 않나? 이봐, 눈물의 질량이 인생의 질량과 같지 않다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할 걸. 자꾸 울면 눈물에서 소금이 다 빠져나가 버릴 걸. 눈물이 민물이 되는 걸 원하는 건 아니겠지. 짭짤하고 독한 소금이 너의 삶을 다그치고 뜨겁게 한다는 걸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마도 당신은 이걸 깨닫게 해 주려고 내게 다가온 것 같다. 그리고 떠난 것 같다. 과거를 생각하면 외롭고 미래를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 아직 남아 있나요? 미래가. 민박집 창문은 자신이 뭔가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쉬지 않고 입술을 달싹거린다.



    두 번째 날 새벽 6시.

    외포항 수협 위판장에 나가보았다.

    추웠지만, 뜨거운 삶의 현장에서 뭔가 느낄 수 있기를….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고 적힌 수협위판장 안에서 한창 경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매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 신기했다. 긴 장화를 신은 남자들이 암호 같은 손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경매사의 알아들을 수 없이 빠른 말이 속사포 같았다. 대구는 이렇게 매일 낙찰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날씨가 추워 내 몸 안에서 깜박이던 잠도 달아나버렸다. 이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사실 간밤 바람소리에 잠을 자지 못했다. 민박집의 창문은 허술해서 바람이 다 들어왔다. 그 바람을 다 맞고 말라가고 있는 대구에 대해 생각했다. 대구라는 생선. 나는 바람을 피해 자꾸 달아났지만 대구는 바람을 다 맞으며 말라간다. 대구의 풍장(風葬)은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이 남아 있다. 대구의 암컷은 알이 있고, 수컷은 곤이 있다. 어제 저녁 먹었던 대구탕은 뽀얀 국물이 보약 같았고 비린내가 없었다. 대구탕, 대구찜, 대구포. 이 밖에도 아가미, 알, 내장, 그리고 정액 덩어리인 이리로는 젓갈을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잘 말린 대구 머리로는 국물 맛을 낸다. 버릴 게 없다.

    새벽 어판장의 활력 넘치는 어부들과 축 늘어져 있는 대구들이 대조적인 풍경이다. 생대구들이 꽤 우아하게 쌓여 있다. 반쯤 입을 벌린 채 소리 내어 본 적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물고기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더러는 반쯤 나온 알주머니들도 보인다. 톡! 터질 것 같은 알들이 가득하다. 바다에 있었으면 조금 더 지속되었을 삶이다. 경매가 끝나자 하나둘 사람들이 흩어진다. 이른 아침, 쭈그리고 앉은 여자는 잘 손질된 대구 속에 하얀 소금을 팍팍 던져 넣는다. 바다의 기억을 지우고 육지의 기억을 하얗게 채워 넣는 손길이 분주하다. 거제 외포항에 가면 우리가 어딘가 인생의 뜨거운 곳을 지나왔음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따뜻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직 남아 있나요? 미래가. 그렇다. 아직 남아 있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1월이니까. 어젯밤 바다 위에 달이 뜨고, 파도가 치고, 방파제에서 대구들이 말라가고 있는 밤풍경이 좋았다. ‘어이 인생!’ 하면서 나도 뒤돌아보고, 당신도 뒤돌아보는 풍경. 독하고 짠하고 추워서 눈물 나고, 그리워서 심장이 두근대는 바로 그 풍경. 외포항에 가면 있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이빨 세우고 살아보려는 사람이, 말라가는 대구의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처음으로 ‘항구의 아침’이라는 단어를 주웠다.

    글·사진=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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