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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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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새해의 인생설계- 최환호(경남은혜학교 교장)

  • 기사입력 : 2014-01-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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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한 살 먹었다. 양희은의 노래. “가을 지나면 어느새/ 겨울 지나고 다시 가을/ 날아만 가는 세월이 야속해 붙잡고 싶었지(‘내 나이 마흔 살에는’).” 누가 그랬다. 나이에 2를 곱하면 세월의 빠르기라고. 속절없이 세월은 흐르고 가슴은 무너져 간다.

    그저 나이를 먹는다고, 폼만 잡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철이 든다’는 말만 따져 봐도 알 수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인정받으려면 계절의 순리를 알고, 그에 따른 노동의 인고와 책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 사회를 ‘어른이 없는 사회’라 함은 추상같은 자기성찰은커녕 남 탓에 영일이 없고 겉멋만 잔뜩 든 ‘애 어른’들만 그득하기 때문이다. 더하여 자신의 이력을 상품으로 팔아먹고, 변절을 능력으로 치부한다. 예컨대 현대사의 총선과 대선 등의 선거판에서 ‘반(反)지성·비(非)상식의 승리법’을 숙달한 소아영웅주의자들, 그들의 구태에 그 얼마나 침 뱉고 구토하였던가. 아! 맨 얼굴의 진중한 어른이 그립다.

    삭풍과 한파의 계절에 다시 김수영 시집을 읽는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간다 속돼간다(‘강가에서’)”는 시구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나이에 비례한 정신적 성숙은 고사하고 끊임없이 속물이 돼가는 자신과 사회가 역겹지 않은가.

    문득 ‘거울은 멀리 있지 않다(殷鑑不遠)’는 말이 생각난다. 자기 몰골을 봐야 자기 세계가 비로소 보인다. 자기세계를 보는 사람은 헤르만 헤세의 말을 기억하리라.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데미안’).” 새가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알부터 깨고 나와야 하듯, 각고의 성찰에 근거한 깨우침에서 새로운 자기세계의 문은 열리는 법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미련한 존재라 식겁하기 전까지는 미망에서 깨지 않기에.

    앞뒤로 두 얼굴을 지닌 1월(January)의 신, 야누스(Janus)처럼 지난해의 잘못을 돌아보고 새해를 제대로 설계해야 하리라. 중국 송대의 학자 주신중(朱新仲)은 한평생 살아가면서 다섯 가지의 계획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첫째, 생계(生計).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하는 직업 문제다. 둘째, 신계(身計)인데 건강관리다. 셋째는 가계(家計)로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는 일이다. 넷째, 노계(老計)는 노후설계이다. 다섯째, 사계(死計)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인생오계(人生五計)’를 잘 세워 실행한다면 살아서 복을 누리고 죽어서 참 인간으로 기억될 게다.

    인생오계의 지향점은 서경(書經)의 오복(五福)을 누리는 데 있다 하겠다. 즉 수(壽·오래 사는 것), 부(富·부유하게 사는 것), 강녕(康寧·심신이 건강하게 사는 것), 유호덕(攸好德·선행을 베풀어 덕을 쌓는 것), 고종명(考終命·질병 없이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오복 중 하나라도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불쑥 솟아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인생 현자들의 경책이다. 성심을 다해 설계한 삶의 지난한 실천, 그 땀과 눈물과 피의 결실이거늘.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有始者必有終)’이라. 도연명 왈, ‘일생이 번개처럼 지나간다’고 했으니, 이미 시작된 인생이니 곧 끝나지 않겠는가. 매화 잠깐 피나 했더니 국화도 금방 져버렸다. 인생조로(人生朝露), 아침 이슬 같은 삶인 것을.

    문제는 유시지중(有始之重)보다 유종지미(有終之美), 곧 시작의 중요성보다 마무리를 확실하게 잘하라는 가르침이다. 벌써 잊었단 말인가. 해마다 세모(歲暮)의 벼랑 끝에 서서 회한으로 가슴을 쥐어뜯던 그 동통을.

    새해 초입. 사납던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고요히 앉아 제 나름의 인생설계를 해봄이 어떠할꼬. 오직 철저한 설계와 실천만이 ‘뒤로 물러나 숨는 생의 은퇴(隱退)’를 넘어 ‘물러나서도 빛을 발하는 은퇴(銀退)’로 만들 수 있음을….

    최환호 경남은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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