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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45) 통영 사량도 옥녀봉

아, 아찔한 황홀

  • 기사입력 : 2014-01-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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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시 사량도 지리망산 등산로에 설치된 출렁다리 위를 걸으면 아찔함 속에 옥녀봉을 비롯해 하도 전경, 섬 주변 경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빼어난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통영. 통영 사람들은 사량도를 ‘통영 8경’ 중 한 자리에 놓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굽이진 찻길, 배로 40여 분 걸리는 물리적 거리와 거칠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만드는 심리적 장벽으로 사진으로만 감상하고 귀로만 명성을 전해 듣는 이가 적지 않다.

    지난해 옥녀봉과 가마봉을 잇는 출렁다리가 완공이 됐다. 지난 2009년에는 통영 가오치 선착장이 신축되는 등 사량도는 낯선 이에게도 적극적인 구애의 손짓을 하고 있다.

    지금은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뚫려 잘 이용하지 않지만 고성 신월IC에서 고속도로 개통 이전 고성과 통영을 잇던 남해안대로를 타고 통영 도산면 가오치 선착장에 지난 14일 도착했다.

    다른 뱃길도 있지만 가오치 선착장은 주차비도 받지 않고 주차면도 충분해 차로 오가기 편하고 카페리에 차를 싣고 섬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 뱃길은 동쪽으로는 통영이, 서쪽으로는 삼천포 와룡산 등이 감싸고 있어 요즘같이 날씨가 맑은 날엔 잔잔한 바닷길을 뱃멀미 없이 멋진 사진을 맘껏 찍을 수 있다.

    사량도는 북쪽의 상도와 남쪽의 하도 두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두 섬 사이로 페리선이 지나가면 우뚝 선 콘크리트 기둥 두 개를 볼 수 있다. 2015년 완공될 사량도 연도교의 기둥으로 공사가 끝나면 사량도의 관문으로서 연중 문을 닫지 않고 오는 이를 반기게 된다.

    사량도 상도의 진촌 선착장에 내렸다. 도로를 따라 걸으면 옥녀봉 등산로 입구까지 멀지 않아 걸어가도 되지만 17㎞의 상도 일주도로 풍광도 뛰어나 배에서 내리자마자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등산객을 앞질러 가는 이도 많다.

    키 큰 전나무와 산죽이 병풍을 친 오솔길을 금방 지나 옥녀봉 등산로 입구에 다다르면 처음부터 정강이 높이를 넘는 돌 비탈길과 나무계단 길이 시작된다.

    사량도 상도 봉우리들의 첫 관문인 옥녀봉까지 이대로 가파른 길이 쭉 이어진다.

    사량도의 봉우리를 올라본 사람들은 봄과 가을이 가장 볼만하다고 한다. 그러나 짧은 거리에도 땀을 흘리도록 만드는 옥녀봉 산길과 다 오르고 나면 막힌 곳 없이 탁 트인 산봉우리의 바람이 흐른 땀을 한 번에 훔쳐가는 것을 안다면 여름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산등성이에 서면 맑은 날씨에 바람이 강하지 않아 춥지 않다. 한 모금 크게 마신 겨울 공기가 두꺼운 패딩점퍼 속 뜨거운 폐부를 한 번에 식혀준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파른 비탈 중간에는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길도 있어 숨이 점점 가빠진다.

    밧줄을 잡고 험한 돌 비탈을 지나면 가파른 철제 계단이 나온다. 계단마다 수북한 염소똥이나 가쁜 숨에 겨울 감기로 거담이 끓어오른다는 푸념은 ‘옥에 티’에 불과하다.

    옥녀봉 흑염소들은 산주인인 양 위태로운 절벽에 능숙한 자세로 서서 등산객들이 쓰레기를 버리는지 감시하다가 한숨 쉬어갈 참 카메라를 꺼내 조준하면 지친 등산객을 희롱하듯 절벽을 뛰어내려간다.

    옥녀봉은 해발 261m밖에 안 되지만 배에서 내려 산봉우리까지 걷는다면 수직 261m를 에누리(?) 없이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오르기 만만찮다.

    철제계단과 나무데크 길을 무사히 지나도 경사가 30도에 가까운 돌벽이 다시 나타나 밧줄을 잡거나 암벽등반하듯 기어서 올라야 하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한 사람들은 GOP의 가파른 돌계단을 떠올릴 듯하다.

    하지만 거리가 짧기 때문에 쉬지 않고 걸으면 30분, 쉬엄쉬엄 걷다 보면 1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옥녀는 자신을 겁탈하려는 아비에게 소가죽을 덮어쓰고 자신을 따라오면 몸을 허락하겠다 말한 뒤 옥녀봉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면 포기하겠지’라는 옥녀의 기대를 저버리고 옥녀의 아비는 욕망에 눈멀어 산에 올랐고, 결국 옥녀는 산 정상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마치 옥녀의 한을 품은 듯 응달진 옥녀봉 북사면 아래 철을 잊은 단풍이 눈에 띄었다.

    정상에 올라 흙 묻은 손을 털고 뒤를 돌아보니 형형색색 등산복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건너건너 보인다. 오르기 쉽지는 않지만 ‘정복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오를 산으로 피신한 옥녀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진촌 선착장에서 옥녀봉까지는 0.6㎞로 가마봉~불모산~월암봉~지리산까지 가도 1.1㎞의 짧은 길이다.

    가장 높은 산인 불모산이 400m로 지리산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도 길지 않다. 삼천포 화력발전소 굴뚝 연기와 통영 서쪽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어 맘 편하게 걸을 만하다.

    과거에는 옥녀봉에서 가마봉으로 가려면 가파른 길을 힘들게 내려가 다시 절벽길 여럿을 올라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 출렁다리가 만들어지면서 수월해지고 볼거리도 많아졌다.

    튼튼한 외관에도 짓궂은 이와 함께 가면 오싹해지는 출렁다리의 재미는 그만이다. 택견고수가 품밟기 하듯 굼실능청, 설장구 맨 사물놀이패 걷듯 절로 오금이 저리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내려오는 길에는 숨가빠 미처 보지 못했던 바다 절경을 즐기면 되고 옥동 다랑이 논이나 대항해수욕장을 낀 일주로도 볼만하다.

    산을 내려와 일주로를 따라가면 곳곳에 낚시 포인트가 있고 촛대바위, 평바위 최영 장군 사당도 있다. 산림청이 100대 명산에 뽑은 ‘해양 절경의 패스트푸드식 토털 패키지’라고 할 만하다.

    배 타러 나가는 길, 면사무소에서 에어건으로 신발에 묻은 흙을 털고 있으면 ‘먼지는 털고 가고 추억은 담아가십시오’라는 안내문이 다정스럽게 다가온다. 배에 탄 이들 모두 오가는 이야기에 추억이 한가득이다.

    글=원태호 기자 tete@knnews.co.kr 사진=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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