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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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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마필관리사 조상호 씨

“나는 경주마의 조련사이자 수의사, 장제사, 영양사랍니다”

  • 기사입력 : 2014-01-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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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필관리사 조상호 씨가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마방에서 말의 목을 감싸며 웃고 있다.



    경남에 말 경주를 진행하는 곳이 있다. 바로 김해 부산경남경마공원.

    이 밖에도 수많은 사설 경마장이 있고, 말 관련 사업이 성장하고 있다.

    경마장에서 진행되는 경마는 팀별로 이뤄진다. 프로스포츠 팀과 같다.

    구단주 격인 ‘마주’가 있고, 감독 격인 ‘조교사’가 있다.

    그리고 선수인 ‘기수’와 경주마, 경주마를 키우고 조련하는 역할을 하는 ‘마필관리사’가 있다.

    조교사와 기수, 마필관리사는 모두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필요에 따라 시험을 치고, 최소한의 경력이 있어야 응시자격이 주어질 정도다. 한마디로 ‘프로페셔널’이다.

    2014 갑오년 청말띠 해 1월, 항상 말과 함께하는 사람을 만나본다.


    ◆몽골의 초원에서 꿈을 꾸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는 조상호(34) 씨는 경력 8년차인 마필관리사다.

    조 씨는 부산 동서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를 졸업했다. 수많은 운동을 한 체대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선뜻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

    대학 4학년, 조 씨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몽골로 여행을 떠났다. 특별히 몽골이 좋아서도 아니었고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관광상품인 초원에서의 말 타기를 하기 전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말을 타고 드넓은 몽골의 초원을 달리는 순간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사실은 말을 탄 것도 아니었죠. 말이 이끄는 대로 한참을 달렸습니다. 기분이 묘했죠.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막연하게나마 그는 앞으로의 진로는 말과 함께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경마나 말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승마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사설 승마장에서 레슨을 받기도 했다. 말을 타면서 무척 즐거웠고,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신체조건이 까다로워 기수는 되지 못했지만 그의 꿈은 여전히 말과 함께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2007년 한국마사회(KRA)에 입사했다.


    ◆말의 고삐를 쥐어라= 말의 고삐를 쥐고 훈련시키는 이른바 ‘짬밥’이 되려면 몇 년을 일해야 한다.

    그가 처음 한 일은 ‘구사’, 즉 말이 머무는 마방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더 적나라하게는 말똥 치우는 일. 깔짚을 깔고, 마방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경주마는 ‘귀하신 몸’이다. 족보까지 갖추고 혈통을 중시하는 경주마. 부산경남경마공원에 있는 경주마의 평균 가격은 한 마리에 4500만 원. 2억 원이 넘는 경주마도 있다.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기고, 놀아주고, 훈련시키고 이 모든 일을 하는 이들이 바로 ‘마필관리사’다.


    ◆나는 마필관리사다= 일반 사설 승마장에서는 마필관리사라는 명칭 대신 말 조련사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경주마를 관리하는 이들은 특별히 마필관리사라고 한다.

    마필관리사는 어린 말들을 경주마로 만드는 사람이다. 경주마 훈련에서부터 사료를 먹이는 ‘사양관리’, 말이 생활하는 마방의 볏짚을 교체하거나 청소하는 ‘구사관리’, 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목욕을 시키는 등의 ‘보건관리’, 말발굽을 관리하는 ‘장제관리’ 등을 책임진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만 260여 명의 마필관리사가 있다.

    마필관리사도 ‘평관리사’에서 일정 기간 경력을 쌓고 시험을 통해 ‘조교승인’ 단계를 거치고, 다시 경력을 쌓아 시험을 거쳐 ‘조교보’가 된다. 조교보는 감독인 조교사를 돕는 ‘부감독’ 혹은 ‘수석 코치’ 역할을 한다.


    ◆격무= 말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마필관리사는 결코 쉬운 역할이 아니다. 마방에 들어오는 경주마는 어린 말들이다. 거의 ‘야생마’ 수준이다. 경주마는 사람보다 크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지 않고 원래 예민한 동물이다. 말발굽에 차이기라도 하면 최하 중상이다.

    조상호 관리사 역시 두 번이나 큰 부상을 당했다.

    “새끼발가락을 밟혀서 뼈가 부러지기도 했고,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죠. 그러기에 말고삐를 쥐려면 오랫동안 말과 친해져야 하고 잘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500㎏의 말을 50㎏의 마필관리사가 이길 수 없죠. 이겨도 안 되고요.”

    단순히 말을 돌보는 차원이 아니다. 말 전문병원이 경마장 내에 있지만 간단한 처치는 마필관리사의 몫이다. 말의 신발인 ‘편자’를 갈아 끼우는 ‘장제사’를 돕는 것도 마필관리사의 일이다. 말 먹이를 주는 것도 ‘영양사’ 수준으로 공을 들인다.


    ◆유혹= 경마의 핵심 구성원인 조교사와 조교보, 기수, 마필관리사에게는 유혹이 많다. 경마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이들이 오기도 한다. 당연히 이들에게 시쳇말로 ‘소스’를 요구하는 이들이 많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경마공원으로 오는데 기사님이 무슨 일을 하냐고 묻더라고요. 솔직히 얘기했더니 다짜고짜 차를 세우더니 제 앞에 무릎을 꿇더군요. 어머님이 아픈데 도와달라는 겁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게 정답이죠. 실제로도 구성원 누구도 어떤 말이 우승할지 모릅니다. 그게 경마의 묘미죠.”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정보를 달라는 청탁이 많이 들어오지만 지금은 웃고 넘긴단다. “그걸 알면 제가 돈을 벌었겠죠. 제 직업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여깁니다.”


    ◆목표= 그는 지난 2010년 조교승인을 취득했다. 평관리사 3년을 거쳐 시험을 통해 이룬 것이다. 그다음 목표는 조교보. 그리고 경력을 쌓아 경주마 팀의 감독인 조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의 팀은 지난해 가장 큰 경주인 대상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상금랭킹 3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승수를 많이 쌓지 못했다. 지금은 개인적인 꿈보다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 그러자면 자신의 역할인 말 관리에 더욱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최고의 영예= 몽골의 최대 스포츠 축제 ‘나담축제’ 승마 경주에서 우승하면 기수보다 말 조련사에게 더 큰 포상이 돌아간다. 몽골은 경마 발전에 이바지한 조련사에게 ‘알다르트오야츠(명예 경주마 조련사)’라는 칭호까지 붙여준다.

    그에게 최고의 영예는 무엇일까? 대답은 의외였다.

    “제가 키운 말들이 은퇴식을 하는 겁니다.”

    그의 팀에서 ‘천년대로’와 ‘연승대로’ 두 마리가 은퇴식을 했다. 최고의 경기인 ‘대상경주’ 우승경력이 있는 말들이고, 크게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은퇴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은퇴식을 한 말은 역대 9마리밖에 없습니다. 명마로 인정받는 거죠. 명예롭게 경마장을 나가기가 그만큼 어렵습니다. 제가 키운 말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명예롭게 나갈 수 있게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저에게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글=차상호 기자·사진=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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