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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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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역사, 아프게 기억하고 바르게 가르치자- 차민기(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4-01-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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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간쑤성(甘肅省)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둔황(敦煌)’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이다.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고대 동서교역과 문화교류로 흥했던 때가 있었다. ‘막고굴’은 이곳의 동서양 문화를 한데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막고굴은 4세기경부터 13세기에 이르는 동안 가로 1600여m 절벽에 1000여 개의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각각 조각을 새기고 벽화를 그려 넣었는데, 현재 보존되고 있는 불상과 소조상이 2400여 점이고 벽화는 4만500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역으로 가는 막막한 사막 앞에서 사람들은 그 먼 여정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이곳에 불상을 모시고, 벽화를 그려 저마다의 간절함으로 손을 모았으리라. 신라의 승려 혜초(慧超: 704∼787)가 고대 인도를 답사한 뒤에 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발견된 곳도 이 막고굴이었다. 규모면에서뿐만 아니라 불교와 이슬람 문명이 겹쳐졌던 역사가 여러 곳에 기록돼 있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자 역사관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 많은 석굴들 안에서 1000년의 모래바람을 견디었던 고대 유물들은 1900년대 이르러 서양과 일본의 제국주의 수집가들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실려 나갔다. 막고굴에 이어진 회랑에는 그 수집가들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생몰연대까지를 액자로 걸어 놓아 오가는 이들의 눈에 쉽게 띄게 해놓았다. 그리고 그 회랑의 마당 한가운데에 ‘둔황은 우리나라(중국) 학술의 가장 아픈 역사이다’는 비명(碑銘)을 새겨 역사를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지난날을 아프게 되뇌고 있다. 그뿐 아니라 막고굴에서 일하는 문화해설가들은 관광객들의 국적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제국주의의 문화수집가들을 일컬어 ‘도둑놈’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일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고, 또 그를 바탕으로 우리들의 나날살이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지난해 ‘역사’ 과목이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역사 교육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의 역사 수업은 여전히 연도별 암기와 왕조 중심의 사건에 치우쳐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문제가 정치적 대립의 문제로 확산되고 되풀이되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일 것이다. 수능 과목으로 지정해 대중의 관심을 높였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역사 교육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큰 오산이다. 오히려 그것은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증가시키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지출을 늘리는 부작용으로만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암기된 역사 정보와 왕조 중심으로 편중된 사건들은 한 달만 지나면 금세 잊히고 만다. 수천 년 역사의 흐름을 몇 달 만에 줄줄 외고, 또 그보다 더 빨리 까먹어 버리는 이 우매한 역사 교육이 언제까지 반복될 것인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역사를 점수로 환산해 그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그것으로 대학 진학의 가늠자로 삼는 일은 결국 십수 년 전의 교육으로 되돌아가는 꼴이다. 제도란 한 번 시행함으로써 그 잘잘못을 가리고 그를 바탕으로 더 나은 제도로 다듬어가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눈앞의 결과물들이나 대중의 즉각적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조변석개식으로 뒤집는 일은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사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손을 보아야 한다. 막고굴에서 보았던 것처럼 역사의 가장 아픈 자리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에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뒤틀고 헤집었는가를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뒤틀리고 헤집어진 자리를 바로잡고 기워야 할 일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연일 삐져나오는 요즈음에 강국들 앞에 힘없이 무너졌던 우리 역사의 아픈 한때를 되뇌어본다.

    차민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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