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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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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소준구통(疏浚溝通)- 도랑을 틔우고 쳐내어 물이 통하게 한다

  • 기사입력 : 2014-01-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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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어른들로부터 야단을 아주 많이 맞는 아이였다. 다른 애들보다 엉뚱한 짓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할아버지가 대도시의 병원에 가서 창자를 잘라내는 수술을 해서 살았다는 말을 듣고, 남의 집 어린 닭을 몰래 잡아와 숨어서 배를 갈라 창자를 잘라내고 다시 기워서 보내주고는 관찰한다든지, 벌레를 물고 와서 새끼에게 먹이는 제비의 집이 높은 대들보 위에 있을 필요가 있겠나 싶어 벌레가 많은 나무 속에다 뜯어 옮겨준 일 등이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다른 형제나 사촌들 보다 나에게만 화를 잘 내고 많이 나무란다 싶어, 내게 일어난 일은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만 꺼내면 화를 당하거나 꾸지람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슨 소식을 전달받고서도 혼자서 간직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입을 떼었다. 어린 생각에 꾸중을 듣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속셈이었는데, 이것이 어느덧 습관이 되었다. 나중에는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필자의 입으로는 집에 와서 말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 이후에도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미루고 미루다 맨 마지막 순간에 이야기를 하여 여러 차례 충고를 듣게 되었다.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런 식이다. 그러나 고치려고 노력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식이다.

    요즘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소통(疏通)’이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소통이 되려면, 먼저 소통에 장애가 되는 환경이 없어져야 한다.

    소통이란 원래 강이나 내가 막힌 것이 없어 물이 잘 통하는 것이다. 강에 장애물이 없고 바닥에 토사가 쌓이지 않아 물이 잘 흐를 때 홍수가 예방되는 것이다. 강바닥에 토사가 많이 쌓여 있고 나뭇가지나 돌 등이 강을 막고 있으면, 비가 많이 내릴 때 둑이 터지거나 넘쳐 농토를 버리게 돼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수시로 강이나 내의 바닥의 흙을 파내고, 물 흘러가는 길의 장애물이나 쓰레기를 제거해 물이 잘 흐르도록 해서 홍수를 예방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도 ‘막힘 없이 물 흐르듯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막힘은 무엇인가? 직위의 차이, 영향력의 차이, 이해관계의 차이 등등이 막힘이 된다.

    대통령이 장관들 보고 소통을 하자고 하지만, 장관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가는 그 뒤에 오는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 한다.

    거래하는 회사 사이에서도 약한 회사가 강한 회사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 한다. 약한 회사의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회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소통을 하자고 한다면, 우위에 있는 사람이 소통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소통’은 그냥 ‘통과한다’나 ‘지나간다’는 뜻과는 다르고, ‘막힌 좁은 곳을 지나 통과한다’는 뜻이 있다. ‘소(疏)’의 뜻에는 ‘통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성기다’, ‘엉성하다’는 뜻도 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강한 사람이 마음을 비워 좀 ‘엉성한 허점’을 보여 주어야 친근감을 느껴 통할 수 있는 것이지, 너무 빈틈이 없으면, 소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疏 : 성길 소. 트일 소. * 浚 : 칠 준.

    * 溝 : 도랑 구. * 通 : 통할 통.

    - 도랑을 틔우고 쳐내어 물이 통하게 한다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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