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그림자 나무- 이기영

  • 기사입력 : 2014-01-23 11:00:00
  •   




  • 나는 해를 받아먹는 나무지요

    가지마다 푸른 입 유전자처럼 달려서

    푸른 혀 내밀고 뜨거운 해를 먹지요

    해 먹는 나무는 아이를 가지지 못해요

    태어나지 못하는 아이는

    뜨거운 처녀막 찢고 새가 되어 날아가지요

    당신은 달을 받아먹는 그림자지요

    우듬지마다 달집 지어놓고

    입술을 새조개처럼 열고

    눈이 하나씩뿐인 새를 기다리지요

    달 먹는 그림자는 둥근 꿈을 꾸지요

    주렁주렁한 푸른 알을 낳지요

    달이 해를 먹어 흰 꽃이 피지요

    해가 달을 먹어 당신의 알이 붉게 익지요

    사랑은 순간이지요.

    섭씨 85도로 끓는 한 잔의 물속에서

    하얀 수정의 발이 동동 떴다 사라지지요

    그리운 건 그림자 아래서도 잘 익지요

    당신의 흰 그늘

    어루숭어루숭하다 가지


    ☞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그녀의 상냥한 거짓말이 보여, 자신이야말로 해이기도 달이기도 나무, 새 또는 많은 것의 그림자이기도 한 순정적인 거짓말이 보여. 섭씨 85도로 끓는 한 잔의 물속에서 하얀 수정의 발이 동동 떴다 사라진다는 사실 다 알면서, 누군가 다가와 푸른 알을 낳을 때까지 그 알이 붉게 익을 때까지 은근한 몸짓으로 기다려주는 예의바른 그녀.

    80년대 여배우처럼 멋진 모자와 멋진 목소리로 처음 만났던 사랑스런 그녀. 어때요 어수룽어수룽거리다 가버린 바로 당신. 아무리 사랑이 순간이라 해도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그리운 시인의 집 마당으로 우리 잘 익은 꽃 보러 함께 갈까요. 김혜연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