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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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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서둘러 갈 일이 무엇인가- 김병식(초당대학교 총장)

  • 기사입력 : 2014-01-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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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정월이다. 다음 주면 설이다. 높은 정신에서 보면 시간은 지혜의 그림자 같은 것이어서,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한다. 그러나 세파를 이기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맘때쯤이면, 무엇인가 새로운 계획도 세우고 올해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것이 상정이다.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책임자들도 새해 신년사라는 것을 내놓는 것을 보면 같은 생각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이때가 되면 나는 홈페이지를 뒤져 이것들을 살펴보곤 한다. 대개 덕담과 함께 자기 조직이 해야 할 계획 등을 밝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나름대로 잘 살펴보면, 그 해의 흐름을 예견할 수 있는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해 내 일의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사람의 욕망이 관여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고도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경제나 주가 예측이 그토록 터무니없는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앞일이 궁금하니, 이렇게라도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지도자들이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는 속내를 신년사의 행간에 드러내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는 또 다른 덤이다. 보름 전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경제를 생각하면 ‘1초도 아깝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나는 ‘아, 올해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렵겠구나, 그래서 청와대도 초조해하는구나. 대학운영에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물론이고, 예년에도 빠지지 않는 신년사의 단골메뉴는, 이미 짐작하겠지만, 역시 ‘변화에 대한 강조’이다. 보통 신년사에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는 두 부류가 있다. 소극적으로 순응할 것이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인가이다. 조직의 상황에 따라 선택은 다를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국내외 경제나 정치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의 수가 많은가를 가늠해 보면 그 해의 추세를 짐작할 수 있다. 올해는 소극적 입장이 많다는 판단이다. 물론 변화를 적극적으로 리드하겠다는 초일류기업인 삼성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그런데 다른 하나, 올해 신년사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점은 많은 이가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성원들과의 대화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왜 새삼스레 소통인가. 카카오톡, 페이스북, 문자 주고받기 등 소통의 도구가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한 스마트 1등인 우리 사회에서 말이다.

    정쟁으로 다투기만 하는 정치권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일까. 아니면 여성대통령을 맞아 따뜻한 카리스마를 기대했는데 역으로 원칙만을 주장한데 대한 실망일까.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새삼 그 원인 등을 따질 계제는 아니지만, 다만 무엇인가 답답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진정한 소통은 관심사, 가치관, 감성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래저래 정월의 상념이 무겁다. 그래도 올해는 재미있는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가 많아 다행이다. 소치올림픽, 인천 아시안게임, 브라질 월드컵 등을 생각하면 즐겁다.

    종합하면 올해도 역시 세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 같다. 그래서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드셀 전망이다. 빅데이터 시대라는 전문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편리한 도구로, 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인네와 노약자까지 경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변화는 가속될 것 같다. 과거 수천 년 동안 생성됐던 정보의 양이 지금은 단 10분 만에 생산된다 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아니 변화속도가 주변의 속도보다 늦으면 최후를 염두에 두라고 시장은 위협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인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현실이 꼭 그렇다.

    다른 이야기지만, 어떤 연유로, 즉 몸이 불편하다든지 해서, 몸을 천천히 움직일 때 우리는 의외로 편안함을 느낀다. 느림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 제 속도다. 움직임이 본질인 자연계는 나름대로 모두 자기만의 속도영역, 즉 유효속도가 있다. 물질 속의 전자(electron)는 전자대로, 초원을 달리는 타조는 타조대로 말이다.

    일전에 눈 밝은 친구가 놓고 간 판각, 그 모퉁이의 글귀가 생각난다. “서둘러 갈 일이 무엇인가.”

    김병식 초당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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