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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50) 조각가 천원식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내 안의 섬’

  • 기사입력 : 2014-01-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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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천원식 씨의 작품 변천사 1. 2001년 作 '돼지꿈'


    2. 2003년 作 '현대인Ⅰ'


    3. 2007년 作 '섬으로 가는 길 07-Ⅱ'


    4. 2009년 作 '오아시스를 찾아서- 여름날Ⅱ'

    5. 2009년 作 '오아시스를 찾아서 Ⅰ~Ⅶ'
     

    6. 2011년 作 '오아시스를 찾아서 Ⅸ'


    7. 2013년 作 '조르바의 열매'
     
     
    조각가 천원식 씨가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라인더를 이용해 표면을 다듬고 있는 천원식 씨.



    섬은 그에게 숙명(宿命)이다. 단지 그곳에서 태어났고, 삶이 시작됐다는 생물학적이나 지정학적 의미는 아니다. 섬은 바다 위, 밀려드는 파도가 만든 포말 위에 우뚝 솟아 있다. 평면이 아닌 입체(立體)다. 섬의 모습은 또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사방팔방을 옮겨 다닐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덩치 큰 오브제다. 육지로 나갈 때 멀어지는 섬, 집으로 향할 때 다가오는 섬의 모양은 전혀 다르다. 낮과 밤. 해와 달이 바뀌는 시각시각마다 빛깔과 느낌도 사뭇 다르다. 그는 섬의 그런 빛깔과 형상(形象)을 좋아했고, 그런 모습을 가슴속 깊숙이 간직한다.


    ◆섬의 빛깔과 형상을 재현하다

    조각가 천원식. 경남전업미술가협회장, 경남현대조각가협회장, 전국조각가협회 이사 등 현재 맡고 있는 직함만으로도 분주하다. 여기에 작품까지 쉬지 않고 만들어 내고 있으니, 지역에서 몇 안 되는 바쁜 조각가다.

    창작에 대한 에너지, 일에 대한 열정은 어디로부터 시작됐을까.

    작가는 특성화고(공업계)를 졸업하고 미술을 전공으로 택한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시작은 평면 회화였다. 하지만 아주 우연히 선배가 만들고 있는 흉상(胸像)에 눈이 꽂혔다. 작가는 “충격이었다. 사방에서 볼 수 있는, 각각의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미술이 있다는 데 숨이 차올랐다. 당장 두상(頭像)을 만들어봤다. 작업을 마치자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듯한 희열이 몸 구석구석에 퍼져왔다. 상상도 못한 형태가 나온 데 대해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난생처음 흙으로 빚어낸 작품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성공이었다. “괜찮은데…”라는 말이 이어졌고, 지도교수도 “자질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회화에서 조각으로 방향을 틀게 된 시점이자, 결정적 계기다.

    작가는 이후 구상작업에 몰두한다. 그에게 눈에 비치는 모든 사물이 구상이었다. 그것이 인체가 됐든 뭐가 됐든, 손끝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 내려는 집념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다.

    작가는 “아마도 가슴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해둔 섬의 빛깔과 형상을 재현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머물고만 있던 생각들을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작업들은 나에게는 희열과 감동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오브제… 풍자적 유희와 창작욕구 도구

    그의 작품에서 오브제가 등장한 것은 90년대 초기였다.

    당시 지역 미술계에서는 선도적인 시도로,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것은 고기를 굽는 석쇠였다.

    선도(先導)와 실험(實驗)에는 늘 평가가 엇갈린다.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둘 중 하나. 불행히도 지탄이 쏟아졌다. ‘손도 안 대고 코를 푼다, 너무 쉽게 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차용(借用)했으니 들을 법도 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어떤 사물이든 작가의 눈에 따라 재료로 둔갑할 수 있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기존의 사물이 예술로 승화할 수 있고, 또 작품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의자에서부터 북·다리미·가위·유리구슬·문살·대나무 뿌리·주판·홍두깨 등 작가의 눈에 띄는 모든 것이 그의 오브제였다.

    작가는 “부친이 목수였다. 집이나 구조물 등 마을의 모든 일이 부친의 몫이었다. 작업장 주변에 나뒹구는 건축 자재는 좋은 장난감이었다. 손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과 그들을 조합해 만들어 내는 재미는 잊을 수 없다. 오브제 활용은 이때부터 시작된 나름의 감각(感覺)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2001년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나무 뿌리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한 평론가는 “그가 나무에서 새로운 공간감, 긴장감, 인간의 욕망 등을 표현할 가능성을 발견한 이유는 나무를 단순히 목재로 보지 않고 생목(生木)의 연장선에서 생태계와 관련된 조형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 생태학적 형태가 지난 심리적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우연한 형태에서 필요한 이미지를 투사시켜 새로운 형태를 창작하고, 그것을 현대적 삶과 관련된 기호로 번안해보며, 시적 혹은 주술적 이미지를 부여한다. 여기에 그의 상상력과 결합된 풍자적 유희와 창작욕구가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관객의 눈이 머무르는 즐겁고 맛있는 조각

    2년 뒤인 2003년 그는 두 번째 전시에서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작가와 비평가들을 염두에 둔 작품이 아닌, 관객의 눈이 머무르고 즐거울 수 있는 데 무게를 뒀다.

    전시 주제 ‘맛있는 조각’에 등장시킨 것이 나무조각과 부표, 헬스기구 등이다.

    작가는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렸을 법한 대상을 소재로 해 부분적으로 조각해 결합하는 형태의 시도였다. 조각에 디자인을 접목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조각을 추구했고, 관객의 눈길을 모을 수 있었다는 데 나름 성과가 있었다”고 했다.

    2005·2007년 3·4회 개인전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전시장은 브론즈와 돌 등 조각을 대표하는 재료로 만든 작품들로 채워졌다. 작가는 “단지 재료만 바뀌었을 뿐이다. 앞선 작품들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기계의 힘을 빌려 레이저 가공 등 첨단기법을 사용했지만 대중을 향하고 있는 창작의 토대는 그대로였다”고 했다.

    4회 전시의 테마는 ‘바다로 보낸 편지’로, 대리석과 자연석을 오브제로 브론즈 작품을 올렸다. 그는 당시 작가노트에 “산마루에 올라 구름 저 멀리 먼 바다를 내려보듯, 마음 속에서 물질과 영혼이 만나 고뇌와 환희로 또다시 불을 지핀다. 근심할 것도 욕심낼 것도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라는 글을 남겼다. 세상살이와의 갈등을 고향 섬에 대한 유년의 추억을 통해 평정심을 찾으려는 간절함이 엿보인다.


    ◆버려진 것들에 대한 가치

    작가의 오브제에 대한 탐구는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다. 2009년 한 해 동안 ‘오아시스를 찾아서’를 테마로 두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다양한 오브제가 현란하게 사용됐지만, 보다 안정된 형태를 갖추는 모습이다.

    이때 한 평론가는 “자연소재를 통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풍자적 조형성은 아카데믹하면서 실험적인 표현방법으로 이어져 재료의 선택에서 목재와 브론즈, 스테인리스스틸, 돌, 오브제, 도색 등의 조각이 갖는 총체적 특성을 섭렵하고 있다. 또 전통과 현대적 재료를 공치(共置)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공을 동질(同質)로 전환해 새로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평했다.

    작가에게 오브제는 창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독자적인 매개체로, 인공과 자연이 결합돼 그가 갈망하는 ‘오아시스’로 다가서는 것이다.

    ‘오아시스’를 찾는 갈증은 2011년 일곱 번째 개인전으로 이어진다.

    매개체는 역시 오브제로, 선택의 범위는 더욱 확장됐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밀려 버려진 주판, 홍두깨, 쇠스랑 등 폐기물을 작가적 반감(反感)의 작업을 통해 미적가치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 함부로 버려지고 잊혀져야 하는 ‘쓸모없는 것’은 없다. 앞서 인간은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쉽게 버려진 것을 되살려, 그것을 버린 사람 앞에 내놓아 가치를 되묻고 싶다. 작업은 내내 그런 고민에서 이뤄졌다”고 했다.



    ◆재료는 단지… 진실 가리고 훼손해서는 안돼

    작가는 요즘 먼길을 자주 나서 강이며 섬으로 향한다. 최근 작품의 주요 오브제인 돌을 찾기도 하고,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작가는 “보이고 나타나는 것에만 치중하면 돌은 그냥 돌이다. 대개의 삶들이 돌을 그냥 돌로, 전혀 귀하지 않은 존재로 바라본다”며 “하지만 돌도 탐스러운 열매가 될 수 있다. 예술의 과정을 지나고, 혼이 불어넣어진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하고 싶고, 하고 있다”고 했다.

    둥근 돌멩이들과 어우러지는 브론즈와 스테인리스스틸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철저히 드러내면서 다소 고발적이다.

    절제력을 비웃듯 무성하게 자라난 욕망, 그런 욕망을 감추려는 비겁하고 치졸한 인간의 본성, 이미 깨진 욕망을 알아채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

    최근 작품의 주제인 ‘악마의 열매’는 끊임없이 자라나고 파고드는 인간의 욕망을 구체화하고 있다.

    작가는 “모든 문제를 인간 중심으로 풀려는 시도다. 욕망을 꺾는 시작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작업은 이를 드러내 깨우치는 데 있다. 진실을 목격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지만, 그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몫이다”고 했다. 작가들이 보다 치열한 책임감과 창작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수년 후 작가는 흙(점토) 작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으로 조각을 만났던, 그때 흙이 전해준 촉감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흙은 엄마의 가슴팍같이 부드럽다. 포용력 또한 커 생각을 형상화하는 데 최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담긴 진실이다. 진실로 빚어낸 작품이라면 재료가 뭐든 오브제가 뭐든 상관없다. 재료는 단지 수단일 뿐, 진실을 가리고 훼손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고 했다.

    이문재 기자 mjlee@knnews.co.kr


    ☞천원식= 통영시 사량도 출생.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 동아대 예술대학 미술학박사 수료. 개인전 7회, 단체전 2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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