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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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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내가 만든 밥그릇- 조 민(시인)

  • 기사입력 : 2014-02-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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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집에는 돈을 주고 산 그릇은 하나도 없다. 다 내가 직접 만든 그릇이다. 밥그릇과 국그릇, 보시기랑 종지, 크고 작은 접시 이게 전부다. 특별한 거라고는 모두 장작가마에서 구웠다는 것. 그중 유약을 안 바른 질그릇은 내가 제일 아끼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든 그릇에 밥을 먹고 국을 먹는다. 참 묘하다. 매번 느끼는 건데 그냥 고맙다. 참 이상하다. 다른 그릇에 밥을 먹을 때는 그렇지 않는데 유독 내가 만든 그릇으로 밥을 먹을 때는 지나칠 정도로 겸손(?)해지고 순정해진다. 시래기국에 밥 말아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모르겠다. 이런 마음이 왜 드는지, 이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건지. 밥풀떼기나 양념 찌꺼기가 남아 있는 그릇의 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라는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직접 만든 그릇에 밥을 먹을 때나 직접 만든 옷을 입을 때나 직접 만든 의자에 앉아 있을 때나 그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직접 만든’ 브랜드의 가치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직접 만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비천하고 그늘진 자리에 앉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직접 만든’은 인간과 자연이 가장 가까워지는 길, 인간이 자연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아이고. 그릇 한 개로 너무 오버했나. 아무튼 무엇이든지 직접 만들어보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모두에게. 그것이 그릇이든 옷이든 집이든 뭐든. 그런데 엄격하게 말하면 이 그릇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흙, 불, 물, 가마, 그리고 그릇을 사용하는 사람. 모두일 수도 있고 모두가 아닐 수도 있다. 가마에 불을 넣을 때부터 가마의 열이 식을 때까지 어떤 그릇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글이나 그릇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의도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글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말이다. 처음 시작했던 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너무나 다른 이야기가 무당이 작두를 타듯이 줄줄줄 방언처럼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또 갑자기 섬광처럼 떠오른 낱말과 문장으로 아예 다른 글을 쓰게 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까 그릇은 그릇이 만든다. 시를 시가 쓰는 것처럼. 시인이 시를 쓰는 게 아니다. 시인이 우연히 시에 걸리는 것이다. 시는 주머니에서 공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공을 손으로 잡는 것과 같다. 쓰려는 것, 가진 것 이상의 무엇이 쓰는 순간에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늘 깨어 있어야 된다. 어느 순간, 우연히 손에 확 들어와서 잡히는 것을 꼭 붙들기 위해서. 그릇을 만들려는 의지가 곧 그릇이고, 시를 쓰려는 의지가 곧 시다.

    밥을 먹고 나면 나는 언제나 그릇의 바닥을 한참 들여다본다. 바닥은 그릇의 중심이다. 그 중심에 그릇을 만든 사람의 땀과 힘이 있고, 그릇이 되려고 온몸으로 밀어 올린 흙의 간절한 마음이 있다. 바닥이라는 중심. 그 그릇의 바닥에 달이 뜨고, 강물이 흐르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눈이 오고, 비가 온다. 거기서 우리는 모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다. 가끔씩 밥그릇에 코를 박고 바닥을 바라보자. 내 독한 침이 묻은 음식 찌꺼기와 양념과 함께 나 자신의 바닥이 보일 것이다. 그런데 바닥의 바닥엔 무엇이 있을까!

    벌써 2월, 올해의 목표는 ‘직접 내 손으로 차린’ 밥상이다. 이게 무슨 목표까지 세울 일인가 싶겠지만 내겐 제일 힘든 일이다. 그러나 올해는 반드시 하루에 한 번은 밥상을 차릴 것이다. 애호박 넣어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와 멸치 볶음, 김치전과 시금치 나물을 모두 내 손으로 끓이고 볶고 삶고 무쳐서 직접 만든 그릇에 담아 어머니께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드릴 것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나는 오십이 다 되어 가면서 일흔 넘은 어머니께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 준 적이 없다. 생일상도 차려 준 적이 없는 것이다. 참 무심하고도 싸가지 없는 큰딸, 아, 그러고 보니 파리에서 잠시 노엘 휴가를 온 딸에게도 다정한 밥상을 차려주지 못했다. 참 무심하고 정도 없는 엄마. 손에 물 묻혀가면서 음식 냄새 배어가면서 밥상 하나 차리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시를 쓴다고! 누군가에게 소박하나마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그 밥상 앞에서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지도 못한 주제에 무슨 시를 쓴다고! 이젠 반성 모드는 그만, 진짜 그만! 어떤 레시피부터 시작해야 할까? 앞치마부터 만들어볼까?

    조 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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