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김해공항 항공교통관제사 박춘봉 씨

“2.5분당 1대 이착륙… 하늘길 안전 긴장 늦출 수 없죠”

  • 기사입력 : 2014-02-07 11:00:00
  •   
  • 박춘봉 항공교통관제사가 김해공항 계류장관제소에서 항공관제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항공 121편, 푸시백 승인(pushback approved to face south).”

    항공기의 콜 사인이 떨어졌다.

    토잉카(항공기를 밀어주는 차량)가 항공기를 뒤로 밀더니 출발 준비를 했다.

    이어 “10번 게이트 이동 후 36번 우측 활주로를 이용하라!(Taxi to G10. Runway 36 R)”는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항공기가 서서히 활주로를 유영했다.

    모든 지시는 영어로 내려졌다.

    항공사고의 위험도가 가장 높은 ‘마의 11분(Critical 11)’ 동안 항공교통관제사는 기장·부기장 등 조종사와 함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다만 그때도 관제사는 침착하고 냉정한 어조로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 항공기를 활주로로 유도한다.

    평균 2.5분당 1대꼴로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김해공항,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늘 길을 안내하는 23년 경력의 베테랑 박춘봉(57) 항공교통관제사를 만났다.


    ◆어쩔 수 없는 끌림

    박춘봉 관제사의 경력은 해군 복무 시절까지 합하면 도합 36년에 달한다. 강원도 출신이었던 그는 주변에서 육군을 많이 봤지만,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려고 지난 1976년 해군에 지원했다. 그러나 항공 관제업무는 뜻밖에 찾아왔다.

    “해군에 입대해 항공직렬을 부여받았거던요. 그게 평생 직업이 될 줄 몰랐죠.”

    박 관제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진주에 소재한 공군 교육기관에서 3개월가량 교육을 받은 뒤 포항 비행장에서 실무에 투입됐다.

    그는 “지금도 포항, 진해, 목포 공항은 해군이 항공기 관제를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인생 2막을 준비하려고 지난 1990년 1월 전역했다. 그러나 군생활 13년의 세월은 길었다.

    박 관제사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13년간 하던 일을 한 번에 그만두는 게 쉽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국토부(현 국토해양부) 항공교통관제사로 지원, 그해 5월 제주공항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이다. 이런 그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일화도 있다. 지난 1992년 제주공항에 근무할 당시 대통령 전용기가 훈련을 위해 공항에 들어왔다. 훈련 때문에 도착했기 때문에 대통령은 타지 않았지만, 조종사는 먼저 활주로에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먼저 온 민항기가 있었기 때문에 전용기는 4순위로 밀렸고, 조종사는 노발대발하며 훈련을 받지 않고 돌아갔다고 한다. 박 관제사는 “대통령이 타고 있었다면 당연히 먼저 내려줬을 것”이라며 “하지만 민항기가 먼저 도착해 교신을 했기 때문에 승객이 타고 있는 항공기를 규정에 따라 순서대로 착륙시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김해공항으로 옮겼다가 2008년 울산관제탑장, 2011년 사천공항출장소장 등을 지낸 후 2012년 11월 김해공항의 접근관제소장으로 복귀했다.


    ◆‘마의 11분’(critical 11)

    항공기 사고는 100만 번 비행당 5.4건에 불과, 차량사고와 달리 매우 낮다. 하지만 한 번의 사고가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데다가, 이들 사고가 이륙 전 7분, 착륙 전 4분을 합한 ‘마의 11분’에 70% 이상 집중된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비슷한 사례로 박 관제사는 제주공항 근무 당시 발생했던 대한항공 활주로 이탈, 화재사고가 났던 당시를 떠올렸다. 1994년 8월 10일 김포발 제주행 대한항공 KE2033편이 오전 11시께 제주공항 관제소로 착륙허가를 요청했다. 박 관제사는 “비와 측풍이 불어 관제도 조종도 비상이었다”며 “권고된 착륙지점을 넘어 항공기가 땅에 닿았는데 기장은 내리려고 했고 부기장은 이륙하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항공기는 통상 활주로 시작 지점부터 300~600m 범위에 착륙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를 초과했다”고 말했다. 결국 항공기는 활주로를 지나치며 철제 울타리를 들이받고 풀밭에 멈춰선 뒤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지만 다행히 승무원들의 빠른 대처로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김해에서 발생했던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도 유사했다. 2002년 4월 15일 오전 김해공항에 착륙하던 중국 민항기가 김해 돛대산 정상에 부딪혀 승객 12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했다. 박 관제사는 “안개가 끼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바람을 떠안고 내리기 위해 선회를 하던 항공기가 추락했다”고 말했다. 박 관제사는 “늘 느끼는 점이지만 항공기가 멈출 때까지 보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역지사지

    그는 1남 1녀를 둔 가장이다. 오랫동안 가훈은 ‘역지사지’였다. 이 때문에 자녀들의 진로에 대해 관제사를 밀어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 관제사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며 “내가 관제분야 업무를 좋아해서 오랜 기간 해왔듯이 아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업으로 삼길 바라죠”라고 말했다.

    남을 배려하는 습관 덕분일까. 큰딸은 현재 부산의 한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아들은 대학에서 생명분자학을 전공하며, 앞으로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박 관제사의 역지사지는 관제탑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우리가 공무원이지만 조종사들에게 권위적으로 지시하기보다 매너 있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며 “예컨대 조종사들에게 물어보면 여직원들이 관제를 해주면 편안함을 느끼는데 남자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배려하면 조종사의 태도도 확연히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많은 승객을 태운 항공기를 안전하게 유도하다 보니 관제사의 성격은 예민할 수밖에 없지만, 그의 역지사지 덕에 관제탑 내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그가 36년간 관제사로 근무하며 대형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계류장관제소의 천장에 달린 전구마다 불빛 반사를 막기 위한 갓이 씌워져 있었다. 어두워지면 전구의 불빛이 유리창에 반사, 자칫 항공기로 오인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관제사들이 유리창에 나타난 불빛까지 예의주시할 정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글=정치섭 기자·사진=성승건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성승건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