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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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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8) 화가 김경현과 조각가 심이성

마음이 통하니 보이더라, 작품속 ‘위로’의 메시지가

  • 기사입력 : 2014-02-1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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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현(왼쪽) 화가와 심이성 조각가가 진주 정수예술촌 심 작가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벽녘 안개 자욱한 낙동강변에서 바라본 산, 소나무 그리고 겨울 철새들. 잊을 수 없는 유년의 이미지가 화가의 작품 소재가 되고, 인생의 화두가 되었다. 동네 개울가에서 멱 감고 벗은 채 뒹굴며 진흙을 퍼올려 형체를 빚던 소년은 콘크리트로 뒤덮여 버린 그 개울을 그리워하며 조각가가 되었다.

    두 사람은 그림과 조각이라는 각자의 길을 걸으며 부단히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갔다. 동문이어서 서로의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특별한 교류는 없었다. 전시회 등을 오고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어쩌면 참 나하고 비슷하겠구나’ 정도의 짐작만 할 뿐이었다.


    지난해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경현(51) 화가와 진주 정수예술촌 대표 심이성(49) 조각가는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출신의 선후배간이다. 수없이 세월을 되새겨봐야 할 만큼 오래된 인연이지만 두 사람은 정확한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한다. 회화와 조각으로 전공이 다르다 보니 대학시절 서로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를 같이 다녔지만 각자 분야가 달라 친하지 않았어요. 제가 워낙 내성적이어서 어디 나서지도 못하고 실기실에 박혀 그림만 그렸어요. 졸업 후에 심 선생님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관심이 가더라구요. 산업사회의 폐해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보고 나와 동질성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작년에 정수예술촌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많이 친밀해졌어요. 추구하는 작품 세계가 엇비슷하다는 것도 더 확실하게 알겠더라구요.”

    후배에게 깍듯이 존대어를 하는 김경현 화가에게 이유를 묻자 “자기 세계가 확실한 예술가에게 후배라고 해서 반말을 할 수는 없어서”라고 답한다. 쑥스럽게 웃는 화가의 눈매가 섬세한 마음 씀씀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마음이 통하는 창작자들은 자기 길을 열심히 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창작 세계를 알아보고, 작품에 감동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면모도 알게 되는 거죠. 김 선생님은 너무 말수가 적은 분이라…. 거기다 여전히 저한테 높임말을 쓰시지, 쉽게 사귈 수 있는 분은 아니에요. 예술촌에서 그림 그리면서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고 마을 분들과도 어울리면서 지금 말씀 많이 하는 편입니다. 여기 입주작가들 입장에선 열심히 하는 김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영감 받으면 며칠씩 밤을 새워 그림만 그리시거든요.”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인데…. 낮에는 집중이 잘 안 돼서 주로 밤 12시 넘어 작업을 합니다. 왠지 밤에 에너지를 모으기가 좋아요. 그 때문에 밤 새워 열심히 작품 활동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하.”

    이어지는 심 대표의 귀띔은 화가의 작업 스타일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해준다.

    “옆에서 볼 때 색에 대한 민감성이 특별한 분입니다. 화폭을 바라볼 때 가슴의 떨림도 다른 작가보다 더한 것 같고. 말끔하게 이러저러한 감성이 정리돼야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명상에 잠겨 앉아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봐 왔습니다.”

    심 대표는 자신의 작업 스타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막 하는 스타일’이라며 웃는다.

    “고철장, 건축현장, 어촌 등 작품 재료가 될 만한 것을 찾아 많이 돌아다니는 편입니다. 폐자재와 상처 받은 인간상이 많이 닮았다고 느껴져 작품화하기 시작했어요. 버려졌던 것을 새로운 조형물로 만들고 생명력을 갖게 하면서 나 자신이 먼저 위로받게 되더라구요.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개울이 콘크리트 공단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상실감이 컸어요. 지금도 그곳에 가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 작업은 그런 상실감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명의 파괴성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간 외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랄까, 동시대를 같이 살아야 한다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얼마간 ‘온전한 삶’을 살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싶어요.”

    폐전신주에서 뽑아낸 철근을 가지 삼아 피어 있는 숟가락 꽃잎들. 심 대표의 작품에 대해 김 화가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아름답다’고 말한다.

    “대화 없이도 작품을 보면 그 작가를 알 수 있어요. 작품이 작가를 대변해 주는 거죠. 또 작품을 통해 그 사람이 읽어져야 작품의 진정성도 느끼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심 대표와 저는 닮은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 심 대표처럼 아픔이 있는 사물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폐자재, 폐차 등을 스케치하거나 사진을 찍어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심 대표의 조각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학 졸업 후 소재가 바뀌었어요. 소, 닭, 오리, 소나무 등 고향에서 보아오던 것들을 먹 작업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년의 기억을 형상화하는 것이 저의 감성과 더 잘 맞아떨어지면서 편안해지더라구요.”

    “어린 시절 기억은 공유할 부분이 참 많아요. 김 선생님의 그림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습니다. 작품의 큰 지탱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심 대표의 말을 받아 화가는 자기 작품 세계의 화두(話頭)로 ‘편안함’을 들었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휴식 같은 편안함이 있잖아요? 제 그림이 추구하는 목표가 바로 그 편안함입니다. 현실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저의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휴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예술작품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요? 저 자신도 소나무, 산자락 등을 그리면서 유년시절의 빛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벽 안개, 겨울 철새, 소나무 숲을 바라보던 그 시절, 닭을 키우면서 먹이를 주던 그 당시의 감성을 그려내면서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제 그림이 그런 감성을 자극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각가는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이유’를 언급했다.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버리면서 좀 더 실험적인 재료, 실험적인 방법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조형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요. 동시대를 같이 살아야 하는 생명들에 대한 가치 존중, 공동체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 등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작품을 통해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켜야죠. 그것이 또한 예술가로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쯤 해서 예술촌 대표직을 맡고 있는 조각가에 대해 안타깝고도 미안한 마음을 내보이는 화가.

    “본인도 대단한 작가이면서 행정가로서의 일 때문에 자기 작업에 몰두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입주 작가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심 대표에게는 불행인 것 같아요. 현실 때문에 맘껏 작업을 못하고 피해를 보는 것 같아서. 심 대표가 이끄는 정수예술촌은 일반 행정가를 대표로 둔 예술촌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작가들에 대한 배려가 많아요. 한국미술대전 수상작을 비롯해 저의 최근 작품들도 거의 정수예술촌에서 그렸어요. 고마운 점이 아주 많습니다.”

    화가의 감사 말에 손사래를 치며 심 대표가 행정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꺼내 보였다.

    “아직 전문적인 예술행정가가 부족한 상황이잖아요. 그렇다고 일반 행정가가 예술촌을 활성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힘들어도 예술가 스스로 행정을 배워서 작가들의 창작에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또 방문객들에게는 감동뿐 아니라, 최소한의 편의는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입주 예술인이 자생해야 합니다. 작품은 하고 싶은데 공간이 없어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여기서는 월 5만 원만 있으면 공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절실히 원하는 예술인들에게 어떻게든 창작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올해 예술촌 리모델링을 통해 창작공간을 늘리고 입주회원을 더 받을 계획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방문객을 위해서도 휴게공간과 강의실을 마련해 보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인근 50가구를 활용해 예술가 마을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심 대표는 김 화가의 수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여 말한다. “지난 1970년 통영의 김형근 화백 이후 40여 년 만의 쾌거입니다. 그 수상 가치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그런 큰 상을 받았다는 것, 수도권과 달리 체제 기반이 열악한 곳에서 오로지 순수한 열정만으로 이루어낸 결과잖아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일입니다.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축하 말에 화답하듯이 김 작가는 정수예술촌에 대한 짤막한 소회의 표현으로 ‘행복’과 ‘고마움’이란 표현을 골랐다.

    “지난해 창원의 화실과 정수예술촌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면서 많이 행복했습니다. 다른 작가와의 만남도 그랬고, 국도를 오가며 계절 따라 변하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무척 좋았습니다. 예민한 작가들을 배려하는 심 대표에게는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며 일어서는 심 대표를 따라 사무실 문을 나서니 겨울 찬바람이 무색하게 예술촌 마당은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글= 황숙경 기자 hsk8808@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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