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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人生)을 인생(忍生)이라고 하지 않던가!- 최환호(경남은혜학교 교장)

  • 기사입력 : 2014-02-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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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화된 삶의 고통이 전 지구에 걸쳐/ 정교한 시스템으로 일상에 연결되어 작동되는/ 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박노해 ‘시대고독’) 역사상 더할 나위 없는 물질적 풍요와 참을 수 없는 영혼의 고통. 바로 우리 삶의 현주소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일본의 사상가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무통문명’이란 개념은 고통스럽고 피폐한 한국적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는 사회시스템과 자발적인 속박관계를 맺으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자기가축화’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삶의 현장에서 확대재생산되는 사회적 고통의 실체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으나, 방관자로 처신함으로써 문제의식도 행동개선도 전무한 존재들이다.

    철학자 슬라예보 지젝의 지적. ‘냉소적 주체’가 문제다. “나도 그게 문제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냉소적 족속들이야말로 가축화된 존재이다.

    이런 존재들은 자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타인의 고통마저도 무관심하다. 결과적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고통의 ‘식인사회’를 만드는 장본인들이다.

    그렇기에 식인사회의 삶은 피폐하고 고단하다. 하지만 받아들여야지, 그게 나의 인생인 것을. 고통 앞에서 주저앉아 우는 사람보다는 고통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선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주제 사마라구의 작품 ‘눈먼 자들의 도시’에는 타인이 고통이자 지옥인 세상에서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했다. 제아무리 착하게, 순하게, 성실하게 살아도 고통은 불쑥불쑥 나타나는 삶의 불청객인 것을.

    이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적 문제가 아닐까. 죽음이 삶의 본질이듯 고통도 삶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을…. 혹 용연향을 아는가. 최고의 향수 원료인 그것은 원래 고래의 내장에 생긴 상처에서 발생된 부산물이었지만,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을 견딤으로써 매혹의 향기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고통의 보석, 진주는 ‘아비큘리데’라는 조개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이 변해 생성된 보석이다. 몸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나카’라는 특수한 물질이 모래알을 감싸면서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 끝에 진주는 점점 커진다. 하여 진주를 일컬어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할 터.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삶의 고통에 맞서 눈물의 진주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고통에 굴복하여 비겁을 감내하다 파멸하는 사람도 있다. 역경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인생이 확연하게 달라진다고나 할까. 고통은 인생자궁에서 성찰과 인내를 영양으로 삶을 향기롭게, 보배롭게 성숙시키기에.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왜 혼자 5.5m가 넘는 거대한 청새치와 사흘 동안이나 사투를 벌였을까? 고난과 역경에도 존엄성을 잃지 않는 남자가 진짜 사나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을 게다. 더하여 도스토옙스키의 탄식, “내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고통을 겪을 만한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존재의 가치가 바로 고통에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존재가치는 아픔이나 고통을 삶의 인내, 그 의미로 얼마나 바꿀 수 있느냐로 검증되리니. 해서 인생(人生)을 인생(忍生)이라고 하지 않던가!

    일찍이 역경의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글귀. ‘좋은 쇠는 뜨거운 화로에서 백 번 단련된 후에 나오는 법이며, 매화는 추운 고통을 겪은 다음에 맑은 향기를 발하는 법이다(精金百鍊出紅爐 梅經寒苦發淸香).’

    2월의 한밤, 말러의 가곡 ‘원광’을 듣는다. “인간은 커다란 고통 속에 있도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삶의 ‘모든 것이 고통(一切皆苦)’인 것을…. 그러나 ‘(고통의) 수렁이 깊을수록 아름다운 (지혜의) 연꽃이 핌(煩惱卽菩提)’을 또한 깨쳐야 할 것을.

    최환호 경남은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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