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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사회정의 이끄는 로컬 푸드 운동- 백승종(한국과학기술대학교 대우교수)

  • 기사입력 : 2014-02-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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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폐한 농촌과 공룡처럼 몸집이 커진 도시가 함께 살자는 것이 로컬 푸드 운동이다. 이것은 20세기 후반 서구에서 시작됐다. 식품의 이동거리를 단축시켜,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영국에서는 시장이 생산지로부터 50㎞ 이내에 있을 경우를 로컬 푸드라고 했다.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운송시간이 24시간 이내일 때로 정의했다. 일본에서는 ‘지산지소(地産地消)’라 해, 특정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그곳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것을 일컬었다.

    2008년부터 이 운동은 한국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농산물을 가까운 도시의 직거래장터로 가져간다. 상품 진열도 가격 책정도 스스로 한다. 포장이나 운반도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재고물량도 날마다 스스로 거둬간다. 자신의 농산물에서 농약이 과다 검출되거나 품질과 규격에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를 처벌한다. 현재 여러 도시에서 이런 방식의 직거래가 이뤄진다.

    한국의 농산물 유통단계는 7단계나 된다. 그것을 단 한 개로 줄인 것이 로컬 푸드 장터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직거래가 정작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기왕의 농산물 시장이 소농들에게 매우 불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기업농 또는 대농들은 여러 가지 유통경로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농민의 대다수인 소농들의 처지는 사뭇 달랐다. 소농은 일정한 종류와 수량을 꾸준히 생산하는, 공장식 농업에 적응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급자족 위주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이다.

    이러한 소농이야말로 마을공동체를 지켜온 힘의 원천이었다. 그들의 존재방식은 생태계의 존속에도 기여했다. 긍정적으로 평가될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소농들은 결국 시장에서 소외됐다. 농촌사회를 농가부채와 고령화의 수렁에 빠뜨린 주범은 바로 시장의 논리였다.

    경제논리만 따지는 사람들은 농촌을 청산돼야 할 과거의 유물로 취급한다. 진실은 어떠한가. 농촌은 한국인 전체의 고향이자 아직도 전통문화가 숨 쉬는 공간이다. 농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 것은 1960년대부터 가속화된 산업화였다. 그와 유관한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도 한몫했다. 가장 안정적인 수입원이라고들 말하는 쌀 가격조차 시장에서는 널뛰듯 한다. 20㎏ 한 포대에 6만4000원 하는 쌀값이, 툭하면 특가라며 4만5000원에 거래된다. 요동치는 가격은 소비자들의 요행심리를 부추긴다. 농민에게는 이것이 경제적 희생의 강요로 나타난다. 적정가격도, 생산단가도 없는 것이 농산물이다.

    한국 사회가 눈부신 경제개발을 이뤘다는 20세기 후반에도 농촌의 비극은 심화됐다. 농촌에는 노령연금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농촌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 노령화 지수가 도시보다 갑절이나 높을 이유가 없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이 20%대로 추락하고 만 것도 농촌이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은 국제시장에서 부족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제공받는다. 현재로서는 식량조달에 어려움이 없다. 이런 상태는 과연 무한정 지속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시장은 불의하다. 소비자의 가격부담은 줄어드는 일이 없는 반면, 생산자인 농민의 소득은 최소생계비도 못 된다. 브라질의 바나나 농장에 고용된 농민들은 소비자가격의 3% 미만을 나눠 가진다. 이 판국에 비교우위론을 들먹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단시간 내에 시장의 왜곡을 바로잡고, 식량자급의 과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도 불가능한 과제라고는 볼 수 없다. 세계 굴지의 산업 국가들도 식량자급률이 100% 이상이다. 암시하는 바가 적지 않다. 로컬 푸드 운동의 시작은 소농을 살리고, 시민들에게 건강을 약속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식량자급 문제에도 기여할 것이다. 국제교역에도 자극을 줘, 해외의 농민들도 자급자족적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열망에 불타게 만들 것이다.

    백승종 한국과학기술대학교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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