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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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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진주비빔밥 명인 정계임 씨

“칠보화반은 꽃처럼 살던 진주기생들의 삶이 담긴 비빔밥”

  • 기사입력 : 2014-02-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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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비빔밥을 각고의 노력 끝에 거의 원형대로 복원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진주비빔밥 명인으로 지정받은 정계임 진주향토음식연구원장이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는 이름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진주비빔밥을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진주에는 진주비빔밥, 진주냉면, 진주청국장, 조선잡채, 은어밥, 자라찜, 유곽, 진주유과, 전복김치, 참가오리찜 등 다양한 향토음식이 있다. 이 중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는 이름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음식이 있다. 바로 진주비빔밥이다.

    명성만 전해지고 있었을 뿐 그 형태나 조리법이 사라진 진주비빔밥을 각고의 노력 끝에 거의 원형대로 복원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진주비빔밥 명인으로 지정된 정계임(57) 진주향토음식연구원장을 만났다.


    ◆조리의 길로 들어서다

    정계임 원장이 조리의 길로 들어선 것은 집안의 영향이 컸다. 중학생 때 어머니가 진주성 공북문 앞에서 제법 큰 떡방앗간을 했다. 늘 주문이 밀리는 바람에 일손이 달려 6남매 중 장녀인 정 원장이 마당에 솥 하나 걸린 한데 부엌에서 직원들의 끼니를 챙겨야 했는데, 여러 가지 음식을 맛나게 만들어 동네 아줌마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다.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그림 솜씨가 뛰어나 주위에서 서울에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하라고 권했지만 과년한 딸을 객지에 보내는 것을 꺼린 부모님의 만류로 경상대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영양사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1989년 진주 번화가에 일신요리학원을 개업했다. 당시 서울에서도 찾기 어려운 요리학원을 소도시에서 연다고 주변 사람들은 수근거렸지만 밤잠을 자지 않고 요리 개발에 몰두하는 등 24시간을 쪼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수강생들이 몰려들었다.

    1996년 경남에서는 처음으로 조리기능장이 되고 나서 전통음식 연구에 눈을 떴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지혜가 담겨 있는 전통음식을 보고 배웠다. 이 과정을 통해 식품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음식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


    ◆진주비빔밥과 운명적 만남

    정 원장이 진주비빔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운창 성계옥 선생을 만난 뒤부터다. 성 선생은 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보유자였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사라졌던 의암별제를 복원하는 등 평생에 걸쳐 진주 교방문화를 되살리려 노력했다.

    의암별제는 임진왜란 이후 진주 기생들이 논개를 추모해 지내오던 추상제와는 별도로 1868년 진주목사 정현석이 이를 보다 규모있게 지내도록 관이 지원하면서 만들어진 제사다.

    의암별제를 주관하던 성 선생이 정 원장에게 음복 나누기 행사로 500인분의 비빔밥을 만들어달라고 제의해 진주비빔밥과 인연을 맺게 됐다.

    진주비빔밥의 원형을 복원하려 했지만 만들었던 사람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고 후손들마저 제대로 전수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 원장은 좌절하지 않고 진주비빔밥을 경험한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의 기억과 흔적의 편린들을 조합해 거의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진주비빔밥 명인으로 지정됐다. 식품 명인제도는 1994년 시작됐지만 자격요건이 까다로워 그동안 전국에서 59명만 지정될 정도로 국내 식품산업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의암별제 음복 비빔밥 나누기 행사는 진주시의 요청으로 2004년부터 개천예술제로 옮겨져 진행되고 있다. 정 원장의 주관으로 3000인분의 비빔밥을 만드는 퍼포먼스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칠보화반의 비밀을 풀다

    정 원장이 진주의 향토음식을 발굴하고 재현하는 30여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진주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던 칠보화반과의 만남이었다. 진주비빔밥의 원형을 복원했지만 칠보화반이 왜 비빔밥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어째서 그 같은 이름이 붙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료 발굴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문서를 뒤지고 연구논문을 탐독하면서 칠보화반이 옛날 음식문화의 장인이었던 진주 기생들이 만든 음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토대로 ‘칠보화반은 진주의 기녀들이 진주성에서 산화한 선배 기생의 영혼을 천도하는 제(祭)를 지냈던 음복음식에서 비롯됐다. 이것을 귀한 손님이 기방을 찾을 때 아름답게 치장해 대접했고, 결국 진주의 향토음식으로 지금까지 명성을 잇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칠보화반은 기생 자신들의 모습을 빗대어 붙인 이름일 수 있다. 누구나 함부로 가질 수 없는 보석 같은 존재, 그리하여 꽃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던 비빔밥, 이것이 바로 칠보화반의 정체였던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

    제철 나물과 육회, 보탕(참바지락을 다져 참기름에 볶아 피문어 삶은 물을 붓고 자작하게 끊여 만든 천연조미료) 등이 들어가는 칠보화반은 현대 영양학적으로 분석해봐도 매우 이상적이고 완전한 음식으로 평가된다. 동양의학적 관점으로도 천연의 식물성 재료와 동물성 재료가 어우러져 우주의 원리인 음양오행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룬 음식이다.

    정 원장이 지난 2011년 펴낸 ‘칠보화반 이야기’에는 구전으로만 전해내려오던 칠보화반의 원형과 진면목이 담겨져 있다.


    ◆교방음식박물관 건립 꿈

    정 원장은 현재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에 있는 진주향토음식연구원에서 음식 개발과 요리 강습, 전통음식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에 매진하고 있다. 정 원장이 이처럼 음식 개발과 보급에 힘쓰는 것은 칠보화반을 만나면서 음식이 인간의식을 변화시켜 사람을 바뀌게 만들고 사회를 바꾸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우리 아이들이 난폭해지거나 정서불안 징후들이 나타나게 됐고, 최근 청소년들로 인한 사회문제는 잘못된 먹거리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애착을 더 갖게 됐다. 정 원장은 10년 전에 매입한 폐교 부지에 교방음식박물관을 지어 진주비빔밥을 비롯한 교방음식을 알리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문화는 알아갈수록 감동스럽습니다. 내가 받은 감명을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양영석 기자 y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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