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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를 권하는 정치- 정일근(경남대 청년아카데미 원장)

  • 기사입력 : 2014-02-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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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석연찮은 출판기념회 초대를 자주 받는다. 동료 문인이나 선후배 문인의 출판기념회면 즐겁고 기쁜 일이겠지만 생면부지의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의 초대엔 황당한 생각이 든다. 초대장이 오는 것도 아닌 휴대폰 문자로 불특정 다수에게 뿌려지는 이런 출판기념회가 선거철이 되면 극성을 부린다.

    동네서점이 죽어 사라진 지 오래고 출판시장은 책이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는 길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지만 6·4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정치판에서는 때아닌 출판이 성황이다. 연일 열리는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사려면 사람들이 봉투를 들고 줄을 선다. 문학 출판기념회에서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비교하자면 문학 동네의 출판기념회는 대부분 조촐하다. 지인들이 모여 창작의 노고를 축하하고 덕담하는 자리다. 그렇다고 자주 열리는 출판기념회도 아니다. 어떤 분들은 평생에 한 번 그런 자리를 가질 뿐이고, 염결한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며 아예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판의 출판기념회는 다르다. 선거가 다가오면 무조건 책을 찍고 기념회를 가진다. 나는 그 책의 정체가 궁금하다.

    얼마 전 평소 정치 동선이 유난히 바쁜 분이 출판한 책을 얻어 읽은 적이 있다. 도대체 바쁜 그분이 언제 그 많은 분량의 책을 집필했는지, 그렇게 뛰어난 필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책 속에는 ‘식견’과 ‘미문’이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역시나 그 책을 만든 ‘셰도(Shadow) 집필자’가 따로 있었다. 글 쓰는 사람 따로 있고, 책 내는 사람 따로 있는 그런 일은 공공연한 비밀도 아닌 지 오래되었다.

    세태가 그래서 그런 출판이 용납되고 더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책으로 공개적인 출판기념회를 가져 공개하지 않는 정치 후원금을 받는다면, 유권자들은 그런 후보들에 대해 표를 던져서는 안 된다. ‘비슷하다는 것도 가짜’라고 했다. 비슷하기는커녕 아예 가짜를 들고 나온 사람들에게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가짜의 책에는 으레 유명 정치인과 악수하거나 같이 찍은 사진이 즐비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언제 국제정치에 관심이 깊은지 외국의 정치지도자들과 악수하는 사진까지 버젓이 실려 있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싶다.

    언젠가 어느 여당 후보는 출마는 해야겠고, 책은 한 권 있어야겠다는 급한 생각에 지역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책을 내며 인터넷에 떠도는 소개들을 긁어모아 오·탈자는 물론 오류투성이의 책을 냈는데, 그 정치인은 지금까지도 수정 증보판 한 번 내지 않고 자신의 약력에 그 책을 저서로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물론 정치인이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영국의 정치지도자 윈스턴 처칠은 에세이와 소설은 물론 전기, 회고록 등을 집필한 정력적인 작가였다. 처칠은 ‘전기와 역사서에서 보여 준 탁월함과, 고양된 인간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행한 훌륭한 연설’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좁혀서 우리 지역에 그런 정치가가 있을까에 대해서는 나는 물음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언론이 그런 가짜 출판물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는 일에도 답답하다. 출판기념회 소식은 보도돼도 그 책에 대한 리뷰나 평가는 보도하지 않는다. 가짜를 진품처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수금형’으로 전락한 출판기념회는 유권자의 비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책은 나무라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정치용으로 만들어져 읽히지도 않고 버려지는 책으로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고 숲이 사라졌을까를 생각하면 더 답답하다. 이번 6·4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연 후보들 중에서 4월 5일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후보들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베어진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무를 심는 후보들이 많았으면 한다.

    정치인이 출마를 위해 출판기념회를 열고 책의 정가가 아닌 후원금을 받는 정치 구태는 사라져야 한다. 좀 더 참신하고 정직한 방법론이 필요한 때다. 그런 일에 유권자의 눈이 더욱 매서워지길 기대한다.

    정일근 경남대 청년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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