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523) 두찬지서(杜撰之書)- 엉터리로 만들어 낸 책

  • 기사입력 : 2014-03-04 11:00:00
  •   



  • 송(宋)나라 왕무(王懋)의 ‘야객총담(野客叢談)’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두묵(杜默)이란 사람이 시 짓기를 좋아했는데, 시가 음률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어떤 일을 이야기하면서 격에 맞지 않은 것을 일러 ‘두찬(杜撰)’이라고 한다. 또 두묵의 이야기가 아니라 두전(杜田)이나 두원(杜園)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엉터리 책을 ‘두찬’이라고 하고, 동사로도 쓰여 엉터리로 책을 날조해 내는 것을 ‘두찬한다’고 한다.

    맹자(孟子)가 “책을 다 믿으면,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책을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참되고 가치 있는 책을 잘 골라 읽으라는 뜻이다.

    요즘 아득한 옛날 우리나라 고대사에 관한 책이 사방에서 판을 친다. 누가 자금을 대는지 모르겠지만, 대학에 각종 클럽도 있고, 정기적으로 강좌를 열고, 책도 무료로 배포한다. 어떤 텔레비전 방송에서 정기적으로 강의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가 오래고 영토가 넓은 강대국이며 문화가 찬란했고, 중국을 지배했다고 하는데, 그랬으면 정말 좋겠지만 증거가 있어야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증거가 있어야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반박하면 “그럼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등은 자기가 다 직접 본 것을 적은 것이냐”고 즉각 다시 반박한다. 엉터리 책이 엉터리 책이라는 것을 반박해 내려면, 엉터리 책을 짓는 것보다 열 배 백 배 힘이 더 든다.

    그러나 조선시대 어떤 책에도 나오지 않다가 일제강점기부터 등장한 기록을 무조건 믿어도 되겠는가? 그러나 대학 교수 가운데도 그 사실을 믿고 책에 옮기는 경우가 있다.

    약 2500년 전의 인물인 공자(孔子)나 그보다 100년 뒤 인물인 맹자(孟子)는 위로 요(堯)임금, 순(舜)임금까지만 이야기했다. 공자보다 약 500년 뒤 인물인 사마천은 요임금 순임금보다 훨씬 앞선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이야기했다. 사마천보다 300년 뒤인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이르면 삼황오제보다 훨씬 더 오래된 반고(盤古)가 등장하여 세상을 처음 열었다고 한다. 공자가 모르던 사실을 공자보다 800년 뒤에 더 자세히 기록했는데,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그 역사 현장에서 그 사실을 겪은 사람이 기록한 것이 가장 믿을 만한 기록이다. 그 사실을 겪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에 가까이 살았던 사람이 기록한 것이 그다음으로 신빙성 있는 기록이다.

    물론 묻혀 있던 기록이 새로 발굴될 수는 얼마든지 있지만, 그 당시의 기록에 전혀 없다가 후세에 비로소 나타난 기록은 육하원칙에 의해서 치밀하게 고증을 해 봐야 한다.

    대표적인 엉터리 사실이 이율곡(李栗谷)의 ‘십만양병설’이다. 율곡 자신의 문집 속에 전혀 기록이 없고, 당시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전혀 기록이 없고, 율곡과 교류가 있던 당대의 학자 문인들의 문집에도 전혀 기록이 없다가, 그의 제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 지은 율곡행장(栗谷行狀)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 이후 여기저기 인용되다가 해방 후 이병도(李丙燾) 박사의 국사대관(國史大觀)이라는 책에서 크게 칭찬하면서 실은 이후로 정설처럼 되어 버렸다.

    엉터리 책도 감별을 잘 해야겠지만, 완전히 엉터리 책은 아니라 해도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엉터리인 경우가 얼마든지 많다.

    두찬된 책을 보고 논문을 쓴다든지 기자가 기사를 쓴다면, 엉터리를 더욱 확산시키는 데 일조를 하는 일이 되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 杜 : 막을 두. * 撰 : 지을 찬.

    * 之 : …의 지. * 書 : 책 서.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