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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51) 거제 지심도 동백꽃

섬마을 동백아가씨의 붉은 꽃웃음

  • 기사입력 : 2014-03-0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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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백나무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거제 지심도. 동백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지심도 숲길에 송이째 떨어진 동백꽃.


    ‘무서운 바람이 불어와 푸른 이파리 밑에 숨은 듯 피어 있던 붉은 동백꽃잎들이 중대한 심장수술을 받는 것처럼 붉은 피를 흘리며 바닷물 위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오! 맙소사, 이토록 아름다운 의문투성이의 찬란한 절명이라니! … 기후가 좋으면 피어나고 기후가 나쁘면 모조리 들어가는 우리 시대의 속물생태학에 비추어서 나는 동백꽃을 더욱 사랑하고 싶어진다.’

    김승희(1952~) 시인의 ‘동백꽃’ 예찬론이다.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 있을 때 꽃송이째 떨어지는 동백은 예로부터 애절함의 대상이 돼 왔다. 동백(冬柏)은 겨울에 핀다고 해서 동백이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도도하게 피어나는 ‘차도녀’이다. 3월인 지금 피는 동백은 춘백(春柏)인 셈이다.

    경남에서는 거제도 학동과 지심도, 통영 장사도를 비롯한 남해안의 섬에서 ‘동백아가씨’를 만나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동백나무의 묘목수나 수령, 원시상태가 가장 잘 유지되고 있는 ‘동백섬’이 지심도이다.

    거제 남동쪽 장승포 앞바다에 떠 있는 지심도는 동백나무 원시림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보물섬이다.

    지심도(只心島)라는 이름은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아 붙어졌다.

    지심도는 동백나무 외에도 소나무, 팔손이, 후박나무 등의 상록수가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섬의 주인이 국방부이기 때문에 나무들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지심도 동백꽃은 보통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한겨울에도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데, 3월에 절정을 이루고 4월 초순이 되면 대부분의 꽃잎이 스러진다. 이처럼 다섯 달가량 이어지는 개화기에는 어느 때라도 동백의 요염한 얼굴빛을 감상할 수 있다.

    동백꽃이 절정을 이룰 때는 숲길을 걸을 때마다 바닥에 촘촘히 떨어진 붉은 꽃을 일부러 피해가기도 힘들 정도로 무성하다.

    동백의 백미는 꽃송이가 떨어진 바로 그 모습이다. 동백꽃이 땅에 떨어져 붉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펼쳐진 장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지심도는 해안이 대부분 절벽으로 이뤄져 있으나 선착장에서 마을로 오르는 200m가량의 비탈길 말고는 부드럽고 평평한 데다 흙길이어서 산책하기에 적격이다. 대한민국의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된 것도 이 덕분이다. 파도소리와 새 소리를 듣고 걷다 보면 힐링이 절로 되는 듯하다.

    지심도는 선착장에서 동백하우스~마끝(해안절벽)~운동장~국방과학연구소~포진지~탄약고~활주로~방향 지시석~해안선 전망대~망루~‘그대 발길 돌리는 곳’으로 이어지는 일주도로인 오솔길을 1시간에서 1시간 30분만 걸으면 진면목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지심도는 2009년 6월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로 방송을 타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관광객들이 사시사철 찾고 있는데, 2월 마지막 휴일에는 하루 3000명이 넘게 몰려들었다고 유람선 선장이 소개한다.

    지심도는 아름다운 풍광만큼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말, 대동아전쟁에 혈안이 된 일본군이 해안 방어를 위해 섬 곳곳에 군사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포진지와 탄약고, 그리고 동백숲 부근에 있는 서치라이트 보관소와 일본기 게양대 등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한다.

    남해바다의 모진 바람과 맞서 싸운 동백꽃들이 유혹이라도 하듯 선홍빛 농염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심도 ‘동백아가씨’가 남녘의 봄을 찾아 나선 나그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글= 김진호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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