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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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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눈물의 정치학- 이순원(소설가)

  • 기사입력 : 2014-03-0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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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중 가장 정직한 것이 땀과 눈물이다. 고된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참을 수 없는 격정이 마음을 흔들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러나 땀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온도의 변화만으로도 흘릴 수 있지만 눈물은 억지로 흘릴 수 없다.

    눈물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슬픔과 비탄을 표현하는 침묵의 언어다. 그것은 때로 백 마디의 말이나 기도보다 호소력이 강하다. 탈무드에도 ‘천국의 문은 기도에는 닫혀 있더라도 눈물에는 열려 있다’고 적혀 있다.

    눈물에는 그가 처한 상황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가 말하는 뜻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타인의 눈물을 보면 누구나 일단 숙연해진다. 약하고 서럽고 핍박받는 자의 이미지가 눈물 몇 방울 안에 들어 있다. 단순히 약해 보여서만이 아니라 눈물이 우리 감정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치와 연결될 때는 어떤 화학적인, 또 사회적인 반응을 일으킬까. 지난 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이 6·4지방선거 전에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하기로 전격 선언했다. 이것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또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한길 대표는 두 번 눈물을 내비쳤다.

    언론에 조금은 별일처럼 보도되었듯 정치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드문 경우도 아니다. 문득 그것이 궁금해 찾아보니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박근혜의 눈물’이 있었다.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 텔레비전을 통해 정당대표 연설을 하면서였다.

    “1960년대 가뭄이 심했던 어느 날, 지방순시를 다녀오신 후 아버지께서 식사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왜 식사를 안 하냐고 물으시니 한참동안 천장만 바라보시다가, 지방에 가보니 아이들의 얼굴에 버짐이 피어 있고,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먹지 못해서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셨습니다. 나가시는 뒷모습에 아버지의 어깨는 흔들리고 있었고, 저희 식구는 아무도 저녁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나를 일치시키기 대목에서 흘린 눈물의 반응은 곧바로 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지지도가 추락한 한나라당의 깃발 아래로 다시 지지자들이 모여들었고 박 대표는 전국 지역구를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때의 눈물은 후에도 여의도 강변의 천막당사와 함께 지지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장면이 되었다.

    이처럼 정치인의 눈물은 종종 그 사람뿐 아니라 한 국가의 정치 운명을 바꿔놓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2002년 대통령선거 때 선거 광고방송으로 나온 ‘노무현의 눈물’도 그랬다.

    존 레논이 부르는 ‘이매진’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노동자와 술잔을 나누는 노무현 후보의 얼굴 위로 붉은악마의 월드컵 응원과 고달픈 삶의 현장이 오버랩되어 스친다. 그러다 화면은 갑자기 흑백으로 바뀌고 노무현 후보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가운데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한 눈물 한 방울이 모든 연령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눈물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1972년 미국 민주당의 대선 주자였던 에드먼드 머스키는 어떤 지역신문의 악의적인 보도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 도중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한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인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며 그의 지지율은 곧바로 수직 하락해버렸다.

    지난 2일 두 차례 보인 김한길 대표의 눈물은 앞으로 신당 창당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할지, 또 국민들 마음속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눈물만큼 빨리 마르는 것도 없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눈물만큼 오래 기억되는 것도 드물다. 남녀의 연애에서도 그렇고 정치에서도 그렇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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