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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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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경칩(驚蟄)- 김홍섭(소설가)

  • 기사입력 : 2014-03-0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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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가 경칩, 개구리가 놀라서 펄쩍 뛰어나온다는 날이다. 개구리가 부럽다, 일 년에 한 번만 놀라면 되니까. 서민들은 살아가는 나날이 경칩이다. 하루라도 놀라지 않으면 안 놀라는 날도 있다는 것에 놀란다.

    며칠 전에는 생뚱맞게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함께 신당을 창당한다는 발표를 했다. 애들 표현대로라면 ‘헐!’이다. 장황한 설명을 요약하면 그냥 합치겠다는 것인데, 합당과 다른 게 뭔지 애매하다.

    나는 안철수의 ‘새 정치’라는 것에 관심 없었다. 어차피 감성이나 자극하는 정치적 레토릭일 뿐, 국민이 정치 피로감을 느낄 때마다 수없이 나온 ‘새’ 말들 중의 하나다. ‘제3의 길’ 같은 새로운 정치이념이나 사회개조이론으로 무장하고 나온 것도 아니다. 정치인 안철수에게서 새로운 걸 찾자면 그가 정치신인이라는 것뿐이었다.

    놀랄 일은 그게 아니다. 지난해부터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석기 의원은 결국 실형이 선고됐고, 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안보심리 단면을 보여줬다. 경제계에서는 당대 50대 그룹 총수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줄줄이 구속돼 실형이 선고되는 일도 일어났다.

    그런가 하면 해를 이은 국정원 선거부정 사건은 아직 약발이 진행 중이고, 연초부터 역사교과서 때문에 좌우로 나뉘어 역사 편 가르기에 온 나라가 시끄럽더니 갑자기 카드사 고객 정보를 관리하던 신용정보업체 직원이 1억여 건의 고객정보를 빼돌렸다는 뉴스가 화면과 지면을 도배했다. 내 정보야 보잘것없어 놀랄 것도 없지만, 내가 그쪽으로 무지해서인지 등록된 고객정보상의 우리나라 인구(?)가 그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 대포폰 대포통장에 더해 대포인간도 있는 모양이다. 인구는 5000만인데 고객 정보는 1억(?) ‘경칩’이다.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비분강개하며 들고 일어나는 동안, 여수 앞바다에서는 정신 나간 도선사가 배를 들이미는 통에 바다가 시커멓게 되면서 말실수한 해수부 장관이 기름 뒤집어쓰고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하기야 ‘경칩’일 뿐이다.

    더 놀라운 일은 대학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 건물이 붕괴되어 사망자 열 명을 비롯해 100여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었다. 그동안 삼풍백화점을 비롯해 성수대교 남해 창선대교 등이 붕괴되는 후진국형 붕괴사고가 많았지만, 이처럼 싱싱하고 꿈 많은 청춘들이 한꺼번에 대형 사고를 당한 적은 없었다.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을 넘어 기가 막히는 ‘경칩’이다.

    이 와중에 지난 2월 하순에는 생활고에 지친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생겼다. 이건 놀랄 일이 아니라 슬퍼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나는 놀랐다. 가난에 등 떠밀려 세상을 등진 세 모녀가 남기고 간 봉투에는 70만 원이라는, 그들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고, 봉투 바깥엔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선명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한쪽에서는 재벌 총수들이 주주나 회사 돈 수백, 수천억 원을 떼먹고 교도소 앞에 줄 서는데, 가난으로 세상을 등지면서도 월세와 공과금을 봉투에 곱게 남겨두는 눈물 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모녀를 지켜주지 못한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사건과 사건의 연속선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안 놀라고 산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놀란다는 것은 매사가 예측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예측가능하지 않은 세상은 불안한 세상이고 상대적으로 불안감을 더 느끼는 것은 언제나 서민이다. 서민이 불안해한다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방증이고 이는 전적으로 국가지도층의 책임이지만, 청마 해를 맞아 힘찬 메시지를 전하던 국가지도자들은 경칩에 개구리 잡으러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연초부터 확산된 조류인플루엔자와 중국발 미세먼지가 수상쩍게 하늘을 덮고 있는 이 우울한 봄날에 허구한 날 경칩이라니!

    김홍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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