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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92) 고성 ② 마암면 수림서원~장산숲

서원에서 만났다, 조선 선비의 기상과 옛 건물의 기품

  • 기사입력 : 2014-03-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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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군 마암면 화산리 수림서원의 조제문은 솟을대문이다.
    도연서원의 솟을대문
    도연서원 전경
    수림서원의 사당인 흠덕사
    장산숲의 연못
    수림서원 전경
    장산숲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펄쩍 뛴다는 경칩이 지났는데,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다. 겨울다운 추위가 없었는데도 올해 봄은 더디게 오고 있는 느낌이다.

    우수가 지나며 따뜻한 날씨가 잠깐 찾아와 봄이 오는가 싶더니 이내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래도 대지에 생명의 힘을 불어넣는 것은 자연이다.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오두막 양지바른 언덕의 들풀도 분홍빛 보랏빛의 다양한 꽃들을 피우며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봄철은 아름다운 여행의 계절이다.

    여행은 삶의 가치를 채워주는 스승이며 의사의 처방전이 불필요한 치료약이다. 길 위에서 자연을 만나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얻어지고 스스로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들판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자라는 강한 생명의 힘을 주는 보리밭을 바라보며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인 서원이 있는 마암면으로 향했다.


    ◆화산마을과 수림서원

    회화면 배둔리 부근 국도 14번 화산 삼거리에서 옥천로(지방도로 1007번)로 방향을 바꾸면 화산마을 이정표와 마을의 유래가 적힌 커다란 안내판이 반겨준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숲과 쉬어갈 수 있는 정자와 체육기구,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수도시설과 그늘이 있어 지금은 성년이 된 자녀들이 어릴 때 취사기구를 챙겨와 밥도 해먹고 즐기며 망중한을 보내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요즘 마을 부근을 지나다 보면 이런 편의시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바쁜 사람들에게 잠시 쉬어가라는 것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보니 중독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 현실이다. 기계로부터 얻어진 병은 기계를 멀리해야 치유가 된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뛰고 달리는 체험활동이야말로 마음의 문이 닫히는 문명의 병을 고칠 수 있다.

    화산마을에는 상사목에 대한 전설이 있다고 인근을 지나던 마을 촌로가 일러줬다. 옛날 이 진사라는 부자가 뒷산 삼신당에 기도를 한 후 딸 하나를 얻었는데, 행랑채에서 집안일을 해주며 살던 머슴 내외도 같은 시기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고 한다. 어릴 적 소꼽친구이던 이들은 성년이 되어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그만 임신을 하게 됐으나, 신분 때문에 이 진사는 딸에게 사약을 내렸다고 한다. 그 후 머슴의 아들도 시름시름 않더니 죽고 말았다. 아들이 죽자 아버지는 저승에서라도 맺어지라고 이 진사 딸의 묘지 옆에 묻어 줬는데, 이듬해 봄 무덤에서 새싹이 나오고 그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 나무는 자라면서 서로 엉키더니 몸통까지 꽉 달라붙어 자랐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뤘다 해 지금도 상사목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화산마을에서 화산4길을 따라가다 수림교를 건너면 왼쪽 깊은 골짜기에 숨은 듯이 고즈넉한 수림서원이 있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사립교육기관으로서 관학과는 달리 사림들의 유학적 이상을 실현하고 향촌사회를 교화시키고자 건립됐다.

    조선 최초의 서원은 백운동 서원이다. 사림의 중앙 정계 진출이 이뤄지면서 17세기 이후 서원의 건립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초기 서원이 어진 사람을 존경한다는 소극적 교육기능을 수행했던 것과는 달리 퇴계 이황 이후에는 서원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학문의 연구와 교화, 특히 후진 양성을 통한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서원은 붕당정치의 세력 거점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강조됐고, 선현 추모라는 제향 기능이 사림의 윤리 질서와 결속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보다 중시됐다. 또한 지나친 사액 증가로 경제적 폐해도 발생했다. 결국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각 봉향 인물을 위한 서원은 하나만 남긴다는 원칙에 따라 전국에 47곳만 남기고 모두 훼철됐다. 경남에는 남계서원, 충렬사, 포충사 등 3개소가 훼철되지 않았다.

    수림서원 전방 50m에는 오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수림저수지가 있다. 작은 인공 섬이 있는데, 긴 의자를 놓아 작은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수림서원은 화산리 수실마을 뒤 도기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 산세가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워 수림서원으로 이름을 지었다. 1856년(철종 7년)에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한 무열공 배현경 등 6명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됐다. 경내로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었다. 다행히 인근에 사다리가 있어 담을 넘어 들어가 보니 경내에는 흠덕사, 항승문, 수림서당, 산해정, 조제문, 낙열문, 양정재, 유사문, 고직사가 있고, 건물의 배치는 강학공간·제향공간·재실공간과 부속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조제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수림서당은 1923년에 중건된 강당이다. 서원 내의 행사와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된다. 흠덕사는 사당으로 단청이 돼 있고 여섯 선현의 위패와 영정이 있다.



    ◆도연서원과 장산숲

    인적이 없는 한적한 수림서원을 나와 마암초등학교 뒤편으로 가면 도전리에 도연서원이 있다.

    서원은 사학으로서 가급적 지방 행정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개인의 수양을 위해 인적이 드물고 경치가 뛰어난 곳에 자리해 선비가 은거하며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했다. 서원은 사묘에 모시는 인물의 출생지 또는 선현이 학문을 수양하던 장소에 세웠다.

    도연서원에 도착하니 솟을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한참을 서성이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서원쪽으로 들어왔다. 인근 과수원에 퇴비를 주기 위해 왔다는 관리인 허선도(67) 씨였다. 그가 온 덕분에 다행히 월장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인근 장산마을에 살고 있는데 외딴곳에 있는 서원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의 문짝까지 떼어간다는 세태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도연서원은 1687년(숙종 13년) 허기와 허천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됐다가, 1920년에 유림들과 후손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강당, 사당인 추원사, 돈화실, 명성실, 내삼문, 외삼문인 일원문이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강당 뒤쪽 추원사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돈화실과 명성실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정문인 일원문은 앞면 3칸 솟을대문으로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그 윗부분에 난간을 설치한 누대를 둔 것이 특이하다.

    도연서원을 나오면 물이 가득한 아름다운 작은 저수지가 있다.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었으나, 서원에서 학문을 하던 선비들이 책을 놓고 산책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마암면 소재지를 지나 장산숲으로 향했다. 인근 양지바른 밭에서 노인네들이 시장에 내놓을 부추를 다듬고 있는 모습에서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꼈다.

    장산숲은 약 600년 전 조선 태조(재위 1392~1398년) 때 허기 선생이 마을의 지형적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다. 원래 숲의 길이가 1000m에 달했다고 하나 지금은 길이 100m, 폭 60m 정도만 남아 있다. 현재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는 250여 그루로 남부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느티나무, 서어나무, 이팝나무, 소태나무, 검노린재나무, 배롱나무, 쥐똥나무 등이다.

    조선 성종 때 허천수가 이 숲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만들어 낚시와 산놀이를 즐겼다고 하며, 연못 중앙에는 조그만 섬이 만들어져 있다. 장산숲은 마을의 지형적 결함을 막기 위해 만든 숲으로 옛 선조들의 자연 이용이 슬기로웠음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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