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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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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믿는 것만 보인다- 김용대(정치부장)

  • 기사입력 : 2014-03-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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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오래전부터 써 왔겠지만 이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서다. 평소에 그냥 지나쳤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들도 저렇게 깊은 뜻이 있구나. 역시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후로 이 말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도 역시 알았다.

    그러나 이 말이 모든 상황에서 통하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선거판에서 이 말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유명한 심리 실험이 있었다. 하버드대학 조교수였던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대학원생인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는 실험 대상자들에게 흰색과 검은색 티를 입은 각각 3명이 두 팀으로 나뉘어 서로 어지럽게 왔다 갔다 하며 농구공을 패스하는 동영상을 보게 하고 흰색 티를 입은 사람들이 몇 번이나 공을 패스하는지 세어보라고 했다. 이때 실험장 안으로 고릴라가 등장한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이 동영상에서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절반을 차지했다. 뭔가에 집중하면 눈으로 보고도 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고도 한다. 흔히 경험하는, 한 가지에 집착하면 주변은 보이지 않는 현상과 같다.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어떤 시의 시장선거에 15명, 또 다른 시에서는 8명, 또 다른 군에서는 11명이라는 후보가 출마를 한다고 한다.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시장이나 군수에 당선되지 못하거나, 후보에도 오르지 못할 사람들이 상당수다. 유권자들은 그들이 당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틀림없이 당선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지금까지 선거 취재를 하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많이 봐왔다. 자신이 당선된다고 생각하고 출마를 결심했을까? 가족들은 말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들이다. 특히 이들과 인터뷰를 하면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는 당선된다”고 확신한다. 이들이 학력이나 경력이 밀려서도 아니고,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바로 ‘무주의 맹시’라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유권자가 어떻게 생각하건, 또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이 자신은 선택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거의 확신범에 가깝다고나 할까.

    더 큰 문제는 유권자도 마찬가지로 이 무주의 맹시에 빠지곤 한다. 바로 저 사람이 적임자라는 확신이다. 정치철학이니 살아온 과거니 하는 것은 다 필요없다. ‘저 사람이 당선돼야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또 ‘동문이니까, 내 고향 사람이니까’ 하는, 후보와 연줄이 닿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한다.

    주의력을 갖고 사물을 보면 무주의 맹시는 간단하게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휴대폰을 보며 길을 걷다 전봇대와 부딪치는 경우와 같이, 그저 민망한 정도의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지방선거에서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얼토당토않은 자기 확신에 빠져 지역 지도자를 선택한다면 4년 동안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한 가지 일로, 또 자신과의 단순한 연결고리 때문에 일꾼을 선택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후보들이 공약을 내걸 때 진정성이 있고, 실현 가능한지, 아니면 인기영합 공약인지 꼼꼼히 따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의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큰일 난다.

    김용대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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