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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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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52) 합천 정양늪

초록을 기다리는 봄의 늪

  • 기사입력 : 2014-03-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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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의 정양늪. 다양한 수중생물과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정양늪의 철새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비경은 아니다. 단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면서도, 도심 주위에서 ‘그대’를 쉽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그대란 수중생물과 철새라는 겨울나그네.

    둔탁한 물에 고개 내민, 또는 처져 물속으로 향하는 가시연, 수련, 어리연, 남개연, 자라풀, 물옥잠 등이 수려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겨울이면 큰고니, 큰기러기,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쇠오리, 쇠물닭 등이 비상과 휴식을 하며 하나의 둥지가 되는 곳이다.

    여름과 겨울이 아닌 봄, 가을도 신록과 갈대의 속삭임이 교차한다. 4계절 내내 색다른 풍경을 주는 곳, 도심 가까운 곳의 작은 늪이 합천 정양늪이다.

    정양늪은 도심 인근에 접해 있다. 차로 휑하니 지나치면 표도 나지 않는다. 정양늪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래서 좋아한다. 아무나 찾을 수 없지만,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지난 7일 정양늪을 찾았을 때도 인적은 간데없고 반겨주는 것은 철새들의 무리였다. 정양늪 중심으로 살짝 걸쳐 놓았다가 늪 주위로 빼놓은 듯한 데크를 걷다 보면 철새들의 무리가 머리 위로 날갯짓한다.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는 똥도, 셔터를 누르기 위한 동작도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혹 놀라서 날아가는 것인지, 가고 싶어 날았는지 모두가 머리 위로 날아오른다. 후두둑, 찰칵.

    비경 아닌 비경이다.

    정양늪은 약 1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확한 위치는 합천읍과 대양면을 통과하는 합천대로 옆에 자리한다. 황강 지류 아천천의 배후 습지이며, 경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크다.

    정양늪은 한때 최대 100㏊에 이르렀으나, 황강의 하상 저하와 수량 감소 등으로 육지화가 가속되면서 현재는 40여㏊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한다.

    하지만 줄어든 만큼 자연자원을 보호하려 하는 의향도 강했다. 합천군은 정양늪지의 복원을 위해 2007년을 시작으로 2011년에 완료됐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기능보강사업을 마무리했다.

    하천 물길 조성, 늪 준설과 확장, 생태탐방로 조성, 가로수·수생식물 식재, 전시실 설치 등으로 이어져 생태계 보고로 다시 태어나는 작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늪은 봄이면 피어오른 버들로 모두 신록이 되고, 여름이면 가시연, 물옥잠 등 수생식물이 늪을 덮는다. 가을이면 늪을 메운 갈대가 바람에 휘날리고, 겨울이면 철새들이 황량한 늪에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한다.

    수생생물들은 각시붕어, 참몰개, 동마자, 모래주사 같은 물고기는 물론 금개구리, 무자치 등이 살고 있다. 가끔 이들을 먹이로 하는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와 황조롱이 등이 눈에 띈다.

    정양늪에는 그간 100여 종의 다양한 식물과 30여 종의 어류, 20여 종의 곤충, 40여 종의 조류, 10여 종의 양서·파충류, 10여 종의 포유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태공원 조성사업 이후 변화된 생태계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생태 모니터링도 진행 중이다.

    정양늪은 이제 한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려 한다. 늪 인근의 숲들이 푸른색을 갈아입으려 하고, 철새들은 새로운 곳으로 비상하려 한다.

    예전처럼 또 한 해가 시작되고, 그런 후 1만 년이 또 흘러가겠지만 옛 자연을 간직한 모습은 어느 곳보다 강한 곳이다.

    합천군의 장재덕 씨는 “몇 번을 와도 좋은 곳이다. 늪으로 이어진 데크로 지날 때 날아오르는 철새들이나, 계절별로 부는 바람이 인근 숲과 마찰의 소리를 낼 때 고즈넉함이 드는 곳”이라고 말했다.

    정양늪은 비경 같지 않은 풍광이지만 자연과 인간이 함께 누려야 할 생태의 보고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가끔씩 고독과 허무를 즐기고 싶을 때, 또는 날갯짓하는 힘찬 철새를 찍기를 원하는 작가들은 한 번쯤 와볼 만한 곳이다.

    글·사진= 전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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