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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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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감정평가사의 고뇌- 이경료(한국감정평가협회 울산·경남지회장)

  • 기사입력 : 2014-03-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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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전 일이다. 필자가 어느 지역에 보상감정평가를 한 일이 있었다. 의뢰를 받고서 서류를 검토하고 사전 지역분석을 한 후 현장에 나갔었다. 현장을 꼼꼼히 살피고 사무실에서 다시 여러 요인들과 관계법규를 검토한 후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한 달가량의 시간이 소요됐다.

    사업시행자인 관공서를 통해서 감정평가 결과가 피수용자인 주민에 통보가 되었다. 난리가 났다. 보상금액이 현 시세에 미치지 못하고 이 돈으로는 당초와 유사한 부동산을 매입하기 어려우며, 현장에 나가지 않고 탁상에서 앉아서 감정평가를 했다는 등 상당한 원망과 항의에 시달렸다. 얼마 후 주민들을 설득하고 내용을 설명하면서 대부분의 오해가 풀렸다.

    과연 현시세란 무엇인가? 소위 적정한 가격으로 감정평가를 했는데도 왜 유사한 다른 부동산을 구입하기 어려운가? 분명히 현장에서 피수용자와 대화도 나누고 의견을 경청했는데도 왜 그들은 탁상행정으로 나를 폄하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런 일이 있은 후 언제부터인가 이런 의문점에 고민해 왔다. 오늘날 보상 문제는 남대문 방화사건과 용산4구역철거현장사건 등으로 이어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으며 주민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이슈화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부(富) 중에서도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국가 등이 도로나 택지 등을 조성하기 위해서 부동산을 위시한 주민의 재산을 수용할 때면 손실보상을 해야 한다. 법은 이른바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비교형량해 개인이 수인해야 할 범위가 넘게 되면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주민의 재산을 공정타당하게 보상하기 위해 전문가인 감정평가사에게 그 역할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

    감정평가사는 유형, 무형의 자산의 가치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 누구나 인정할 가능성이 높은 가격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다. 감정평가사가 행하는 감정평가에는 담보평가, 경매평가, 공매평가, 보상평가, 기업자산평가, 표준주택평가, 표준지공시지가평가, 개별주택 및 개별공시지가 검증 등 다양한 목적을 띤 업무가 있다.

    담보평가에서는 금융기관의 채권회수 가능성과 대출받고자 하는 이의 정당한 재산가액을 고려해야 하고, 경매평가 및 공매평가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 그리고 일반 투자자의 입장, 보상평가에서는 수용자와 피수용자의 이해관계, 기업자산평가는 주주와 투자자 및 채권자의 입장, 표준주택평가 및 개별주택검증, 개별지가검증업무는 과세의 기준이 되는 만큼 균형성을 고려하고, 공시지가평가에서는 부동산 가격평가의 기준이 되므로 그 적정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감정평가는 어느 한쪽의 당사자가 아닌 여러 측면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감정평가사는 어느 쪽도 아닌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지위에서 그 결과를 내야 한다. 그리고 공정성, 성실성, 객관성, 신뢰성 등이 바탕이 되는 전문가로서의 고도의 직업윤리관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각종 이해관계에 부딪히기 일쑤이고 곳곳에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감정평가는 단지 수치가 맞는지 검토하는 작업만이 아니다. 법규정에 나열된 내용들을 해석하고 산식으로 계산하는 작업만도 아니다. 감정평가는 유형·무형자산의 경제적 가치를 가액으로 표시하는 작업이며 전문가의 판단과 의견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가 다소 추상적이고 그 형식이 귀납적이며 경험에 바탕을 두는 경우가 많다. 또한 결론에 대한 과정을 검증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현직 감정평가사는 이런 푸념 어린 하소연을 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 결과를 내더라도 감정평가의 결과에 대해 만족하는 이해관계인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

    오늘도 필자는 감정평가의 결과가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서류를 검토하게 되고 되새겨 보게 된다.

    이경료 한국감정평가협회 울산·경남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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