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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89) 김승강 시인이 찾은 산청 차황

저기, 저 산모퉁이 돌아 산길 따라가면
내가 아직 닿지못한 너의 마을 나올까

  • 기사입력 : 2014-03-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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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무재 조망대에서 내려다본 상법마을.
    법평리 신촌마을.
    상법마을에서 올려다본 감암산 정상.
    예전에 있던 황매산영화주제공원 바로 앞에 있는 한 식당.


    눈이 내린다.

    어제는 대학기숙사 화단의 목련이 핀 것을 보았다 그제는 변호사집 매화가 개화한 것을 보지 않았던가. 오늘은 여기 눈이 내린다. 봄은 오긴 오고 있는가. 눈송이가 작다. 바람이 분다. 눈발이 흩날린다. 쌓이기는 글렀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지난겨울 그렇게 기다렸던 눈이 아닌가. 먼 지방에서는 눈 속에 마을이 갇혔다. 도시 기능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먼 나라 풍경 같았다.

    3월에 내리는 눈. 나는 정녕 봄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왜 기다렸던가. 어느 가수는 ‘봄날이 오며는 뭐하노 그쟈’라고 노래했던가. 봄이 온다 해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봄의 길목에서 느닷없이 웬 눈인가. 다들 봄봄이라고 말할 때 나는 겨울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가. 저 눈은 나를 위로하는 눈인가. 이제 떠날 수 있도록 잡은 손을 놓아달라고 내리는 눈인가.

    밖을 내다보며 왜 저렇게 폐허가 되었느냐는 내 물음에 식당 주인아줌마는 얼마 전 모두 철수했다며 “눈이나 구경하고 가이소”라 한다. 보여줄 게 없는 게 자신 탓인 듯 미안해 한다. 볼 것도 없는 곳을 떠나지 못하고 지키고 있는 것은 떠날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저는 저 폐허가 폐허가 아닐 때를 기억하며 여길 찾아온 게 아닙니다. 저 폐허가 폐허가 아니었던 때를 기억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니라도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올 거잖아요.” 눈치를 보니 그때를 기다리는 게 분명했다. ‘그때’- 온 산에 꽃이 피는 때.

    왜 내가 그때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내려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혼자였던가, 아니면 둘이었던가. ‘혼자’는 기억할 수 없고, ‘둘’은 여기 없으니 물어볼 수 없다. 감암산의 봉우리가 눈구름 속에 갇혀 있다. 내 머릿속의 기억도 눈구름 속에 갇힌 저 산의 봉우리처럼 오리무중이다. 첫인상이 강했던 모양이다. 다시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첫인상은 그 뒤에 그 영화를 보고 생각했지만, ‘웰컴 투 동막골’의 그 동막골 같았다고나 할까. 혹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누가 물으면 “왜 있잖아, 동막골”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면 그가 금방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과 격리된, 아니 아예 다른 세상이 없는 마을. 요즘 유행하는 말, ‘하늘정원’ 같은. 그 자체가 전부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인 마을. 아침에 해 뜨면 집 앞 밭에 나가 일하고 저녁에 해 떨어지면 코앞 집으로 돌아오는 노동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그때, 그 마을을 지날 때, 언젠가 다시 오리라 다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송이가 작았다. 바람이 불었다. 눈은 쌓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다. 어찌 쌓이고 싶지 않겠는가.

    이번에는 고속도를 이용했다. 국도는 지난번 백마산을 갈 때 이용했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진주를 지나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를 갈아탔다. 사천에서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타고 단성까지 출퇴근한 시절이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그가 있었다. 빈 옆자리를 보며 그때 생각이 났다. 그때 생각을 했다. 그때 생각이 머리에서 떠날라치면 붙잡았다. 단성을 지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산청에서 내리자 자동차는 고개를 한참 올라갔다. 날씨가 흐려졌다. 매곡을 지나자 갑자기 눈발이 날렸다. 나는 차를 천천히 달린다. 자동차가 몇 대 뒤따라 붙는다. 오른쪽 깜빡이등을 켜 추월하게 한다. 산세를 살피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그는 창밖을 잘 보지 않아 나한테 핀잔을 듣고는 했다. 사람의 눈길을 기다리는 저 풍경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건 외면이다. 그건 안 보는 게 아니라 안 보겠다는 것이다. 풍경은 한 곳을 떠날 수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고, 그 기다림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풍경을 모독하는 일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산의 모양세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저기 위엄이 느껴지는 산이 햇살을 정면으로 받을 수 있는 곳에 우뚝 서있다. 눈길을 아래로 가져가자 예상대로 마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중앙에 고목이 한 그루 버티고 선 걸 보아 오래된 마을이다. 저 산모퉁이를 돌아 산길을 따라가면 내가 아직 가 닿지 못한 너의 마을이 나오리라. 지금 지나가면 이승에서는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네가 사는 마을, 모르는 네가 사는 마을. 고개를 넘자 애국가가 끝난 흑백TV의 화면처럼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저 멀리 차황이 보인다.

    출발할 때부터 자신감이 좀 없었다. 나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었지만 그 마을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곳으로 가는 길이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우연히 지나다 만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몰랐다. 차황만 믿었다. 차황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차황이란 두 글자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차황면사무소를 지나 차황교를 지나자 삼거리가 나타났다. 조금씩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제 기억났다. 삼거리에서 진주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그렇다, 이 길이다. 차황치안센터를 조금 지나자 기억은 확실해졌다. 진주 방향의 도로를 벗어나 왼쪽 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났다. 저 길이다. 길 입구에 섰다. 길 입구에 좀 작은 안내판과 엄청나게 큰 안내판이 서 있다. 좀 작은 안내판에는 ‘황매산 철쭉 군락지’라고 쓰여 있었다. 아니 여기가 그 유명한 황매산 철쭉 군락지였단 말인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말대로 지금은 다 철수했지만 ‘황매산영화주제공원’도 그곳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익히 황매산 철쭉이니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이란 말을 들었지만 합천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지나간 길을 그 뒤 한 로케이션 헌터(location hunter·영화를 찍기 전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촬영지를 찾아다니는 사람)가 지나갔고 그때 이후로 그 길은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것이리라.

    두무재를 넘기도 전부터 대형 트럭들이 소음을 일으키며 연신 고개를 넘나들었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법마을 아래에 있는 손항저수지의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눈은 그쳤다 내렸다 했다. 두무재 고갯마루에 조망대가 있었다. 생긴 모양으로 보아 영화주제공원을 만들 때 세운 것 같은데 어째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조망대에 올라 내 기억 속의 ‘세상’을 눈 아래로 조망한다. 눈이 내려 날씨는 흐리고 트럭들의 소음으로 마을은 불안했다. 내가 처음 마을을 찾았을 때는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심었을 가로수가 자라 내려가면서 볼 수 있었던 마을 전경을 볼 수 없었다. 가로수는 벚나무였다. 벚나무는 성장이 빠르다. 신촌마을 입구 고목은 그때도 고목이었고 지금도 고목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내가 내려다본 ‘세상’은 법평리와 상법리에 걸쳐 있는 것 같았다. 법평리에는 방금 말한 신촌마을이 있고 상법리에는 상법마을이 있다. 신촌마을은 황매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마을 앞으로 개울을 이루며 내려갔다. 개울 건너편에 있는 정자에 서면 신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촌마을은 한눈에 조망하기 좋은 반면, 상법마을은 길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상법마을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말았는데, 그 기억이 오늘 다시 나를 여기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신촌마을을 잠깐 올려다보고 상법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상법마을로 가는 도중에 그때는 발견하지 못했던(그때도 그 길이 있었을까?) 큰 길이 교회를 오른쪽으로 끼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길 끝에서 나는 ‘폐허’를 만났고 그 위 초막 같은 한 식당에서 커피를 얻어 마셨다.

    그 길은 아마 내가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때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이미 폐업한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을 위한 길이라기보다는 황매산철쭉제를 위한 길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매산철쭉제로 말할 것 같으면 황매산영화주제공원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겠는가. 식당 벽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영화배우와 주인아주머니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낡은 사진액자가 두 개 걸려 있었는데, 한때의 영화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벽면은 그동안 다녀간 사람들이 휘갈겨 쓴 사인으로 가득했다. 식당 바로 위에는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한 시 방향으로 임도가 나 있었고 임도 끝은 안개로 지워져 있었다.

    머뭇거리며 식당으로 들어가자 주인아주머니는 어서 들어오라며 TV를 보고 있던 아들을 시켜 나에게 커피를 내어다주었다. 나는 “커피보다 막걸리나 한 병 주세요” 하려다 말았다. 아줌마는 프라이팬에 뭔가를 볶고 있었는데, 막걸리를 한 병 시켜 마셔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버릇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눈이 더 오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과 술을 마시고 차를 몰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던 것이다. 대신 나는 다음에 막걸리 마시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식당을 나왔다. 순간적으로 나온 빈 인사말이었지만 말을 뱉자 ‘아 이건 약속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하는 약속이라고 할까.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뱉은 말을 위해서라도 다시 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마 그때가 되지 않을까. 그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기다리는 ‘그때’- 온 산에 꽃이 피는 때.

    글·사진= 김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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