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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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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어시장서 부대낀 삶, 詩가 되다

성윤석 시인, 생선상자 나르는 일하며 일상 담아
마산박물관 5월 31일까지 ‘마산어시장 시(詩)전’

  • 기사입력 : 2014-03-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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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합포구 추산동 창원시립마산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마산어시장 시(詩)전’./성승건 기자/



    멍게 - 성윤석


    멍게는 다 자라면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1803년, 진해현(오늘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으로 유배온 김려 선생은 어족에 관해 형태, 습성, 번식, 효용 등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魚譜)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썼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2014년, 서울에서의 사업이 기울어 마산으로 내려온 성윤석(49·사진) 시인은 어시장에서 일하며 본 다양한 어종과 시장의 풍경을 시로 썼다.

    200여 년을 사이에 둔 둘은 비슷한 심정일까.

    멍게, 장어, 고등어, 상어, 명태, 임연수, 적어, 아귀… 어시장에서 파는 생선 목록이자 성 시인이 쓴 시 제목이다.

    창녕에서 태어난 시인은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다녔고, 졸업 후 지역 일간지 문화부 기자, 마산시보 편집장 등으로 마산에서 활동하다 상경했다.

    사업이 기운 시인은 10여 년 만에 마산으로 돌아와 지난해 5월부터 생계를 위해 마산어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멀리 바다를 건너온 냉동 생선상자를 나른다. 스스로 어시장 일용잡부라고 부른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일을 하다 원양어선을 탄 베트남 청년이 조기 상자에 그리고 쓴 그림과 글씨를 보고 시심이 떠올랐다.

    일을 마치고 어시장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히다 보면 이 사람들과 어시장의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이후로 시인은 6시에 퇴근하고 나면 매일같이 조금씩 시를 썼다.

    이 시들은 문학관이 아닌 박물관에 걸렸다.

    마산합포구 추산동 창원시립마산박물관은 오는 5월 31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마산어시장 시(詩)전 - 신, 우해이어보를 걸다>를 연다.

    “박물관에서 왜 시를 전시하냐고요? 우리 지역민의 삶, 풍경이 그대로 녹아든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마산어시장은 살아있는 삶과, 역사의 현장입니다. 어시장의 오늘을 타임캡슐에 담아 전시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송성안 학예사는 성 시인의 시들은 지역사를 정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인은 어시장을 지키고 있는 식구들이 말하는 것을 받아 적고, 정리한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친근한 생선 이름으로 시작해 어시장 사람들의 애환을 녹여내다 보니 전시장에서 시에 어렵지 않게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이자영(57·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장을 보러 어시장에 자주 가는데 시를 보니 그 풍경이 생각난다”며 “시라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어시장 이야기가 나오니 친근하다”고 말했다.

    전시된 시들과 더불어 어시장을 배경으로 쓴 다른 시들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으로 곧 엮여 나온다.

    3월 마지막 주 수요일인 26일 ‘문화가 있는 날’ 오후 6시 30분에는 ‘성윤석 시인과의 대화’ 시간도 있다. 전시한 시 중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낭송하면 시인이 그 시에 대한 뒷이야기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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