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8일 (목)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진해서 ‘강동호 커피연구소’ 운영 강동호 교수

“정직하게 볶고 정성으로 내려야 진정한 커피”

  • 기사입력 : 2014-03-21 11:00:00
  •   
  • 강동호 부경대 교수가 자기 이름을 걸고 운영하고 있는 ‘강동호 커피연구소’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바드득’ 원두 갈리는 소리에 한 번, 끓는 물이 고운 원두가루에 떨어지며 ‘보그르르’ 거품이 끓어오르는 소리에 또 한 번. 두 번의 좋은 소리와 함께 고소한 커피향이 방안에 퍼진다.

    커피향이 문 밖까지 솔솔 새나가는 이곳은 카페가 아니다. 바로 강동호(53) 교수가 창원시 진해구 경화동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운영하고 있는 강동호 커피연구소이다.

    지난 4일 강동호 커피연구소를 찾았다. 화학을 전공하고, 부경대학교에서 신소재공학을 연구하고 있는 강 교수가 방금 내린 커피 한 잔을 건넸다.

    “방안에 가득한 향기의 실체는 사슬 길이가 짧은 지방산들이죠. 산패가 일어나기 전의 신선한 원두를 사용해야 향도 많이 나고 커피 맛도 과일처럼 상큼한 신맛이 납니다.”

    “한 잔 더 들어요. 지금 내린 커피 원두는 게이샤라고 하는데, 섬세한(Delicate) 맛이 발랄한 느낌을 줍니다.”

    지난 3일 아들을 군에 보낸 뒤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게이샤를 더 자주 즐긴다고 했다.

    여러 커피를 번갈아 마셔 보니 너무 쓰지도 않고 시큼하지도 않은 그의 커피 맛은 커피를 충분히 즐기지 않는 이라도 원두를 분간할 만하다. 그에게 커피를 배우러 온 수강생들의 웃음소리가 더해져 커피에서 발랄한 맛이 나는 듯했다.


    ◆탐미·연구 대상으로 빠져들어

    그는 KAIST와 포항공대에서 화학관련 석·박사를 취득하고 엘지화학중앙연구소 연구원, 창원대 유전공학연구소 연구교수, 벤처기술전문연구소 연구소장을 지낸 공학도다.

    요즘엔 커피감별사, CSCA(창원스페셜티커피협회) 커피 바리스타 심사관, 한국 커핑 전문 심사관, 진해커피바리스타아카데미원장, 유럽바리스타 레벨Ⅰ·Ⅱ 자격 등 커피와 관련된 이력이 더 길어졌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지난 2009년께부터다.

    “TV에 커피 전문가가 나와서 커피 생두를 로스팅해 원두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제겐 커피 생두가 열화과정을 거치며 지방산도 분해되어 나오고 각종 유효물질들이 생기는 과정으로 보이더라고요. 이게 화학이구나 싶었지요.”

    이후 탐구욕이 생겨 각종 커피 자격증을 모으며 커피 관련 연구논문을 탐독했다. 지난해 2월에는 자신의 진해 경화동 자택 1층에 커피연구소를 차렸다.

    강 교수는 “커피로스팅은 1~8단계까지 강도가 있다”면서 중간 정도인 4~5단계의 로스팅을 권했다.

    기호에 따라 로스팅은 달리할 수 있지만 강하게 로스팅하면 커피 내 활성 유효성분이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커피에서 발견된 유효물질은 850여 가지가 있는데, 이는 커피에 함유된 화학물질의 반도 안 됩니다. 강하게 로스팅하면 또 다른 이로운 물질들이 파괴되는지도 모르죠.”

    그는 커피가루가 숯처럼 다공성 물질이라 비누와 샴푸로도 만들어 쓰고 섬유질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하루 한 잔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면 섬유질 음료를 마시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커피 연구를 시작하고 몸무게를 8㎏이나 감량했다고 활짝 웃었다.


    ◆커피는 정직해야

    그는 커피를 즐기는 이는 많아졌지만 제대로 된 커피 맛을 즐기는 이는 별로 없다며, 커피 공급자와 판매자들이 정직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원두의 지방은 쉽게 산패되기 때문에 로스팅하고 2주 내 마시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커피 중에는 볶은 지 1~2년 된 원두도 사용하는 걸 보면 아쉽습니다.”

    또 원산지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커피 맛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개인 커피 전문점에서도 메뉴판에 아메리카노, 카페라떼라고만 써서 팔고 예가체프, 안티구아처럼 원산지를 밝히는 곳은 몇 없죠.”

    그는 한편으로 커피의 질과 맛은 원산지에서 거의 결정나는데, 자신의 로스팅 기술이 대단한 것인 양 행동하는 전문가들도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가진 커피감별사 자격증은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인 SCAA에서 딴 것이다. 최근에는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의 매니저였던 스티븐 길이 한국지회를 열면서 누구나 국내에서 커피감별사 자격을 딸 수 있게 됐고, 전 세계 SCAA 등록 커피감별사 2000여 명 중 한국인만 4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커피 전문가가 많은데, 시중에 팔리는 커피들의 현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커피 전문가들이 혼자만 즐기지 말고 제대로 된 커피를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직하게 볶고 정성으로 내린 커피는 다도(茶道)처럼 사람을 바르게 이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커피로 나누는 기쁨

    강 교수는 지난해 9월 진해 희망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부탁으로 한 형제에게 커피를 가르쳤다.

    그는 “올해 열아홉과 열여덟인데 처음 만났을 땐 둘 다 의기소침했는데, 커피를 배우며 자신감도 찾고 점점 밝아졌다”며 “지적장애를 가진 형은 가르치기 힘들었지만 동생은 금세 배워 자격증도 따고 현재는 커피 관련 학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형제의 변화에 강 교수도 감화돼 지난해 12월부터 진해장애인복지관에서 비장애인 및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바리스타 교육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는 지적장애인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은 있지만, 실습 위주로 교육하면 배우는 속도가 느리더라도 확실히 교육효과가 있어 바리스타가 지적장애인도 충분히 도전할 만한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교과서 그대로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을 보며 놀라웠습니다. 내 자격증을 따지지 않고 의심 없이 가르치는 대로 순수하게 내 말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커피 한 잔 나누는 것보다 커피에 대한 기술과 지식을 나누면서 커피의 더 깊은 향기를 알아가고 있다.

    글=원태호 기자·사진=성승건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원태호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