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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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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가난해야 할 수 있는 일- 윤봉한(윤봉한치과의원 원장)

  • 기사입력 : 2014-03-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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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는 진료하나요. 병원들 같이 쉬지 않나요?” 의사들의 집단 휴진 날 치과 환자도 함께 줄었다. 치과가 의과의 부분이라는 오해 탓도 있다. 짧은 상념에 들기 좋은 오후가 되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제 엄마보다 인형을 중하게 품고 다니던 때다. “쏘리 노 펫 플리즈.” 비엔나소시지처럼 짧은 매듭으로 이어진 단문으로 간이식 식당으로 들어가려는 우리 가족을 막아선 사내가 있었다. 안달루시아라고 부르는 스페인 남부. 검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애완동물 출입금지> 표시판이 보인다. 웃었다. 비로소 초로의 무어풍 사내의 얼굴엔 성공했다는 장난 웃음이 번진다. 아이들의 품에 있는 곰 인형으로 그럴듯한 농담을 했노라는 흐뭇함이다. 500여 년 전 이곳에서 패퇴했던 무어인의 후손이 분명해 보이는 사내는 이제 스페인 경찰을 흉내 낸 제복을 깔끔하게 갖춘 식당 경비원이다. 허리춤엔 빈 지갑이 분명할 단총도 찼다. 그때 궁금했었다. 이런 곳에 왜 경비원이 있는 건지.

    ‘1월의 강’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도시에서의 강도 이야길 들은 것은 최근이다. 그곳에서 살다온 교민으로부터 남미의 밤 문화 강의를 듣던 중이었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리우 데 자네이루’의 고급 식당에 강도가 들었다. 무르익어 가던 늦저녁에 들이닥친 불한당들은 애송이가 아니었다. 시시하게 카운터 서랍에 든 잔돈푼을 노린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중무장을 한 예닐곱 명의 복면들은 출구부터 틀어막고 홀 안에 가득한 손님들의 소지품을 하나하나 벗겨나갔다. 간 큰 강도의 출현에 리우 시민은 놀랐다. 하지만 경찰은 별다른 후속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그러한 치안 행정에 시민들의 비난도 없었다. 반면 식당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서둘러 경비원의 숫자를 늘리고 경비원의 무장도 보강했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도치된 행동들이 그곳에선 일상이라는 사실이었다. ‘1월의 강’으로부터 멀리서 온 사람들만 이상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교민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부자 입장에서는 치안을 위해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보다는 개인 경비원을 두는 게 합리적 소비다. 빈부의 차가 심하니 경찰력을 보강하는 데 드는 누진적 세금을 생각하면 부자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적게 내고 개인 돈을 주고 경비원을 사는 게 더 싸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진 않겠지만 이런 식의 생각들이 남미에서 사설 경비업체들을 키우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의료 정책의 큰 줄기는 국민건강보험이다. 그러나 그 외곽에 많은 민간의료보험이 있다. 암 보험이니 실손 보험이니 간병 보험이니 치아 보험이니 하며 다양한 이름으로 호객을 한다. 밤낮 광고를 쏟아 붓는다. 그들이 얼마를 버는지는 몰라도 케이블에 넘치는 광고의 양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이윤을 짐작할 수 있다. 광고의 홍수에 불안해지는 건 서민들이다. 스스로 대비해야지 하며 그나마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이렇게 국민건강보험 주변에서 한푼 두푼 챙기던 민간의료보험이 이미 본류인 국민건강보험의 규모를 앞질렀다는 진단도 있다. 결과는 비관적이지만 아무튼 의사들 파업 이유 중 하나도 국민건강보험 바로 세우기다. 공공의료의 확대가 사회적 정의라는 것이다. 치안이나 의료를 포함한 복지는 공동구매와 비슷하다.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공동으로 구매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뜻이다. 민간의료보험에 비해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은 적자를 겨우 면하고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의료보험료의 대부분이 보험료를 낸 가입자의 혜택으로 돌아갔다는 물증이기도 하다. 가난함이 오히려 합리적 소비로 이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윤봉한(윤봉한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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