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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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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지인지감(知人之鑑)-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鑑識) 능력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4-04-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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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 가운데 허생(許生)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한 선비인 허생이 10년 동안 글 읽기로 계획하고 매일 글을 읽는데, 어느 날 부인의 불평 때문에 집을 나왔다.

    당시 제일 부자인 변 부자를 찾아간 허생이 “조금 시험해 보려는 것이 있어 그러는데, 돈 1만냥만 빌려 주시오”라고 하자, 변 부자는 두말도 안 하고 “알겠습니다”라고 하고는 바로 1만냥을 빌려 줬다.

    그러자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평소에 변 부자에게 부탁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변 부자집 아들 아우 및 갖가지 부탁하러 온 손님들의 눈에는 변 부자의 행동이 이상해 보였다. 자기들에게는 그렇게 철저하게 따지고 인색하게 굴던 변 부자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이나 사는 곳도 물어보지 않고 거금을 단번에 내줬던 것이다.

    그래서 따져 물었다. “아까 그 사람을 압니까?”, 변 부자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변 부자를 공격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1만냥을 주었으니, 내버린 것이지요. 성과 이름도 물어보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변 부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대개 남에게 구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신의 뜻을 널리 펼치고, 자신이 신용 있고 의리가 있다고 자랑을 하지. 그러나 그들은 얼굴빛에 부끄러운 빛을 띠고 비굴하고 말이 중복되거든. 그러나 아까 그 사람은 옷이나 신은 헤어졌지만, 말이 간명(簡明)하고 눈매에 자신감이 있었어.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시험하는 바가 있지만, 나도 그 사람에게 시험하는 바가 있네”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에게 시험하는 바가 있다’는 말은, 자기 소개도 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 간명하고 눈매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신용이 있을 것이란 변 부자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5년 뒤 허생은 10만냥을 갚았다. 변 부자의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던 것이다. 변 부자가 사람 보는 요점은 ‘말이 간명하면서 눈매에 자신감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말이 많고 비굴한 빛이 보이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선거의 후보들이 많이 나섰다. 이들은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로서 나름대로 이력을 쌓아 왔다. 이들은 우선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우선 신의(信義)가 있어야 하고, 인격을 갖춘 것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 혼란한 것은, 현란한 말 솜씨로 쇼를 잘하는 사람들이 각종 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공천하는 당이나 선거에 참여하는 국민 개개인이 신의가 있고 인격을 갖춘 참된 인물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知: 알 지. *人: 사람 인.

    *之: 갈 지. *鑑: 거울 감.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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