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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11) 박금숙 서예가와 김혜연 시인

10년 예술우정 지켜준 건
다름, 그 아름다운 이끌림

  • 기사입력 : 2014-04-0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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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다름과 반대에 인색하다. 어떤 이는 다른 대상에 경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다름과 반대를 틀림으로 인식하는 경직된 사회에서는 다름이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나와 달라서 등을 지고, 손가락질을 하고, 싫은 소리를 한다.

    너와 내가 다를 뿐인데, 사람이 ‘같다’는 말이 더 이상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여기에, 다름의 진가를 아는 두 여자이자 두 예술가이며 두 개의 다름인 사람들이 있다. 박금숙 서예가와 김혜연 시인이다.

    둘은 옷차림부터 말투와 묻어나는 분위기, 성격, 좋아하는 계절까지 모두 다르다.

    그런데 좋단다. 다른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감탄하는 모습이다. 서로 가지고 싶은 부분을 상대가 가지고 있다고 했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다.


    지난 3일 오전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박금숙 서예가의 작업실에서 둘이 만났다.

    이날 두 사람은 옷 스타일부터가 달랐다. 박금숙 서예가는 차분한 파란빛 원피스에 하늘빛이 도는 스카프를 둘러 화사했다. 김혜연 시인은 검은색 바지와 얇은 중국풍의 흰 셔츠 위에 뾰족한 칼라가 달린 흰 셔츠를 겹쳐 입었다. 스스로를 단단히 잠가 올린 느낌이었다.

    이렇게 다른 둘의 인연은 10년도 지난 과거로 올라가야 한다. 창원예총의 한 행사에서 만났다. 봄기운이 한가득 차오른 이맘때였다. 그 전에는 서로를 작품으로 먼저 알았다.

    김 시인은 10여 년 전쯤 박 서예가의 작품을 전시회에서 접했다.

    “전시회에서 박 선생님 작품을 보는데, 정말 좋은 거예요. 힘, 기운이 커서 누군지 궁금했지요.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박 선생님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근데 저는 남이 좋다 해도 제가 좋지 않으면 그냥 그걸로 싫거든요.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똑같은 분이셨어요. 온화하면서도 자기 일에 당당하고, 의식 있는 사람,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할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더 좋아하게 된 계기는 선생님께서 새벽에 목욕재계를 하고 새벽기도를 다녀와 작업을 할 때도 있으시다는 거예요. 아유, 저는 꿈도 못 꿀 일이에요.”

    박 서예가는 김 시인의 시를 ‘창원문학’에서 봤던 걸 떠올렸다.

    “십 년도 더 전 일이라 시 제목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납니다. 문장이 굉장히 간결했어요. 시 안에서 직설적인 화법을 쓰는데 오히려 짧게 표현을 하니까 거기에 제가 살을 계속 붙이게 되더라고요. 또 김 선생님을 직접 만나 보니 툭툭 던지는 시랑 선생님 말투가 똑같았어요. ‘시와 사람이 다르지 않다면 이 사람은 얼마나 투명한 건가’하고 생각했죠. 누가 뭐래도 ‘나는 김혜연이다’잖아요. 정말 멋졌어요. 자신에 충실하니까요.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사람이 좋아요.”

    박 서예가는 김 시인의 시가 젊고 생기가 있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마치 20대처럼 남을 신경쓰지 않는 당당함이 있어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요? 그런데 선생님, 저는 몸도 마음도 80대 같아요. 흥미로운 것이 없고, 지루해요. 들뜨지도 않고, 잘 놀라지도 않아요.” 김 시인이 말했다.

    박 서예가가 놀랐다. “그건 완전히 다르네요. 저는 아직도 마음은 20대 같아요. 저기 창문으로 은행잎이 보이지요? 저 잎들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 저를 미치게 만들어요. 20대 딸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행복하고요. 잘 통해요.”

    돋아나는 잎을 이야기한 덕에 봄을 맞으러 바깥으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화가가 운영한다는 용호동의 한 카페로 향했다. 나무가 연둣빛 잎을 피우고 있었고 벚꽃이 하얗게 떨어졌다. 시인은 앞에 둔 사람을 계절에 빗댔다.

    “박 선생님은 봄 같아요. 따사로운 기운이 샘솟아요. 소쿠리가 있다면 봄나물을 소복소복 담고, 싱싱한 감자도 더 담으실 테지요. 부지런히 애정을 듬뿍 주고, 소쿠리에 담긴 것이 오래돼 마르면 비우고 다른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실 것 같아요. 소쿠리를 빛내기 위해서요. 반대로 저는 제 소쿠리의 채소를 마르게 방치해 둔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저는 담아두는 것 자체로, 혹은 비어 있어도 소쿠리는 그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소쿠리에 한 번 담은 걸 썩게 두진 않지만요. 적극적이지 않은 거죠.”

    “맞아요. 저는 봄이 좋아요. 봄은 생명을 싹틔우기 위해 영양분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저도 늘 제가 영글어지는 데 목말라해요. 책도 좀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잘 안 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계속 담으려고 하는 마음은 있어요.”

    이때 머물고 있는 카페의 주인이 등장했다. 주인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 반갑게 맞았지만 방식이 달랐다.

    “보세요. 박 선생님은 손도 잡아주고, 환하게 대해주세요. 사람은 교류가 있어야 사는 거잖아요? 저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손잡고, 호응해주고 이런 걸 잘 못해요. 그럴 성격이 못 되는 거죠. 내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 누가 먼저 다가오는 것도 거부하니까, 추운 기운이 도는 2월이라고 봐야 할까요? 선생님 색을 좀 가져와야 한다니까요, 하하.”

    박 서예가는 사람을 내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래도 김 선생님은 정말 든든한 최정예 부대가 있잖아요.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저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오지랖만 넓은 거죠. 이런 성격 때문에 오해받은 적도 많고 그래요.”

    봄이 좋지만 차가운 기운을 갖고 싶다고 했다.

    “봄 같다고 해주셨지만 저는 사실 김 선생님처럼 차가운 기운이 도는 가을이고 싶어요. 담백하고 극도로 절제된 기운이 있어야 작업에 몰두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것저것 바구니에 다 담으니 바쁘지요. 특히 저는 작업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는데, 작업세계와 교육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교육은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고, 작업은 나만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젊은 시절에 교육에 너무 많은 비중을 뒀어요.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처음부터 글만 쓰신 김 선생님이 부러워요.”

    김 시인은 시인이라는 옷이 자신에게 맞다고 했다.

    “저는 제 이름 뒤에 ‘시인’이 붙는 게 정말 좋아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발칙한 일들까지도 글로 쓰면 문제가 안 되니까요. 시 쓰는 걸 사랑해요. 제가 시를 잘 쓰든 못 쓰든, 사람들이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상관없이.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시가 늙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발전하지 않아도 시에 대한 제 애정만 식지 않는다면요. 계속 이것만 할 수 있었으니 복됐지요.”

    “맞아요. 저도 붓을 정말 사랑해요. 이 좋은 걸 왜 안 하냐고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김 선생님 시처럼 ‘나다운’ 것은 없어요. 우리 붓글이 문자놀이잖아요. 문자 안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메시지를 찾아야 하는데, 그 메시지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늘 ‘마음’ 주제로 삼아봐요. 마음과 관계되는 문자를 모아보는 것이지요. 문자놀이에선 쓰기, 철학, 윤리, 미의식이 다 있는데 이 중에서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건 조금 미뤄두고 아직은 문자가 가진 철학을, 붓질을 하는 의미를 좀 더 공부하려고 해요. 예순이 넘으면 저다운 게 나오지 않을까요? 그 전까지는 작품을 실험으로 해보려는 생각입니다.”

    4월과 2월, 20대와 80대, 온화함과 차가움, 서예가와 시인이 있었지만 둘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것들이라 생각했지만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다만 서로가 동경하는 어떤 부분이 있을 뿐이었다. 달라서 가능한 일이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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