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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2) 김승강 시인이 찾은 마산 산복도로

산비탈 골목 사이로 추억의 시간여행

  • 기사입력 : 2014-04-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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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학로에서 바라본 합포만.
    월영동 집들의 지붕.
    가로등이 선 골목길.
    골목길에 놓인 화분들.
    마산무학로
    마산제일여고 아래 산복도로
    문화동 연애다리 벚꽃
    통술거리.
    벚꽃과 자전거


    나는 그 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노래할 수 있을까

    불임으로 엉킨 햇빛의 무게를


    견디는, 때로는 고요 속에 눈과 코를 만들어

    아래로 내려보내서는 서러운 허공중들도

    감싸안는

    그 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하여



    클레멘타인을 부르던 시간들을 아코디언처럼

    고스란히 들이마셨다가

    계절이 지칠 때

    꽃 피는 육신으로 다시 허밍하는

    그 집 지붕의 단란한 처마들



    -장석남의 ‘내 살던 옛집 지붕의 갸륵함에 대해서’ 중에서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계신 곳을 나와 말씀드렸던 대로 마산으로 갔습니다. 꾸물거리던 날씨는 장복터널을 넘자 기어이 비를 뿌리기 시작하더군요. 이제 막 꽃이 폈는데, 질까 걱정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창밖을 지나가는 기찻길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잠기고는 한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창밖으로 기찻길이 지나가서, 기차가 어머니를 싣고 시간여행을 시켜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옛 생각에 잠겼다가도 어느 순간 부질없다는 생각에 그 생각에서 얼른 빠져나오고는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옛생각에서 빠져나오면 기다리는 것은 병든 육신의 고통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고통이 찾아오면 시계만 쳐다보고 고통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 고통의 시간은 너무도 더디게 가겠지요. 못난 자식인 저는 일요일 하루, 그것도 겨우 삼사십 분 정도 어머니께서 병든 육신의 고통을 잊고 시간여행을 떠나실 때 잠시 동참할 뿐입니다. 제가 마산으로 가려는 것은 어머니께서 떠나시는 시간여행의 그 시대,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가 건너오셨을 그 시대, 그 시대의 시간 속으로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가려는 그곳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줄 것 같았습니다.

    석전동에서 월영동으로 이어지는 마산 무학로를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 문화동과 월영동 사이에 합포만 쪽으로 시야가 확 트이는 공간이 잠깐 스쳐지나가는데, 언젠가 그곳을 지나가면서 그곳에 차를 세우고 합포만을 내려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탁 트인 합포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무학산에서 합포만으로 이어지는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의 지붕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때때로 집들의 지붕이 보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럴 때면 산으로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지요. 그 산이 자신들이 사는 집 근처에 있는 산이라면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사는 집을 찾습니다. 집 근처의 산이 아니라도 산에 오르면 자신이 사는 집의 방향을 가늠해보게 됩니다. 산 위에서 자신이 사는 집을 발견하면 반가워하지요. 집은 주인이 산 정상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한쪽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약속장소로 가다, 저기 앞쪽에서 다른 쪽을 쳐다보고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가 지금 계신 집이 그렇듯 지붕이 없는 집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집들은 지붕도 없고 그래서 처마도 없지요. 옛집들의 처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했겠지요. 지붕이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우리들을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주었던 것처럼 처마는 지나가는 사람이 잠시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산 무학로에서 바라본 문화동과 월영동의 집들은, 집들의 지붕들은 그래서 아름다웠습니다. 지붕들은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 집들은 서로를 의지했던 것이겠지요.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서도 각자 자신들만의 삶의 서사를 간직하고 있겠지요. 서사의 강물은 집들 사이로 난 골목길이 되어 흘렀을 것입니다.

    산비탈의 집들 사이로 난 골목길들은 한 지점에서 합류했다 다시 나누어져 내려가는데, 그 합류지점이 산복도로입니다. 산복도로는 산의 배 부분을 가로지른다 하여 산복도로랍니다. 산복도로는 많은 골목길들을 안으로 수렴하면서도 또 많은 골목길들을 밖으로 확산합니다. 산복도로는 주로 뒤로는 산이고 앞으로는 바다가 있는 공간에 있습니다. 따라서 산복도로에 서면 산을 올려다볼 수 있고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초등학교 4~5학년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데리고 어딘가로 열심히 가고 계셨습니다. 한참 뒤 알게 되었지만, 어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가신 곳은 월영동인지 문화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복도로 옆의 어느 작은 집이었습니다. 그곳은 큰어머니께서 살고 계신 곳이었습니다. 그날은 할아버진지 할머닌지는 모르지만, 두 분 중 한 분의 제삿날이었고 저는 제사보다는 잿밥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큰어머니께서는 마산수출자유지역에 다니면서 마산의 여기저기를 이사 다니면서 사셨는데, 일 년에 몇 번 제삿날이 있을 때마다 저는 어머니를 따라 큰어머니댁으로 갔죠. 어머니께서는 큰어머님을 존경하셨습니다. 큰어머님은 오래전 생활이 어려워 일본으로 돈 벌러 갔다 그곳에서 새로 가정을 꾸리고 눌러앉아 돌아오지 않으시는 큰아버지에 대해 어떤 원망의 말씀도 하신 적이 없으셨다면서, 훌륭한 분이라고 말씀하시고는 하셨습니다. 큰어머니께서는 혼자 사셨지만 조상님들의 제삿날을 지극정성으로 챙기셔서 제삿날이면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며 과일들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삿밥을 배부르게 먹은 그날 월영동 밤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을까요. 그 제삿날 밤 창밖으로 올려다보았던 그 산은 분명 무학산이었습니다.

    무학로의 월영동 끝에 있는 대원사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바람이 불면서 간간이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졌습니다. 저는 버스정류소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했습니다. 일찍 만개한 벚꽃이 비에 조금 떨어져 내렸습니다. 다행히 비는 곧 그쳤습니다. 비가 지나간 뒤의 합포만은 깨끗했습니다. 집들의 지붕들은 구름 사이로 내려쬐이는 봄 햇살에 반짝였습니다. 사실 무학로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에는 조금 위험했습니다. 인도와 차도는 철책이나 높이 차로 구분을 해두긴 했지만 너무 좁아 저쪽에서 사람이 오면 자전거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언덕 아래로는 마을의 골목길로 이어지는 길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일단 바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갔다 돌아와 마을로 내려가기로 하고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무학로의 벚꽃도 다른 곳의 벚꽃 못지않게 아름다웠습니다. 벚나무 사이사이로 목련과 동백이 아스팔트로 꽃잎을 떨구고 서 있었습니다.

    에스오일 주유소를 지나 동성아파트까지 갔다 자전거를 돌렸습니다. 더 이상 바다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다 언덕 아래 마을로 이어진 어느 한 길을 골라 아래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겨우 사람이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골목이라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기에는 좀 불편했습니다. 인기척을 듣고 어느 집에서 개가 짖기 시작했습니다. 개는 계속 짖어댔지요. 그때 그치라고 다그치는 사람소리가 들렸는데, 어머니같이 나이 많은 분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집 담장에는 해당화꽃이 한창 피어 있었습니다. 해당화꽃 너머로는 멀리 합포만의 바다가 배경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집 대문 옆에는 가로등이 서 있었는데, 늦은 밤 늦게 귀가하는 어느 가장의 지친 발길을 비추었겠지요. 조금 더 내려가자 좁은 골목 한쪽으로 많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집안에 마당을 들일 수 없었기에 골목길이 마당이고 정원이었던 것이겠지요.

    어느 삶이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어머니의 삶은 힘든 삶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기쁜 날도 없지는 않았겠지요. 골목길을 나오자 산복도로가 나왔습니다. 그 산복도로는 제일여중 뒤를 지나갔습니다. 무학산을 한 번 올려다보고 저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들과 집들의 지붕들이, 집들의 지붕들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들을 보며 산복도로를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한 곳에서 어머니의 신산한 삶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어느 기쁜 날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무학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바다로 흘러들기 전에 하천을 이루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천은 매우 깊었는데, 양쪽으로는 오래된 벚나무가 꽃을 피워 서로 끌어안기라도 하려는 듯 팔을 한껏 벌리고 있었습니다. 하천을 건너는 다리 위에 서자 저에게도 벚나무는 손을 내미는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낯이 익다 싶었는데, 오래전에 그곳을 찾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인근에 있는 통술골목의 한 통술집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은 항상 흥취를 거느리는 법이겠지요. 그때가 생각나 저는 통술골목을 향해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지난밤에 술이 과했던지 통술골목은 아직 잠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제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걱정을 하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나이가 될 미래의 어느 날, 어머니처럼 시계만 쳐다보며 고통의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릴 때 “클레멘타인을 부르던 시간들을 아코디언처럼 고스란히 들이마셨다가 계절이 지칠 때 꽃 피는 육신으로 다시 허밍”하고 싶은 것입니다.

    글·사진= 김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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