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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93) 고성 ③ 마암면 장산리 허씨 고가~예수작은마을

하나하나의 건축물에 스민 역사와 삶과 문화

  • 기사입력 : 2014-04-0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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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허씨 고가
     
    마암면 석마
    예수작은마을 성당
    예수작은마을 성당 천장
    허기 유허비
    위계서원



    생명이 움트는 따뜻한 봄날이다. 봄은 역동하는 힘이 솟아나는 여행의 계절이다. 집을 나서며 “꽃구경 가자~”던 어느 가수의 노래를 틀어봤다. 아름다운 봄에 제자가 청첩장을 들고 신부가 될 아가씨와 주례를 부탁하러 찾아왔다. 아직 주례를 설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륜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양했더니 새 출발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했다. 가정환경이 어려웠던 그는 힘들고 어렵게 고교 시절을 보냈다. 자녀 교육에 있어 부모의 역할이 새삼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봄날 예쁜 꽃들이 추운 겨울을 이기고 피듯, 경찰의 길을 택했던 제자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작은 것을 스스로 실천하는 올곧은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싶다.


    ◆장산리 허씨 고가와 위계서원

    고성군 마암면 앙상한 장산숲 나뭇가지에도 봄기운이 가득했다. 장산숲을 산책하고 도로를 건너면 2개의 비각을 만난다. 왼쪽은 1843년에 세워진 정절공 허기의 유허비이다. 유허비란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선현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를 뜻한다.

    허기는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이 됐으나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신돈을 조사해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가 고성으로 유배됐다. 장산숲도 조선 태조 때 허기가 마을의 풍수지리적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조성한 비보(裨補)라 전해진다.

    정절공 유허비 앞에는 서원 앞에서 주로 만나던 하마비가 있어 이채롭다. 오른쪽에 있는 열효각은 허묵의 처인 안동 권씨와 허경문의 열부 효자 정려비각으로 남편에 대한 부인의 열행과 자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다.

    정려는 조선시대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로 관청이나 유림, 직계후손들이 예조에 올려 정려 내려주기를 요청하면 왕명에 의해 명정을 받았다. 선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많이 건립됐으며, 일제 강점기 때에 더 많이 건립됐는데 신흥 부호들이 이때 가문 과시용으로 건립한 것이라 여겨진다.

    마암면 곳곳에 있는 서원들과 장산숲, 유허비, 허씨 고가를 스토리텔링이 있는 훌륭한 체험학습 등으로 활용하면 좋은 관광자원이 되겠다.

    장산리 허씨 고가는 허기 유허비에서 멀지 않은 마을 안쪽에 있는데 도로변에서 보면 아담한 흙 담장길이 정겹다. 허씨 고가는 사당과 안사당, 그리고 가옥 한 채와 2층 건물 구조이다. 사당은 조선 고종 2년(1865)에 세워져 허씨 4대 선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 건물이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말(1800년대)에서 일제강점기(1912년)에 걸쳐 나타난 한식 전통가옥과 화식(和式)주택이 혼합된 대표적인 가옥이기 때문이다. 건축구조 형식과 건축재료 및 평면 구성이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표현돼 있다.

    건물 배치는 안채, 안사랑채, 바깥사랑채, 솟을대문, 가묘, 광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정면 4칸 초가집의 안채는 퇴락해 헐리고 초석과 기단이 남아 있다. 안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한식 토기와의 우진각 지붕으로 안채 전면에 나란히 배치돼 있다. 안사랑채 뒷면의 안마당은 앞면과 사랑마당으로 구분돼 독립된 대청공간을 배치한 평면 구성을 이루고 있다.

    위계서원은 장산리 허씨 고가에서 건너편 산길로 200m쯤 가면 마암면 석마리 64에 있다. 위계서원은 다른 곳과는 달리 관리가 매우 잘되고 있어 주변과 내부가 청결했다. 서원 앞에는 후손들의 기념식수가 10여개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위계서원은 이인형·이의형·이영·이현·이허·이응성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매헌 이인형(1436∼1498)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김종직의 제자이다. 세조 1년(1455)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젊은 나이에 벼슬하는 것이 교만한 성품을 기른다 해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 세조 14년(1468)에 장원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세상을 떠난 후에는 예조판서의 직함을 얻었다.

    조선 현종 10년(1844)에 세운 위계서원은 고종 6년(1869)에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6년에 다시 세웠다.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사당인 숭덕사는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마암면 석마와 예수작은마을

    위계서원을 나오면 진한 녹색빛을 발하는 보리밭 끝이 마암면 석마리이다. 화강암으로 깎아 만든 석마는 마을회관과 당산나무 옆에 2구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마을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피해를 주자 백발노인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 한 쌍의 석마를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그 후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자 이 석마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게 됐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상복(56)씨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동제를 지냈지만 현재는 마을 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동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석마의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고, 축대 아래에 있던 부서진 석마 1구를 복원해 3마리였는데, 약 17년 전 1마리를 도난당했다. 2구의 석마는 귀가 양의 모습을 띤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민속자료이다.

    마암면 신리의 예수작은마을로 향했다. 잔잔한 물결이 이는 어은곡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연화산 자락 계곡에 있는 작은 성당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주는 건축물이다. 지하 1층, 지상 1층의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이며 외벽은 적벽돌로 마감했다. 성당의 본 건물은 삼각추가 곧게 서 있는 외형이고 꼭대기 십자가 첨탑은 보석 모양의 반사유리로 처리해 반짝인다. 성당 본 건물 앞에는 원통형의 진입 공간이 놓여 있다. 기본적으로 평면에서는 정삼각형과 원, 입체에서는 원통과 삼각추로 이어지는 건축물이다.

    여느 성당 건물과는 다른 이런 형태를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성당이 지어진 것은 1986년이다. 당시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김효일 교수는 “당시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성당의 입지는 건축가에게 첫눈에 표현 의욕을 충동하는 영감의 분위기가 서려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주어진 건축 면적이 주위 자연환경에 비해 너무 왜소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건축면적은 200여㎡. 60평이 겨우 넘는 면적이었다. 그 안에 종교적 모든 상징성을 채워 넣어야 했다. 김 교수는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는 신념을 가지고 건축물을 구상해 나갔다고 했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시각적으로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볼륨과 강렬한 매스를 가진 조형, 순수 기하학적 입체의 원형에서 새로운 의미 창조를 위한 공간 구성을 의도했다는 것이다. 좁은 면적에 최대의 효과를 찾다 보니 정삼각형과 원, 원통과 삼각추의 형태를 갖게 됐다고 한다.

    성당 입구 좌우에는 방사 형태의 연지를 뒀다. 사찰의 연지처럼 이곳 연지도 성(聖)과 속(俗)이라는 두 공간을 가르는 역할을 했다. 성당으로 들어가려면 이 연지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는 물질세계에서 정신세계로,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실존적 의미의 상징성이 있다.

    다리를 건너면 원통형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위로는 지상의 본당으로, 아래는 지하 소성당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이 놓여 있다. 여기는 정신세계를 나타낸다. 무질서한 현실세계에서 심연의 가교를 건너 닿는, 신이 거하는 영원의 세계를 향한 전 단계로서의 소공간이다. 여기서 사람은 신을 대할 마음을 갈무리해야 한다.

    성당의 삼각추 형태는 내부 공간에 그대로 표현돼 있다. 세 면의 벽체가 꼭대기 최정점에서 하나로 모아진다. 최정점에는 천창을 둬 하늘의 빛이 성당 내부를 비춘다. 성당에 들어서면 천창에서 내려온 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 부드러운 손길이 마음이 가난한 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듯한 벅찬 감동을 받는다. 위대한 건축가 김효일 교수는 필자의 스승이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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