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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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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꽃을 닮은 사람- 강현순(수필가)

  • 기사입력 : 2014-04-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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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은 겨울잠을 자던 대지가 기지개를 켜며 실눈을 뜨고 있다. 그토록 살을 에는 듯하던 바람만 부드러워진 게 아니라 달콤한 빗물과 따뜻한 햇빛도 일조한 까닭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톡톡 경쾌하게 들려온다.

    가지마다 총총 봄을 매달고 있는 매화 벚꽃 참꽃 개나리는 봄꽃의 대명사다. 이 꽃들은 대체로 일시에 피었다가 일시에 지는 것이 특징이다. 더구나 아쉽게도 단 며칠만 얼굴을 쏘옥 내밀었다가 서서히 자취를 감춰버린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화려했던 나날들은 가슴에 묻어두고 다음 무대를 빛낼 장미 수련 수국 원추리 등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다. 뒤를 이어 국화 코스모스 샐비어가, 동백꽃 히아신스 시클라멘들이 바통 이어받기를 하기 위해 제 차례를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

    이슬 함초롬히 머금고 있는 한 떨기 장미꽃은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게 하고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코스모스길을 걷노라면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가 생각난다. 눈물겹도록 황홀한 벚꽃터널 앞에선 눈과 마음이 정화되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도 그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꽃잎이 한잎 두잎 저만치 떨어져서 피지 않고 서로 정겹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으면서, 가족끼리는 이웃끼리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일깨워 준다. 그러다 비님이라도 오시면 나뭇가지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매달리기는커녕 초연하게 미련 없이 빗줄기에 몸을 맡기는 모습에는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사색하게도 하는 꽃은 우리가 기쁘거나 슬플 때도, 생을 끝내는 날까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올봄에는 꽃소식과 선거소식이 함께 찾아왔다. 모두들 한결같이 능력 있는 참다운 일꾼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목청을 돋우고 있다. 그들이 대단한 프로필을 내세우며 설령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걸더라도 우리는 부디 이뤄지길 바라며 평화롭고 안정된 세상을 잠시 꿈꿔보기도 한다.

    생물학적으로 고찰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아마도 사람이 아닐까 싶다. 달콤한 키스를 하던,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속삭이던 그 입속에는 사악한 뱀의 독보다 치명적인, 전갈의 침보다 더 무서운 비수인 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선거상황을 돌이켜 볼 때, 입후보자들이 자신의 승리를 위해 새빨간 거짓말로 상대를 비방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진저리를 치던 생각이 난다. 또한 자신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듣고 볼 때는 마치 사향노루가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는 듯해 몹시 역겨웠다.

    눈부시도록 고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를 지닌 꽃은 결코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지 않는다. 예쁜 자신의 모습을 봐달라고 소리치지도, 손짓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그 은은한 향에 이끌려 먼 곳 마다하지 않고 그를 찾아 나선다.

    누군가가, 꽃의 매력의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라고 했다.

    올봄의 선거인들은 부디 꽃을 닮았으면 좋겠다. 꽃의 침묵을 배웠으면 좋겠다. 묵묵히 자신의 내면을 가꾸노라면 꽃처럼 예쁘고 고운 향기가 절로 배어나올 것이다. 우리가 꽃을 찾아가듯 지혜로운 유권자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강현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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