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5일 (목)
전체메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은혜(이은미술치료·기업교육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4-04-11 11:00:00
  •   


  • 90년대 발표된 김한길의 소설 <여자의 남자>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세월은 어쩌자고 낮 아니면 밤이고, 사람은 기껏 남자 아니면 여자일까.’ 작가는 사랑 때문에 아프고 힘들어하는 청춘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엇보다 사랑앓이에 지쳐버린 자신을 다독이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붙일 표어를 짓듯 그렇게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시절 20대였던 나에게도 사랑의 아픔은 매우 독한 것이어서 이 문장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사랑의 아픔이든, 빛나는 사랑이든 사랑을 빼고 젊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시대 청년들은 <청춘파산>이라는 최근의 소설 제목이 말해 주듯 사랑타령 한 번 제대로 못해 본 채 현실이라는 가파른 벼랑 끝에서 취업도 결혼도 다 포기해야만 한단다. 가끔 드라마 속 주인공에 빠져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이것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일 뿐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라는 <썸>의 노랫말처럼 온통 불투명한 풍경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자 안나 프로이드는 ‘신경증적인 불행을 평범한 불행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심리치료라고 정의했나 보다.

    얼마 전 상담을 통해 만난 한 교사는 두 번째 육아휴직을 하면서 교포교사(진급을 포기한 평교사)가 됐고, 직장생활과 육아, 살림 등 자신이 져야 할 짐을 생각하면 피해의식만 생기는 게 자꾸만 우울해진다고 했다.

    마지막 보루인 친정어머니조차 손주 돌봄은 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쳐서 야속하기만 하단다. 남편 또한 회사에서 지쳐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눈치 때문에 마음 놓고 쉴 수조차 없는 현실이 버겁다고 토로했다.

    여교사의 남편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메시지에 달리고 또 달리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일 뿐, 피곤에 지친 그를 비난할 수도 없다.

    친정어머니 또한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그러하듯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봄이 와도 제대로 된 꽃놀이 한 번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허망한 세월을 보상하듯, 봄 나비 흰머리 위에 얹고라도 훨훨 날아다니고 싶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누구를 탓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개인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사회구조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시민인 우리들은 사회적인 힘에 저항하기보다는 눈을 감아버린다. 눈을 감고서 문제를 직시할 수는 없다. 문제 해결은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려면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은 자신의 삶의 무게에 맞서는 것이며 이를 통해 사회의 무게에 맞설 수 있을 때 이 이야기 속의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 유명한 여성주의 상담의 대명제는, 이제 페미니즘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주체적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주인의식이 돼야 한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국가의 정치는 대단히 중요한 만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격려하자’고 말한다. 또한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반드시 감시하는 것이 지혜로운 시민의식임을 일깨우고 있다.

    신문의 온 지면이 지방선거 이야기로 잔칫날처럼 떠들썩하다.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술잔만 기울일 것이 아니라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해, 이 시대를 위해 내가 할 일을 생각할 때이다.

    관심없이 비껴서 있는 나의 자세가 나와 사회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이제 내가 던져야 할 한 표에 대한 선택과 책임을 기억하자.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져도 3포 세대 캥거루들이 더 많아진 지금의 풍경은 바로 내가 그린 그림일지도 모른다.

    이은혜 이은미술치료·기업교육연구소 소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