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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3) 김참 시인이 찾은 대청계곡과 장유사

봄산에 빨려든 계곡과 절집 하나

  • 기사입력 : 2014-04-1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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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 장유폭포와 물레방아
    장유사에서 본 장유신도시


    김해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 대청계곡이다. 대청계곡은 장척계곡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유의 명소 가운데 하나다.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놀이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는 대청계곡. 대청계곡이 있는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을 따라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봄을 맞은 대청계곡 주변은 꽃이 피고 나무에 새잎이 돋아나 숲이 울창하다.

    길옆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계곡을 따라 걸어본다. 불모산(佛母山)에서부터 흘러왔을 물이 바위가 가득한 계곡을 따라 내려온다. 귀를 활짝 열지 않아도 물소리가 귀를 가득 채운다. 물소리에 넋을 놓고 걷다가 발을 헛디뎌 신발이 물에 젖는다. 바위에 잠깐 앉아 젖은 발을 말리는 동안 바람이 불어와 연초록 새잎을 단 계곡의 나무들을 흔들고 간다. 흐르는 물속엔 작은 물고기들이 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보다 큰 놈들도 있다. 내가 다가가자 물고기들은 바위틈으로 숨는다. 하지만 계곡의 물고기들은 겁이 없는 편이다. 한여름에 계곡의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물에 담그고 있으면 물고기들이 몰려와 발을 간지럽게 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드문드문 피어 있는 봄꽃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계곡 오른편에 왕벚나무에 꽃이 만개했다. 하얀 꽃 가득한 나무 아래 서서 고개를 쳐들고 하얀 벚꽃을 올려다보다가 계곡의 바위를 밟고 계속해서 올라가 본다. 물이 가득 고인 깊은 웅덩이 속에서 물고기들이 천천히 헤엄쳐 다닌다. 흰 꽃을 피운 나무가 그대로 물에 비친다. 물고기들이 흰 꽃 사이에서 헤엄치는 것 같다. 대청계곡의 물은 참 맑고 깨끗하다.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 물은 천천히 흘러가다가 경사가 급한 곳에서 흰 포말을 만들며 떨어진다. 나무의 연둣빛 잎이 비친 물은 연둣빛이고 큰 바위 옆을 따라 떨어져 내리는 물은 순백이다.

    계곡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계곡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비탈의 경사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맑은 물에 제 얼굴을 비춰보려고 몸을 숙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참 걷다 보니 얼굴에 땀이 맺힌다. 예전에 비해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 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작은 날벌레들이 계속 따라붙는다. 이렇게 계속 올라가다가는 한이 없겠다 싶어 비탈길을 타고 도로로 올라온다. 큰 길을 따라 계곡 입구 쪽으로 내려간다. 바위를 밟으며 계곡을 올라갈 때보다 한결 편하다.

    계곡 입구에 큰 물레방아가 하나 있다. 돌지 않는 물레방아가 혼자 우두커니 서 있다. 아쉬운 풍경이다. 물레방아 옆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다. 장유폭포인 모양이다. 물이 흐르지 않아 물레방아는 멈춰 있는데 그 옆의 폭포에서는 끝없이 물이 떨어져 내린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대청천으로 흘러간다.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서 폭포수를 바라본다. 다리를 따라 차들이 간간이 지나가긴 하지만 폭포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름이 와 계곡에 사람들이 가득할 때까지 폭포는 당분간 외롭게 계곡을 지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장유사 가는 길은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산길이다. 비탈길을 돌고 돌아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장유사는 무척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절에 도착하자마자 왜 이리 높은 산에 절을 세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유사를 세운 사람은 장유화상이고 그는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의 오빠다. 장유라는 지명도 장유화상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을 생각해 보면 장유화상의 사리탑이 있는 장유사가 얼마나 유서 깊은 곳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장유사의 연혁을 살펴보면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였던 장유화상이 AD 48년에 허왕옥과 함께 가락국으로 와서 창건했다고 되어 있다. 정사에서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된 것을 4세기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먼저 가락국에 인도의 남방불교가 전파된 것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을 중심으로 기술된 삼국의 불교전파 역사에는 가야의 불교전파 시기가 빠져 있다. 장유화상은 한반도 최초의 승려였고 김해의 고찰인 은하사와 동림사의 창건도 장유화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우리나라의 불교전파 시기가 기원후 1세기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장유사 뜰에 서서 대웅전을 본다.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검은 자갈이 깔린 넓은 절 마당 때문인지 절집이 넓어 보인다. 대웅전을 비롯한 세 개의 건물이 기역자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약간 높은 곳에 삼성각이 따로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현판 아래 두 개의 용머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대웅전 지붕 너머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 있다. 대웅전에서 삼성각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옆에도 벚꽃이 피어 있다.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온 가스 배달 트럭에서 가스통들이 내려지고 있다. 절 전체의 사진을 찍고 싶은데, 작업이 한참 걸리는지 트럭은 움직일 기미를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뜰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의 풍경은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낮은 곳에서만 살다가 높은 곳에 올라와 살던 곳을 내려다보니 고층 아파트들은 성냥갑보다 더 작다. 그 작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도 참 작아 보인다. 멀리 장유 신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에서 보니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참 좁다. 장유신도시는 첩첩산중에 있는 작은 마을처럼 보인다.

    연둣빛 나뭇잎들과 하얀 꽃, 분홍 꽃의 무더기들이 섞여 있는 봄 산은 참 아름답다.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봐도 눈으로 보는 풍경들이 다 담겨지지 않는다. 산들은 어떻게 저리도 많은 나무들과 돌과 풀들을 자연스럽게 품고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이 만든 도시도 포근하게 껴안고 있을 수 있을까? 봄을 맞이한 산을 아무리 오래 들여다보아도 지겹지 않다. 한참동안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산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대웅전 옆에 있던 트럭이 빈 가스통을 싣고 시동을 건다. 나는 절 전체가 화면에 잘 들어오도록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을 찍어본다. 절 옆 산의 크고 작은 나무들 중에서 아직 새잎을 틔우지 않은 나무들도 힘차게 가지를 뻗어 새 잎을 틔울 준비를 한다. 삼성각 뒤에 빽빽이 모여 있는 나무들에서 연두 빛깔이 감돌기 시작한다. 얼마 후 삼성각 뒤의 나무들도, 그리고 장유사를 감싸고 있는 불모산도 초록빛으로 뒤덮일 것이다.

    산 위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장유사를 나서려니 아까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오던 연인들이 이제야 절 입구에 도착한다. 그들이 절문으로 들어오고 난 뒤 장유사를 나서는 중년 남자 둘이 절을 바라보며 경건하게 합장을 한다. 그들은 절 입구의 사천왕을 향해서도 각각 합장을 하고 발길을 돌려 천천히 산문을 내려간다. 나도 그들을 따라 절을 나선다. 절 한쪽에 모셔진 커다란 청동 지장대불이 연화대 위에 앉아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 오후. 불모산을 한 바퀴 돌고 온 시원한 바람이 장유사 뜰을 지나 산자락 아래로 불어가고 있다.

    글·사진=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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