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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4) 박서영 시인이 찾은 합천 월광사지

두 개의 석탑에 남아있는 달빛의 기억

  • 기사입력 : 2014-04-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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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광사지 삼층석탑
    새로 지은 월광사 대웅전
    월광사 아래채
    월광사지 앞에 흐르는 가야천



    월광사 별채 마루에 앉아 벚꽃 날리는 거 본다. 봄날이 떠나고 있음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주고, 누가 떠나버리고 없다는 것을 가장 아프게 보여주는 것 같다. 마루의 풍경을 훑어본다. 미술학원에 있을 법한 줄리앙 석고상 바로 옆에는 ‘오늘은 아무도 만날 수 없어요’라는 글이 적혀 있다. 110V가 내장된 오래된 라디오와 벽에는 스피커가 두 대 청승스레 매달려 있다. 그리고 슬리퍼와 담배꽁초가 쌓인 재떨이. 이 누추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떠나는 봄날과 잘 어울린다. 오늘은 만날 수 없다면, 내일은 만날 수 있다는 것일까. 오늘 아무 약속도 없이 내일이 된다면 결국 내일도 만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럼 이렇게 바꿔보자. ‘내일은 당신과 만날 수 있어요.’ 이 문장에도 결락이 보이네.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은 내일이란 결국 실체가 없는 시간의 연속이 있을 뿐이니까. 그건 하염없는 기다림의 다른 표현일 뿐이니까. 그럼 이렇게 바꿔보자.

    - 내일 오후 3시, 월광사 별채에서 만나요.

    이렇게 문장을 바꾸니 왠지 안심이 된다. 구체적인 약속을 하고 나면 잠시라도 마음이 편해진다. 슬픔 없이 설레는 문장이 된다. 그러나 헤어지고 나면 바로 차오르는 슬픔. 밤이 오면 그 슬픔을 채운 달을 천천히 밀며 당신은 어디론가 가곤 한다. 달은 많은 기억을 담고 무거워서 매우 천천히 밀리며, 어느 날엔 아무도 밀어내지 않는데도 저 혼자 밀리며 밤하늘을 부유한다. 당신은 이제 익숙해져 갈만도 한데 아직 달을 밀어내고 있다. 달은 솔기가 터진 곳이 없는데도 빛을 뿌려댄다. 어느 날은 심장이 아파서 캄캄함 속으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왜 월광사일까. 달이 환하게 당신을 만나러 나와 외로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나. 오래된 석탑에서 떨어지는 시간의 부스러기들을 기억해 주기라도 하나. 그러나 지금은 당신이 잠시 머물렀던 자리만 남았다. 흔적만 남았다.

    마루에 앉아 꽃나무에 잉잉대는 벌을 바라보는데, 사내가 말을 건다. 달의 아래채에 잠시 머물렀던 객(客)은 한 달 후면 이곳을 떠난다고 했다. 오늘은 아무도 만날 수 없다더니, 여전히 환우(患憂)가 깊으신가. 가는 봄날에 또 한 사람이 떠난다고 했다. 스스로를 바람소리라고 말하면서 또 바람처럼 떠나겠다고 했다. 우리의 고백들은 모두 바람소리처럼 그렇게 떠나버렸지. 월광사 뜰에 내리는 벚꽃 바라보며 당신에게 안부를 묻는다. 올봄엔 꽃나무 한 그루도 함께 바라보지 못했지. 참, 그리고 당신은 떠났지. 월광사에서 바라보면 월광사지 석탑을 쓰다듬던 달빛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석탑의 곳곳에 달빛이 스며들어 있다. 그건 세월의 흔적 같은 것. 빛이 탑을 비추는 날에는 그리움도 함께 부서져 내릴 것이다.

    월광태자의 비운을 품은 월광사는 없다.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였던 월광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월광사는 언제 폐사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채 두 개의 석탑만이 남아 절터를 지키고 있다. 지금의 월광사는 후에 새로 지은 절이다. 월광태자(月光太子)는 생몰년을 알 수 없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이라는 내용 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제10대 왕이다. 562년 신라에게 나라가 망한 후 가야산에 월광사를 짓고 만년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또 하나의 야사는 이렇다.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 혹은 태자인데, 그는 신라에 저항하여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바로 최후의 싸움터가 지금의 월광사터라는 것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 월광사였다는 얘기가 야사로 전해온다. 그렇다면 월광사는 없지만 있는 거다. 남아 있는 거다. 밀면 밀리면서 다시 되돌아오곤 하는 거다. 기억이란 그런 거니까. 개인의 역사든, 국가의 역사든 남아 있는 거다. 월광사지 뒤에 있는 새로 지은 작은 절과 별채는 묵묵히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준다.



    월광사지



    아득한 풍경소리 어느 시절 무너지고

    태자가 놀던 달빛 쌍탑 위에 물이 들어

    모듬내 맑은 물줄기 새 아침을 열었네



    돌에 새겨진 글을 읽어본다. 시간의 흘러감을 애잔하게 노래한 짧은 글이다. 돌 뒤에서 벚꽃잎들이 구름 부스러기들처럼 흩날린다. 날아가 버리는 것들은 모두 잡히지 않아 매혹적이다. 매혹에 붙들린 영혼은 언제나 괴롭다. 달빛, 그 엷은 핏빛은 언젠가 한 번 잡아본 감촉처럼 심장에 남아 있다. 월광사지의 두 개의 석탑 색깔이 그랬다. 엷은 핏빛이다. 어찌 보면 살구색이고 분홍색이다. 석탑을 달빛이라는 시간이 오래 만지고 쓰다듬다 떠난 것 같다. 나도 들여다보고 만져본다. 멀리 벗어나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둘 다 간결하고 아름답다. 화려하지 않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이다. 쌍탑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기 때문일까. 해인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가야천의 물소리를 듣고 석탑의 귀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귀는 열려 있다. 흘러가거나 돌아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당신의 귀도 열려 있는가. 바로 앉으면 세상이 흔들리고 비명을 질러 늘 누워 있어야 한다던 당신은 이제 괜찮으신가. 세상을 바로 걸어갈 수 없어 여전히 병이 깊으신가. 비운의 월광태자처럼 우리는 모두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라서, 언젠가 날아가 버릴 사람들이라서 서로를 들여다봐 줘야 한다. 보살펴 줘야 한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된다. 들여다봐 주는 것이. 눈을 맞추는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저 두 개의 석탑처럼 가슴에 뭔가를 담고. 같은 추억과 기억을 담고 묵묵히 서로를 들여다봐 주는 일. 하염없이 그리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사랑과 이별의 시차는 서로 다르다. 너무 빨리 떠나버린 사람이 있고 아직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오지 않은 사람도 있고 가지 않은 사람도 있다. 소나무 숲에 앉아 말없이 서 있는 석탑.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낮은 무덤이 소나무 숲속에 있다. 나는 무덤이 좋다. 덜컥 또 무덤 옆에 눕는다. 편하다. 어린 시절을 묏등 옆에서 보냈기 때문일까. 알 수 없는 무병처럼 그리움이 돋는다.

    월광사 마당에서 벌을 치는 사내는 한 달 후에 월광사 별채에서 살게 될 거라고 했다. 벌을 치는 사내는 몇 달만 이곳에서 살다가 다른 곳으로 떠날 거라고 했다. 바람 같은 사내가 떠난 자리에 또 바람 같은 사내가 살러 온다고 했다. 그런 사람의 눈빛을 들여다보는 건 곤혹스럽다. 그런 경지의 사람을 견디기 위해선 내공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석탑이 서 있다. 한자리에 오래 서 있다. 오늘밤, 달은 서 있는 석탑을 지나쳐 갈 것이다. 남아 있는 빛 부스러기들이 소나무 숲을 잠시 흔들다 사라지겠지. 그러할 것이다. 밀어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를 밀며 달은 떠날 것이다. 이곳은 월광사가 있었던 자리니까. 당신의 가슴에도 달 한 채 무너진 흔적이 있겠지. 기억의 불가사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진다는 것. 괜찮다는 말은 거짓이다. 월광사지 삼층석탑처럼 깊어져 무언가를, 누군가를 기다려보자.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기다림 자체가 희망이 되는 날까지.

    글·사진=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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