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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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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레옥잠이 핀다- 손영희

  • 기사입력 : 2014-05-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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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 한 번도 수태하지 못한 여자

    한 번도 가슴을 내놓은 적 없는 여자

    탕에서, 돌아앉아 오래

    음부만 씻는 여자



    어디로 난 길을 더듬어 왔을까

    등을 밀면 남루한 길 하나가 밀려온다

    복지원 마당을 서성이는

    뼈와 가죽뿐인 시간들



    2

    부레옥잠이 꽃대를 밀어 올리는 아침

    물 속의 여자가 여행을 떠난다

    보송한 가슴을 가진 여자

    잠행을 꿈꾸던 여자



    푸른 잠옷을 수의처럼 걸쳐입고

    제 몸 속 생의 오독을 키우던 그 여자

    누군가 딛고 일어서는

    기우뚱한 생의 뿌리

    ☞ 그녀 산에다 집을 지었다 전해왔다. 뚱뚱한 장독에 온갖 과일즙 꽉 채워 둔 것처럼 그녀의 시간은 달콤한 무언가로 그득하다. 이제는 바람 나무 들꽃까지 모두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부럽다는 말에 한마디 한다. “여기서는 만들면 일이 태산이야.” 맞다. 부지런한 그녀 빈둥거리고 있을 리 없다. 나물 캐오거나 상추 심거나 밤을 주울 것이다. 분명 알찬 시도 다듬고 가꿀 것이며 푸지게 수확할 것이다. 생각해 보니 마당 한편에 놓여 있던 넓은 의자는 지금쯤 그녀가 앉아 욕심껏 삶의 숨고르기 하고 있겠다. 뼈와 가죽뿐인 시간 지나 어디로 난 길을 더듬어 왔을까. 푸른 잠옷 수의처럼 걸쳐 입고 제 몸 속 생의 오독을 키우는 부레옥잠 같은 여자 잠행을 꿈꾸는 여자 풀뿌리 같은 바로 그 시인. 김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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