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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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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13) 유정자 시인과 김샴 시인

나이차 50이 별건가… 글밭에서 우린 친구

  • 기사입력 : 2014-05-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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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샴(22) 시인이 유정자(72) 시인을 업고 경남대 인문관 뒤편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고 있다. 나이차가 50살이나 나지만 연둣빛 싱그러움으로 하늘로 향해 쑥쑥 자라는 나무 아래에서 둘만의 동행은 행복하기만 하다.


    제2의 인생.

    인간이 어머니 뱃속을 나와 살아가다 다른 인생을 살게 됐을 때를 상투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제2의 인생에는 1과 2를 가르는 점이 있다.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에게 일어난 우연한 일과 선택이 더해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그 사람의 선택 없이는 인생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동일한 선택을 한 두 사람을 만났다.

    둘은 1과 2를 나누는 분기점의 위치는 달랐지만, 분기점의 표지가 같았다.

    몇 개월 차로 시인으로 등단한 유정자(72) 시인과 김샴(22·본명 김태년) 시인 이야기다.

    유 시인은 지난 2월 열린시학 봄호 특별추천 시인으로, 김 시인은 지난 12월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반세기 시간의 거리를 둔 두 사람이지만 선택한 길을 밀고 나가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누구 하나 뒤처지는 일 없게, 손을 맞잡았다.

    손을 맞잡기까지는 여러 개의 징검다리가 필요했다.

    나무 끝 연둣빛 잎이 싱그러운 4월, 징검다리가 놓인 경남대학교 인문관 뒤편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둘을 만났다.


    ◆첫 번째 징검다리

    첫걸음을 내딛기는 어렵지 않았다. 동고동락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했기 때문이다. 둘 다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이기도 했고, 2012년 학기가 시작된 경남대학교 청년작가아카데미 ‘열정 2기’였다. 여기서 시를 가르치는 정일근 교수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도 같다. 작가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고, 전국 백일장에 나가면서 같은 기수들의 ‘문학기행’이 막을 올렸고, 많은 추억들을 쌓기 시작했다. 한 학기가 끝나면 ‘종강입산’이라며 고성 안국사에 가서 명상도 했다.

    “눈이 엄청 많이 내릴 때 제주 올레길도 함께 걷고, 한라산도 갔었어요. 그렇지 샴? 또 어디 갔더라, 순천 무진기행 전국대학생백일장 나갔고, 하동 평사리백일장에도 가고…. 그러다 보니 기차를 타고 1박2일 여행을 하기도 하면서 재밌는 일들이 늘 있었어요. 사진도 많이 찍었고요.”

    수업도 몇 개를 같이 듣다 보니,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익숙지 않았던 컴퓨터를 다룰 때, 김 시인이 유 시인을 많이 도왔다.

    “누님이랑 시대의 문화, 문법까지 해서 수업 서너 개를 같이 들은 것 같아요. 맞죠, 누님? 제가 메일 보내는 거랑 저장하는 법도 가르쳐 드리고요.”

    손주뻘인 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며 학교에 청바지에 점퍼를 걸치고 다니는 유 시인은 학생, 교수님 할 것 없이 ‘정자 누님, 정자 언니’로 통한다.

    “맞아, 이런 적도 있었어요. 시험을 보는데, 안 배운 게 나온 것 같아서 손을 들어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샴이가 배웠다고 하는 거예요. ‘니도 모르제?’ 하고 쏘아붙였는데, 알고 보니 샴이 발표했던 거였어요. 저 발표 잘 듣는데 하하, 그때는 왜 그랬지?”



    ◆두 번째 징검다리

    시간이 지나다 보니 현재 서로의 모습뿐만 아니라 옛 일들까지 알게 됐다. 왜 시를 쓰게 됐는지, 시로 새로운 인생을 열고 싶은지도 털어놓았다. 오늘처럼 직접적(?)으로 털어놓진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도 글을 쓰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집에 다른 건 없고 책장만 7, 8개 정도 있었어요. 가족 모두 책만 읽었죠. 그래서 고등학교 때 샴쌍둥이인 동생과 늘 글쓰기대회에 나갔는데, 동생만 계속 1등을 했어요. 1등이 하고 싶어서 시로 장르를 바꿔 봤는데, 바로 1등이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시에 관심을 갖고 시를 쓴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시가 인생을 변화시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 쌍둥이였지만 누나는 정상이고 자신은 동생과 몸이 붙은 샴쌍둥이로 태어났고, 몸이 동생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허약한 그였다. 처음 입학할 때 167㎝에 40㎏였다가, 지금은 175㎝에 55㎏로 늘었고, 건강해졌다. 예명인 샴도 샴쌍둥이인 자신의 정체성을 담기 위해 정한 것이다.

    “늘 허기짐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엄청 많이 먹고요. 정일근 교수님께서 ‘시로 네 허기짐을 달래봐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등록금 때문에 휴학할까도 고민했는데 상금이랑 장학금으로 계속 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됐지요. 시가 절 살린 셈이에요.” 그는 지금도 7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루 24시간 빈틈없이 하고, 다음날 하루를 쉬는 생활을 하고 있다.

    “너 처음 봤을 때 생각난다. 지금도 말랐지만 정말 그땐 엄청 말랐었는데. 많이 먹어서 놀랐어. 나도 샴 너처럼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 대학도 다녔는데 그 시절에는 시집가면 공부를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결혼을 하면서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살았지. 타고르(*19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도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참았지. 아이들도 다 출가하고 시간이 생기면서, 내 인생을 살아봐야겠다 싶은 거야. 그래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지.”

    쉽게 입학할 수 있는 길을 두고 그는 수능을 준비해 2009년도에 창신대에 입학했다. 이후 경남대로 편입해 시를 배우고 싶다고 정 교수를 찾아갔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아버지,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추억을 그리게 됐던 것 같아요. 현재는 제게 너무 복잡하고, 가벼운 것 같거든요.”



    ◆세 번째 징검다리

    서로 다른 시세계, 서로 다른 시어의 조탁법은 징검다리를 건너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닌가 했다. 유 시인이 김 시인의 시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용어들이 종종 쓰여 어렵다고 털어놨기 때문이다.

    “넌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단어들을 찾아서 시를 쓰니? 나한테는 좀 어렵거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평소에 글을 봐왔던 터라 가능한 질문이었다.

    “쓰는 단어가 비슷해 시가 진부해지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진부해지면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는데, 온라인게임 기획일을 맡고 있던 동생 책을 우연히 보게 된 거죠.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쓸 수 있는 단어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생각나는 대로 풀어 써놓고, 거기에 맞는 컴퓨터 용어, 게임 용어로 하나둘 치환시켜 봤죠. 게임하듯이요.” 2만 개가 넘는 컴퓨터·게임 용어를 외우고, 인터넷 검색창에 아무 자모음을 쳐 넣고 나오는 새로운 단어를 찾아보는 노력도 기울였다. 이 때문에 시가 신선하고, 게임용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로부터 재밌다는 평도 받았다.

    향수를 찾는 유 시인의 시어들은 달랐다.

    “나는 요즘 단어들이 가볍다는 느낌을 받아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아. 내가 쓰는 것도 지난 이야기의 일을 추억하는 것이 많으니까. 나도 적확한 단어가 퍼뜩 생각나지 않으면, 비워두고선 단어를 찾아. 고어나 번역어, 외국어를 찾아보곤 해. 나도 요즘 단어, 새로운 단어를 아는 것도 필요한데, 노력해야겠지.”

    “저는 현상을 보고 표현하는 것밖에 못하는데, 누님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시를 쓰시잖아요. 많이 배우고 싶어요.”

    다른 부분은 오히려 서로의 시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외부자극이 됐다.

    둘은 각각 세 개의 징검다리를 건넜다. 징검다리 사이의 폭이 넓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수많은 노력, 그리고 서로가 대표하는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간격을 좁혔다.

    김 시인은 친구들보다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어울리려 노력했다. 유 시인처럼 인생의 폭을 훑으며 조망하는 시를 쓰고 싶은 김 시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유 시인은 김 시인에게 많이 쓰는 순으로 컴퓨터 용어들 몇 개를 알려달라고 했다.

    징검다리 중간에서 만난 둘은 한쪽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쪽엔 시(詩)를 잡고 문학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50년 세월 차도 상관이 없다. 둘은 문우(文友), 글로써 사귄 벗이다.

    글=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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