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 (금)
전체메뉴

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6) 김참 시인이 찾은 삼천포 죽림동 문화마을

내 詩의 뿌리가 된 고향 풍경

  • 기사입력 : 2014-05-13 11:00:00
  •   

  • 문화마을과 와룡산
    마을로 들어가는 개울 옆의 집
    마을 입구의 정자와 나무
    삼천포 바닷가의 석양


    삼천포시 죽림동 문화마을, 지금은 사천시로 통합된 내 고향. 내가 태어나 열 살 때까지 살던 곳. 외할아버지와 두 분의 외할머니와 외삼촌들이 살던 마을. 얼마 전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삼천포에 갔다. 외할아버지는 백수를 하시고도 삼 년을 더 살다 가셨다. 이모들과 어머니, 외삼촌들과 외숙모들, 외사촌 누이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빈소 옆에서 와룡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돌이켜 보니 나는 그동안 죽림동을 배경으로 한 시를 많이 썼다. 어릴 적 뛰놀던 죽림동은 나에게 낙원 같은 곳이었다. 외삼촌들을 따라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고 논 옆에 앉아서 연을 날리고 밤산에서 밤을 따고 저수지와 개울을 쏘다니며 물고기와 게를 잡고, 철길 넘어 개펄에 쏙을 잡으러 가기도 했다. 쏙을 잡는 것은 무척 신나는 일이었다. 미리 잡아 놓은 쏙을 실로 묶어서 다른 쏙이 사는 개펄로 집어넣어 두 마리가 엉겨서 싸우는 동안 구멍 속에 사는 쏙을 낚아 올렸다. 장례식장 바로 옆이 어릴 적 놀던 해변이었다. 하지만 해변은 변했다. 조개를 캐고 쏙을 잡으며 놀던 개펄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해변을 거닐다가 외가가 있는 마을로 향했다. 마을의 옛 집들은 개량을 해서 옛 모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길과 돌담과 개울은 옛날 그대로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옆의 밭엔 마늘이 자라고 있었다. 마늘밭 옆에 서서 마을 뒤의 와룡산을 올려다보았다. 마을은 변해도 산은 예전 그대로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아래로 개울이 흘렀는데 가물어서 그런지 물은 말라 있었다. 개울 바로 옆에 있는 집, 가끔 꿈에 나오는 집이다. 어릴 적 한두 번 그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담쟁이로 뒤덮인 그 집이 나타난다. 그 집 뒤에는 대밭이 있었고 대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개울에 물고기를 잡으러 가곤 했다. 예전에 이 집 근처에 버드나무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드나무가 베어졌다. 아주 어릴 적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가끔 그 버드나무 베는 장면이 생각나곤 한다.



    그날은 휴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빨래터에 모여들었다. 낯선 사내들이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베고 있었다. 자치기 하던 아이들도 밭 매던 할머니도 개울에서 놀던 피라미도 구경하고 있었다. 나무가 쓰러지자 개가 짖었다. 사내들이 녹색 트럭에 나무를 싣고 마을을 떠나가자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들었다. 오후엔 바람이 미친 듯이 불더니 비가 쏟아졌다.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을 적시며 흘러내린 빗물이 우물 옆을 따라 빨래터로 흘러갔다. -졸시 ‘버드나무 베던 날’



    개울 옆엔 공터가 있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구슬치기를 하며 놀던 곳이다. 공터에서 개울로 내려가면 빨래터가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랫감을 들고 나와 개울 양편에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방망이로 빨래를 치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빨래터 자리에는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빨래터뿐 아니라 마을로 들어가는 길옆도 유채꽃 천지였다. 예전에 공터엔 마을우물도 있었다. 물동이를 이고 와서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긷고는 수건을 머리 위에 얹고 그 위에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던 풍경들이 떠오른다. 정자와 정자나무는 전에 없던 것들이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심었던 작은 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랐을 줄은 몰랐다. 마을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를 가던 날 정자나무가 있는 공터에서 트럭에 짐을 실었던 기억이 난다.



    리어카에 피아노를 싣고 장롱을 싣고 트럭이 기다리는 마을 어귀로 가면 연두색 잎 늘어진 다리 옆 버드나무 안에서 참새 몇 마리 울고 있을 것이다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학교를 지나 트럭은 마을을 빠져 나갈 것이고 아이는 플라타너스 잎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볼 것이다// 창밖으로 산과 들이 지나가고 작은 마을과 목련나무가 지나가고 밤나무 숲이 지나가고 파란 기와집 마루에 걸터앉아 피아노와 장롱을 싣고 지나가는 트럭을 바라보는 여자 아이의 작은 얼굴이 지나가고 포도밭과 작은 마을이 지나가고 마을 앞 풀밭에서 풀을 뜯는 염소 떼가 지나가고 -졸시 ‘여름이 오기 전에’ 중에서



    어릴 적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었다. 그리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열 살 때까지 다녔던 초등학교는 탱자나무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탱자나무들은 온데간데없고 돌담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모교인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나는 어머니가 학교 마치기를 기다리며 자주 운동장에서 놀았다. 하지만 막상 내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는 시내에 있는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학교에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학교에서 2학년 때인가 나는 운동회를 하다 말고 갑자기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나는 혼자 냇가에 앉아 헤엄치는 물고기를 구경했다.



    나는 바닷가 마을에 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을엔 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았습니다. 짙은 안개를 헤치고 나는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에 가는 동안 안개는 서서히 걷혔습니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교문으로 들어가니 운동장엔 만국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나는 운동회를 하다 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강아지풀과 토끼풀을 밟으며 나는 냇가로 갔습니다. 냇물에 발 담그고 해질 때까지 피라미들과 놀았습니다. -졸시 ‘운동회’



    문화마을엔 돌담이 많다. 집 근처에 있는 마을의 밭들도 돌담을 경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폭이 넓고 나지막한 오래된 돌담은 길이 되기도 했다. 나는 이 돌담과 집 근처의 밀밭, 그리고 마을 곳곳에 있던 고인돌, 그리고 돌담 근처에서 자라던 하늘 수박과 돌담에서 놀던 새들을 소재로 시를 쓰기도 했다. 이 오래된 풍경들이 내가 쓰는 시의 뿌리들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 풍경들을 마을이 잘 내려다보이는 밤산에서 외할아버지도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계실지 모르겠다.



    오래된 집터였던 돌담 옆에 밀밭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밀밭 가운데 깊고 푸른 웅덩이가 있는 줄은 몰랐다 돌담을 따라가면 삼나무 숲이 나오는 줄은 알았지만 삼나무 그림자 길게 드리워지는 우리 집 장독대 옆에 오래된 고인돌들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돌담을 따라 가면 개울이 나오는 줄은 알았지만 돌담 옆에 담쟁이로 덮인 우물들이 그토록 많을 줄은 몰랐다.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돌담을 따라 개울로 올라가는 줄은 알았지만 개울가 큰 바위 밑에 하얀 뱀이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돌담에 하늘수박이 주렁주렁 매달릴 때면 돌담에 살던 금빛 새들이 밖으로 나와 하늘수박을 쪼아 먹었다 내가 작은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며 콧노래를 부르면 돌담 옆에서 놀던 금빛 새들이 하늘로 솟아오르곤 했다. -졸시 ‘죽림동의 여름’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슬기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