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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한가?- 이은혜(이은미술치료·기업교육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4-05-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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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은 기념하고 챙겨야 할 날도 많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 의례적으로 치러야 할 행사가 되어 버리면 감동은 없고 힘들기만 하다.

    아름다운 사람 장영희 교수는 자신이 베푼 친절과 사랑에 손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건만, 어리석은 나는 내 인생이 늘 밑지는 것만 같아 저울질을 하곤 한다. 그렇게 계산을 하다 내 인생이 불행한 이유와 근거들만 남게 될 때, 5월은 어버이가 있다는 것, 마음껏 사랑해 줄 아이가 있다는 것, 존경을 바칠 수 있는 스승을 가졌다는 것이 내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쉬>라는 시에는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는 늙은 아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난감해하실까 봐 “쉬, 쉬이,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면서, 툭, 툭, 끊기는 늙은 아버지의 오줌발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 두고 싶은 아들의 모습이, 그런 아들이 힘들까 봐 그 작은 몸을 더 작게 웅크리며 안겨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림처럼 펼쳐지면서 눈앞이 흐려진다. 남은 삶을 마저 놓으려는 아버지의 이 생에서의 이별 앞에 그만 가슴이 뭉클해지고, 여윈 몸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 번 엄마를 안아볼 수 있다면 하는 부질없는 소망에 허망해진다.

    지금도 사무치게 그리운 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요즘 여행을 떠나거나 먼 길을 갈 때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단다. 그래서 항상 길을 떠나기 전엔 옷장을 정리하고, 주변도 한 번 더 정리하곤 하지.” 어느새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지금의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그 말이 마음을 울릴 때면, 영원을 살 것처럼 한껏 부리던 욕심들을 대충은 버릴 수 있게 되고 철학자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내 자신의 어리석음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것이라는 자각에 지금을 행복하게,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렇게 철이 조금 들고 보니 이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이룰 수 있는 것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도 글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게 된다.

    오늘 아침, 눈을 떠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눈부신 초록이다. 하나의 초록빛을 이룬 나무들을 자세히 보니 같은 색은 하나도 없다. 저마다의 빛깔로 이뤄낸 어울림의 세상이 기막히게 아름다워 주루룩 눈물이 난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임을 새록새록 깨닫게 만드는 5월의 아침은 은혜롭고 감사하다. 그래서 계절의 여왕이라 했던가? 문득, 길지 않은 내 삶을 되돌아보니 소담하고 행복한 추억의 페이지들이 꽤 있다. 이런 순간들이 있었기에 고통스런 시간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삶의 신비인가 보다. 오늘만큼은 가진 것이 없지만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감동과 경이를 느끼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라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이 밉지 않다. 오히려 그가 가진 삶에 대한 통찰이 내 삶의 불안을 적잖이 치유해 주기도 한다.

    일상이 버겁거나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는 날도 있지만, 세상이 온통 5월이므로, 이 빛나는 계절이 나를 치유해 줄 것임을 믿는다.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그래, 그런 거지, 읊조리다 보면 다시금 나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고, 부족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이 새록새록 가슴을 채우게 될 것이다. 시가 있어 감사하다.

    이은혜 이은미술치료·기업교육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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