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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7) 박서영 시인이 찾은 밀양 명례성지

이제 울지마… 소박하고 따뜻한 일상의 위로

  • 기사입력 : 2014-05-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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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 있는 명례성당.
    명례성당 내부
    신석복 생가터에 조성된 명례언덕
    국수공장에서 국수를 말리고 있는 모습


    봄 끝물이다. 이렇게 슬프고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의 위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제 울지 마라. 이제 그만 심장에 웅크리고 앉아 우는 여자를 끄집어내라. 그 여자를 보내주어라. 누군가 속삭여주는 것 같다. 바람의 언어로. 강물의 언어로. 저 보리밭과 아카시아의 언어로 누가 내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따뜻한 위로의 말도 잠시일 뿐이니, 더 고독하게 한 단어의 비밀을 캐고 들어가 자기 자신과 고요히 싸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고 대답했다. 내가 태어난 궁핍한 시간 속으로 파고들어가 풍요로운 고독을 길어 올릴 때가 되었다. 이제 그만 슬퍼하고 독해져야 할 시간이 왔다. 글쟁이의 비겁과 예의를 버리고 훌훌 떠날 때가 왔다고 대답했다.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오월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처럼. 아프고… 아프겠지. 십자가에서 내린 그리스도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애도하는 마리아를 생각한다. 죽은 아들을 안고 애도하는 마리아를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피에타’라고 한다.

    밀양 명례성지로 향하면서 ‘피에타’를 떠올렸다. 슬픔에 잠긴 세상의 어머니들을 떠올렸다. 어떤 그림 속의 마리아는 비통하기보다는 조용하면서도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에 ‘피에타’가 있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의 이 조각상은 슬픔마저 초월해 버린다. 마리아의 옷은 그리스도를 감싸고 있다. 이것은 신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며, 현실적인 위협으로부터 수호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 작품은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죽은 아들을 안고 평온하게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아들의 인생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더 깊은 사랑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밀양 명례성지.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가 출생한 곳이며, 경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 본당이 설립된 곳이다. 신석복 마르코는 소금과 누룩장수였다. 1866년 병인년에 체포되어 대구로 끌려가 순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가 38세였다. 현재 명례성지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다. 소금행상을 하다가 순교한 신석복을 기리며 명례언덕을 ‘녹는 소금 운동’의 산실로 조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예배당 입구에는 ‘나는 당신을 위하여 녹는 소금이 되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예배당 중앙에는 장미 성모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특정한 종교가 없지만 두 손을 가만히 모았다. 그리고 기도를 했다. 곧 저녁이 오리라. 저녁은 적막하고 외로울 것이다. 밖으로 나와 성지를 둘러보았다. 명례언덕에 신석복 생가터라고 적힌 돌멩이가 놓여 있다. 한때 축사로 사용되던 곳을 성지로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낙동강을 굽어보고 여기저기 의자들이 놓여 있다. 아무도 없는 의자에 새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새가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움이라고 이름 붙여 보기로 한다. 바람을 먼저 떠나버린 사람의 목소리라고 적어보기로 한다. 나는 그 바람을 해독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되돌려 주기로 한다. 그러나 먼저 간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나. 나는 언제나 귀뿐이고, 당신은 언제나 눈동자뿐이니. 나는 듣기만 하고 당신은 보기만 하니 어쩌나. 이 침묵의 시간을 어쩌나. 귀도 눈도 모두 멀뚱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 잠겨 있으니 어쩌나. 나는 강의 이쪽에 살고 당신은 강의 저쪽에 산다니 어쩌나. 심장이 다시 풀리듯 녹아내리고 아려온다. 당신이라는 신앙을 갖고 싶다.


    명례성지를 나와 비닐하우스 농가를 지나쳤다. 어디선가 딸기 냄새가 몰려온다. 비닐하우스를 기웃거려 본다. 알이 제법 큰 빨간 딸기가 가득하다. 빨갛게 잘 익은 딸기 표면에 씨앗이 깨처럼 오소소소 돋아나 있는 것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씻지도 않고 한 입 깨물었다. 씨앗들이 입안에서 씹힐 정도로 싱싱하다. 삼랑진 딸기수확이 끝나면 하남평야의 딸기 수확이 시작된다고 한다. 봄 끝물의 맛이 달큰하고 알싸하다. 딸기 비닐하우스를 지나 좁은 골목길 입구에 ‘서가네 국수’라는 간판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마당엔 느릿하고 평화로운 개들이 졸음에 겨워 있다. 꽤 큰 국수공장이다. 건조장 안에는 막 뽑아낸 국수 가락들이 말라 가고 있었다. 생밀가루 냄새가 바람에 후욱후욱 날리는 것이 정신을 아찔하게 한다. 젖은 밀가루 냄새가 사방으로 번진다. 천장에는 대형 선풍기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인기척만 없었다면 하루 종일 말라가는 밀가루 냄새를 맡으며 혼자 앉아 있고 싶었다. 저 늘어진 국수 가락들 아래서 고양이처럼 잠깐 졸아도 좋겠다.

    백석 시인은 ‘국수’라는 시에서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땡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노래했다. 사투리의 은근하고 정다운 어조가 마음의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국수가 가진 소박하고도 정겨운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경상도에서는 보통 멸치보다 조금 큰 띠포리로 육수를 내어 먹곤 한다. 아, 그리고 밀가리로 만든 국시 한 그릇이면 여름 첫물의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하리라. 옛날 국수에서는 맑으면서도 단맛이 배어 있었다. 물맛이었을까. 소쿠리에 삶은 국수를 서리서리 담고 물기를 빼서 말아먹던 기억이 삼삼하다.

    딸기농가와 국수공장을 지나 수산리에 닿았다. 마음에 드는 간판과 분위기를 가진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갔다. 이런 작은 식당의 다정하면서도 따뜻한 냄새가 또한 나를 위로해준다. 비록 오늘만 위로해줄게. 밥 배불리 먹고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하더라도 좋다. 깊고 따스하고 자유롭게 곤궁한 저녁의 풍경 속에서 살아보자. 밤의 캄캄함 속에서 깨진 유리에 테이프를 붙인 가로등이 세상의 구석을 비추듯이. 그 가로등 불빛을 찾아 날아오는 단어들이 있을 거다. 그 가로등 아래에서 쉬어가는 존재들이 있을 거다.

    나는 쓴다. 명례성지 입구에서 잠시 몇 마디 나누었던 수녀님의 미소. 딸기농장 하우스에서 다정하고 소탈했던 아주머니. 국수공장에서 키 작은 나를 위해 의자를 내주고 그 위에 올라가 국수건조장 풍경을 잘 찍도록 배려해 준 청년. 그는 국수 두 다발을 덤으로 얹어주었다. 요리를 못해서 다 얻어다 판다면서도 소박한 음식들이 모두 맛있었던 식당 여주인. 요즘 드는 생각 중에 식당 아주머니들은 다 예쁘다는 것이다. ‘국수는 시간이 지나면 퍼지는 게 당연하죠.’ 식당 아주머니의 남편이자 식당 사장인 아저씨의 이 한마디.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일상은 모든 게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거였다. 그들의 소박하고도 진솔한 생활에서 슬프고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세상은 힘들지만 때로 오늘처럼 자비를 베풀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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