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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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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절의 전통- 김수우

  • 기사입력 : 2014-05-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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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석으로 타서 간이의자를 하나 잡았다 다행이다

    매화가 번진다 그리운 이가 먼데 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지난 겨울 철탑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

    다행과 다행 사이 다행스럽지 못한 것들이 꽃대처럼 칼금처럼

    불면처럼 직립한다

    밥그릇 안에서 굴절되는 영혼처럼 눈물은 봄비로 굴절되었다

    성냥갑만한 메아리도 없이 봄비는 다시 철탑으로 굴절된다

    내가 가려는 바다는 통로 천장에서 거물거물 떨고 있다

    팬티까지 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다가 양말 벗을 때의 수치를

    정직이라 부르는

    네 칼날도 꽃으로 굴절될 것인가 분노란 그따위 궁리이다

    오늘도 손해를 본 토마토수레는 굴절되지 않는다 다행이다 아니다

    젖을 빨던 질문들은 철탑으로 굴절되었다 다행이다 아니다

    햇빛을 탕진하는 붉은 동백, 아슬아슬하다

    신호등 앞에 늙은 외투처럼 서 있는 하늘, 뒤뚱거린다

    간이의자를 접는다

    ☞ 세상 굴절 없이 바라본다면 행복만 남을까, 장담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편견 없이 차별 없이 미움 없이 있는 그대로의 얼굴 봐줄 것 같아, 한 번도 잘못했다 탓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게 골고루 고개 주억거리며 다독여 줄 것 같아, 그래요 당신 참 속이 깊어요 한다면 그녀는 어떻게 대답할까. 어지럽다 아니다 소통됐다 아니다 부끄럽다 아니다 수많은 질문과 답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며 세상 건너가는 동안, 밥그릇과 눈물, 메아리와 붉은 동백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처의 이름까지 직립을 꿈꿨으면 하는 아름다운 시인, 햇빛 속 바람 끝 아슬아슬 고개 숙여 걷고 있는 바로 당신 다시 말해준다면 그녀에게는 너무 아픈 위로가 될까, 굽은 세상 굴하지 않고 끝까지 웃는 얼굴로 화답해줄까. 김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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