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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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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휴먼 라이브러리, 책 대신 사람을 읽는다- 이제니(시인)

  • 기사입력 : 2014-05-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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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책 대신 사람을 대출해주는 살아 있는 도서관, 휴먼 라이브러리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00년 덴마크의 로니 애버겔이 창립한 휴먼 라이브러리는 사람이 책이 되어 읽히는 방식으로, 독자들은 종이책 목록 대신 사람책 목록을 살펴보며 대출신청을 하고, 책을 대출해 읽듯 자신이 대출한 사람책과 마주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출 시간은 30분, 자신과 다른 환경 속에 놓인 사람을 1대 1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통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대해 숙고해 보게 되는 일종의 인간관계 회복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휴먼 라이브러리의 슬로건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마세요’이다. 무슬림, 성전환자, 이민노동자, 미혼모, 장애인, HIV 보균자, 동성애자, 노숙인 등등 인종, 종교, 장애, 성 정체성, 사회의 획일적인 가치 기준 때문에 편견을 경험한 사람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기에 독자들이 지켜야 할 중요한 규칙 중 하나는, 책을 소중하게 대하면서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휴먼 라이브러리의 창립자 로니 애버겔은 말한다.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 또는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특정한 꼬리표를 붙이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편견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꼬리표는 오직 대화와 열린 마음을 통해서만 떼버릴 수 있죠. 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휴먼 라이브러리입니다. 남을 이해하는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오해는 무지에서 비롯되고, 이해는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죠.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폭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입니다.”

    한국 사회 역시 많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얼룩져 있다. 정치색으로 물든 오랜 지역감정부터 경제적 수준과 출신 배경, 사회적 지위 등에서 비롯되는, 무의식적이어서 더욱더 뼈아픈 계급의식까지. 나와 가장 가까운 이웃, 친구, 가족에 대한 나의 편견은 또 어떠한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여러 표상들, 나이, 성별, 학력, 직업 등등 여러 요소들로 통합된 현재의 이 모습 그대로가 본질적인 ‘참 나’라고 부를 만한 온전한 나 자신의 모습인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면 나 역시도 편견과 오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어떤 사람책이 될 것인가. 그리고 다른 사람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휴먼 라이브러리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빌리지 않더라도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나의 가족, 나의 이웃부터 진심으로 읽을 준비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끼는 책을 읽듯이, 아무런 편견 없이, 아무런 판단 없이, 그들에게 말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라는 책을 읽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가 얼굴과 얼굴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얻게 되는 것은 아주 사소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아주 사소한 즐거움. 아주 소소한 발견 정도. 하지만 아주 사소한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나는 믿는다. 가상의 공간에서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문자로 이야기하는 대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몸짓과 몸짓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시대에 정신적 육체적인 폭력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제 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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